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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i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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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共和)의 뜻(최원식/인하대 교수)

모든 정당이 참여하는 정책협의회를 구성하자는 민주노동당의 제안을 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수용하였다는 보도가 나온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나쁘지 않은 정치뉴스다. 진흙밭의 싸움개들 모양, 줄기차게 공방을 계속하며 국민들을 짜증나게 하던 우리 정치가 이제 좀 본령으로 돌아가려는가? 국민을 염려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국민의 염려를 받는 꼴에서 벗어날 일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슬그머니 솟는다.


<분열의 치유는 공화(共和)의 정신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 구절은 우리나라의 국체(國體)와 정체(政體)를 뚜렷이 밝힌 헌법 제1장 제1조다. 민주화가 더 이상 독재로 회귀하는 불행한 사태가 거의 불가능해진 이제, 공화국의 뜻을 다시 새길 때가 되었다. 인민 또는 국민에 주권을 두는 민주주의는 파당의 정치로 타락할 위험을 항시 지니고 있다.

정당을 뜻하는 party가 부분을 의미하는 part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정당정치란 본디 왕년의 당쟁(黨爭)과 그리 먼 곳에 있지 아니한 것이다. 정당이 보스 중심으로 운영됨으로써 근대적 제도로서 잘 연마되지 못한 한국에서는 그런 성격이 더욱 심했던 터다.

노무현정부의 출현은 바로 5.16 이후 무려 반세기 동안 고착된 무쇠뚜껑을 열어버린 사건이다. 박정희·김영삼·김대중으로 대표되는 보스정치의 총퇴장 이후 한국사회는 맘껏 자유를 구가하면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싸움’ 상태로 급속히 빠져들었던 것이다.

이 분열을 치유할 길은 공화에 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공화는 이중으로 기피되었다. 북한의 정식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지만, ‘공화국’ 또는 ‘인공’으로 약칭되곤 해서 내면화한 반북정서가 공화에 대한 천착을 지연시킨다.

그런데 공화당으로 약칭되곤 한 한국의 민주공화당도 한몫 거든다. 5.16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4월혁명을 추억으로 격하하면서 강력한 군부통치를 편 박정희독재와 한몸을 이룬 민주공화당의 망령이 역시 한국에서 공화라는 말에 대한 간과를 부추긴다.

그뿐인가. 미국의 공화당이 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함으로써 한반도와 그 주변을 유동성의 위기로 몰아가는 부시 공화당정부는 한반도 평화구축에 결정적 이정표를 세운 6.15선언을 휴지로 만들고 싶어한다. 한국정부를 윽박지르며 노골적인 반북한 캠페인을 벌이는 부시정부 때문에 최근 한국에서 공화라는 말의 인기는 더욱 떨어졌던 것이다.

이처럼 ‘공화국’ 북한이란 존재와, 한때 막강했던 또는 지금도 여전히 강력한 한국과 미국의 공화당들이 던지는 껄끄러운 이미지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공화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정지시켜 왔던 것이다.


<공화의 토대는 공공선에의 충성>

민주화의 과실로 심화되는 평등주의적 경향성 속에서 이기주의에 기초한 파당주의로만 치닫는 이 사태를 치유할 길은 어디에 있는가?

예전의 독재 또는 보스정치로 돌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그 분파성을 극복하고 공공선에 대한 충성을 토대로 국민을 다시 통합하는 공화의 정신을 재건하는 것이 관건이다.

공화국을 지칭하는 republic은 공공적인 것을 뜻하는 public에서 유래했다. 공동체에 대한 충성을 핵으로 삼는 공화국이란 분화의 연쇄를 무한대로 이끌 수도 있는 민주주의를 구원한다.

공화는 근본으로는 서구적이지만 전통의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이 아니다. 공자가 이상으로 삼은 주공(周公)의 정치가 실은 공화였다. 강력한 주 무왕이 죽자 어린 성왕(成王)이 등극했다. 무왕의 아우 주공은 이 어린 임금을 보필하여 주나라 문물제도를 문명의 표준으로 개화시켰다.

그런데 주공의 정치는 전제적이지 않았다. 주공의 정치를 가능하게 한 또 하나의 인물이 역시 무왕의 아우인 소공(召公)이다. 주공과 소공의 협치(協治)를 일러 공화라고 불렀으니, 이는 단지 주공과 소공의 공화가 아니라, 왕과 귀족, 귀족과 인민, 그리고 인민과 인민 사이의 공화를 총체적으로 대변했던 것이다.

모쪼록 정책협의회의 구성이 나라 안팎의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할 국민통합의 기관차 즉 공화의 원리를 새롭게 실현하는 창조적인 시험실로 자리잡기를 기원한다.


글쓴이 / 최원식
인하대 문과대 학장 / 국어국문학 교수
서울대 국문학박사
민족문학사학회 공동대표
한국동북아지식연대(NAIS Korea) 공동대표
저서 : 한국의 민족문학론
한국 근대소설사론

출처 다산연구소(www.edas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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