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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i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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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평화


젊은 벗에게,

땅을 팔고 너희를 위해 안전한 보호구역으로 이주하라는 미 대통령의 편지에 인디언 추장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우리들 조상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데, 어찌 그것들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러나 결국 인디언들은 학살당하거나 아니면 굴종의 이주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땅과 평화는 지구상에서 영영 사라졌습니다.

“... 대추분교 운동장에 있는 전봉준 동상 파괴를 온몸으로 막던 평택 시민 신문 양용동 기자, 그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 자신이 미술을 전공했기에, 그 가치를 알기에, 절대로 훼손은 막아야 했노라고 하지만, 한낱 농투성이인 내 눈에는 그것과 들판에 뿌려진 씨앗이 조금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한 뼘 한 뼘 땅을 가꾸면서 그것을 숭고한 작품을 만들 듯, 그리고 대를 이을 자식을 키우듯 어루만지고 가꾸었습니다... (김지태 대추리 이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른바 행정대집행은 평택주민들과 평화인권활동가들에겐 분명 ‘국가폭력’이었습니다. 수구신문들은 충분한 보상을 했다느니 이념문제라느니 떠들지만, 정작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땅’과 ‘평화’일 뿐입니다. 남은 여생을 일생 동안 일군 땅과 함께 하는 것이며 이 땅의 평화가 그분들이 바라는 것입니다. 그분들을 그 땅에서 떠나게 하려면, 참여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뿐이었습니다. 마지막 주민의 동의를 얻을 때까지 대화하고 대화하고 또 대화하는 일입니다. 국민을 주인으로 여긴다면 참여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입니다. 경찰을 동원하고 군인을 동원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것이 권위주의 독재를 마감한 ‘민주화된 시대’의 진정한 의미여야 했습니다.

참여정부는 미국의 요구대로 평택 미군기지 확대를 주민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농민들을 쫓아내려고 합니다. 보상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주민들을 더럽히면서. 이른바 국익이 모든 것에 우선할 수 있다는 수구언론과 정부의 논리가 바로 그들의 이념입니다. 그런 논리에 대한 암묵적 동의는 땅과 평화를 지키려는 농민들과 인권평화활동가들을 ‘진압’하는 일까지 일어나게 했습니다.
광주의 기억을 갖고 있는 우리들에게 군인과 민간인이 대치하는 모습은 순간 넋을 잃게 했습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에 이르렀다는데, ‘작전’ ‘진압’ ‘엄중한 처벌’이라는 말로 국민을 대하고 있습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대추리 사람들, 삶의 터전에 뿌리 내리고 그 소중함을 간직하려는 사람들, 그들의 절규가 뼈아픈 울림을 줍니다. 이 땅의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우리들의 인디언들입니다.

##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편지가 하루 늦어진 점 사과 드립니다.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인 드림
편집 : 한겨레 주주독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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