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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i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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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년 6월 광화문의 경험
서울대 법인화, 이것이 궁금합니다. 


<사실 관계>

질문 1. 
  서울대 법인화 법안은 어떤 절차를 거쳐 만들어졌나요? 찬성론의 요지와 법안의 골자는 무엇입니까? 이제 서울대는 사립대가 되는 건가요?
=> 법안은 국무회의가 2009년 12월 8일에 정부입법안(C)으로 확정하여 국회에 제출한 것이지만, 서울대가 원안(A)을 2009년 7월에 만들어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하고 교과부가 이를 수정하여 입법예고(B)했습니다. 서울대 본부는 C안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 2009년 12월 말에 국회에 수정안(D)을 제출했습니다. 
  애초 A안은 내부자 중심의 지배구조와 재정지원에 관한 조항이 들어있어 찬성론자들이 원하는 자율성의 제고와 재정 확보를 상당한 수준에서 보장했습니다. 그러나 A안이 B안에서 C안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지배구조는 외부자 위주로 바뀌고 정부의 통제는 더 강화되고 재정보장책도 확실치 않아 대학본부는 D안을 제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2010년 12월 8일 국회는 C안을 원안 그대로 날치기 통과시켰습니다.
  서울대가 법인화된다고 하여 일반 사립대와 똑같은 존재가 되지는 않습니다. 국가가 여전히 학교의 주인이라는 점에서 일반 사립대와는 다릅니다. 하지만 이사회가 대학의 주인이 됨으로써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는 사립대와 유사한 위치에 놓입니다. 교직원은 법인의 피고용인이 되고 학생은 교육이라는 상품의 소비자가 됩니다. 실제로 앞으로 교직원은 공무원연금에서 사학연금으로 이관되고, 많은 부분에서 ‘민법’과 ‘사립학교법’의 적용을 받게 됩니다.

질문 2. 
  법인화는 서울대가 자청해서 입법을 청원해온 것으로 아는데 반대하시는 쪽에서는 입법청원시 의견 반영을 위해 어떻게 하셨는지요?
=> 반대하는 의견은 제대로 수렴된 적이 없습니다. 대학본부가 A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 반영하려는 진지한 노력은 아예 없었고, 법인화의 구체적 내용이 2009년 7월까지도 비밀에 붙여졌기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대 교수협의회는 법인화는 찬성하지만 본부와는 다른 법인화안을 만들어 책자로도 발행했지만, 이마저도 대학본부는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반대 측에서는 2009년 여름부터 대응하여 성명서나 토론회를 통해 반대의견을 개진했으나 본부에서는 무시하였습니다. 본부는 각 단과대학을 돌면서 공청회를 개최 하였지만, 자신들의 법인화법안을 홍보하는 자리에 불과했고, 교수들의 반대 의견을 수렴하려는 진지한 자세는 전혀 없었습니다. 게다가 대학의 자율성과 재정확보와 관련된 핵심적 사안에 대한 교수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교과부와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는 대외비 사항이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답변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서울대 내에서 법인화 입법이 공식화된 것은 대의기구의 지위를 가진 대학평의원회에서의 의결을 통해서입니다. 교수들의 대표를 중심으로 구성된 평의원회에서 법인화를 찬성하는 의결을 했습니다. 이 의결은 법인화 추진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었고, 이것이 본부 측에서 법인화안이 학내 구성원들의 의사를 물어서 결정된 것이라고 홍보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서울대의 대학평의원회는 대의기구로서의 실질적 자격과 요건을 전혀 갖추지 못한 기구입니다. 50여명 정도로 구성된 평의원회는 대부분 각 단과대학의 고참 교수들이 차지하고 있고, 평의원들의 선출마저도 결코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평의원회의 의결이 현재 서울대의 제도와 규정에 의한 절차적 정당성은 확보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도덕적이고 실질적인 차원의 정당성은 전혀 확보하지 못한 것 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0년 1월 법인화에 반대하는 학내 구성원들이 서울대 법인화반대 공대위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질문 3. 
  선진국의 대학 중에서 법인화하여 성공한 곳도 있지 않나요? 미국과 일본의 국립대는 모두 법인이라 들었는데, 그 곳과 서울대는 어떤 환경 차이가 있습니까? 
=> 대학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각국의 국가형성과정을 반영합니다. 유럽과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에는 아예 사립대학이란 개념 자체가 없기에 대학이 법인인 경우 기본적으로 ‘공익형 재단’의 성격을 갖습니다. 미국에는 국립대학이 없고 모든 대학이 형태가 다르지만 법인입니다. 4천개에 달하는 대학이 모두 법인이지만 교육과 연구 능력에서 천차만별임은 오로지 ‘법인’이라는 대학지배구조가 대학발전의 관건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또한, 미국의 대학이 모두 법인인 것은 미국의 고등교육이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시작되고, 발전해 왔다는 역사적 과정과 관계가 깊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발전한 미국의 고등교육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국가의 역할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에서 public university인 주립대학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때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이고, 실제로 이 과정 속에서 많은 사립대학들이 주립으로 전환하기도 하였습니다. 뉴욕주립대학인 SUNY-Buffalo나 뉴저지주립대학인 Rutgers대학 등이 이러한 과정에서 주립대학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즉,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발전하여온 미국의 대학교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 미국의 대학들이 법인이냐 아니냐 라는 식의 평면적 이해보다는 국가가 공공성의 가치를 고등교육에서 실현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왔는가라는 부분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2004년에 모든 국립대학이 행정개혁의 일환으로 법인화되었는데, 대학의 성격이 미국의 그것과 달라 법인화된 이후에도 총장직선제가 그대로 살아있고 이사회가 내부자 중심입니다. 아마 법인화의 다른 성공 사례로 싱가포르 국립대학을 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학부생들의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연구력이 매우 떨어지는 대학이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이 되면 싱가포르 국립대학은 아시아의 가장 우수한 연구대학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2005년에는 법인으로 전환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성공을 법인화 때문이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사례를 서울대에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은 싱가포르라는 도시국가의 유일한 종합대학이기 때문에, 대학의 학문과 교육의 발전을 위한 국가의 의지가 고스란히 반영될 수 있는 여건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싱가포르 정부가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법인화를 추진하면서 엄청난 재정 지원을 해 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울대는 여러 국립대학들 중의 하나로 간주되기 때문에, 서울대에만 국가가 모든 지원을 몰아주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양자의 차이는 교수사회의 권력구조에서 나타납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교수정년이 55세였고, 이것이 대학의 구조조정에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젊고 열정 넘치는 교수들이 대학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면서, 이미 법인화 이전에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교육과 연구수준은 세계적 수준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법인화로 인해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경쟁력이 향상된 것이 아니라, 대학 내 교수사회의 권력구조의 변화와 그로 인한 건전한 지식공동체의 생성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의 차이 외에도 영어권 국가로서 싱가포르가 가지는 문화적 경쟁력 등도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세계화와 경쟁력 향상에 매우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따라서 법인화가 경쟁력 향상의 원인이었다고 보는 것은 껍질만 보는 태도입니다. 

질문 4. 
  법인화되면 서울대는 다른 사립대하고 같아지나요? 시간강사 등 비정규 교수들 처우가 개선되고 학생들은 학비 부담을 덜게 되는지요?
=> 서울대가 법인화되면 국립대로서의 정체성은 매우 약해집니다. 처우개선이나 등록금 문제는 학교의 재정능력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법인화를 한다고 하여 국가의 재정지원이 당장에 약화되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교직원의 처우를 개선하려면 사실상 등록금 인상 이외에는 확실한 방도가 없습니다. 재정확보로는 국고지원, 기성회회계, 연구비, 기부금, 수익사업이 있는데, 기성회회계를 제외하고 획기적으로 재원을 늘릴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질문 5. 
  서울대 법인화는 이명박정부에서 통과되었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꾸준히 추진되었는데, 어차피 '법인화'라고 하는 대세는 거스를 수 없지 않나요? 통과된 법안에 일부 문제가 있다면 수정하면 되는 것이지, 법인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나요?
=> 법인화가 대세라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일본 국립대는 법인화되었지만, 대만은 결국 법인화를 포기했고 중국은 대학개혁이 있었지만 미국대학 식의 지배구조를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유럽은 일부가 법인화되었지만 그것은 별도의 공익형 법인입니다. 문제는 법인화를 하는 정부당국의 의도입니다. 전 세계에서 사립대학의 비중이 가장 높고 고등교육의 재원 가운데 국고의 비중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고(GDP 대비 0.5%), 등록금의 액수가 미국 다음이고 GDP 대비로는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에서 법인화는 대학경쟁력을 키우기는커녕 서울대가 60여년에 거쳐 쌓아온 교육 및 연구역량을 오히려 약화시킬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중등교육 분야에 대해서는 평준화가 우선이냐, 수월성이 우선이냐를 놓고 정치세력과 사회주체들이 많은 논쟁을 해 왔지만, 고등교육의 방향성과 가치에 대해서는 한번도 사회적·정치적 논쟁이 진지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교육은 오로지 학생들을 대학에 입학시키는 문제로만 생각해 오다 보니, 입학 이후의 대학 교육이, 그리고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학문이 어떠한 방향성을 가져야 하고, 어떠한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치세력과 사회주체들이 충분한 관심을 기울여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법인화가 대세라는 믿음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만들어 진 것입니다. 사회·정치적 관심이 부족한 상황에서 교과부를 중심으로 한 일부 세력들이 신자유주의적 믿음을 바탕으로 법인화만이 살 길이라는 담론을 만들어내고 유포시킨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대학교수집단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권위주의와 보신주의에 물든 교수들을 기득권 세력으로 바라보는 국민들의 정서를 법인화 논리가 잘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교수집단의 부정적인 모습은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법인화여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질문 6. 
  이 문제와 관련하여 서울대의 3대 주체인 교수, 교직원, 학생들의 여론은 어떻습니까?
=> 교수 집단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법인화는 찬성하지만 이번에 통과된 법인화법안에는 반대하는 측(교수협의회가 대표함), 통과된 법인화법에 찬성하는 측(대학본부가 대표함), 법인화 자체를 반대하는 측(공대위가 대표함). 하지만 교수들의 의견을 물어본 적이 없기에 분포를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교직원은 자체 여론조사를 통해 60% 정도가, 학생들은 80% 정도가 반대합니다. 사실 법인화와 관련한 논의는 잘 진행되었더라면 서울대 발전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서울대가 건교 60돌을 맞아 자기점검을 통해 발전의 방향과 계기를 모색하여 학내 구성원 사이에 합의를 만들어 갔더라면 새로운 60년을 위한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부는 법인화라는 답안을 미리 만들어 놓고 그런 논의과정 자체를 봉쇄했습니다.

<자율성 문제>

질문 7. 
  법인이 되면 의사결정의 최고기구는 이사회일 텐데, 법인화 이전의 학교운영 주체들이 모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나요?
=>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국립대라는 것은 사단적 성격을 갖기 마련이어서 대학 자치를 보듬는 장치가 부족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그 구성원들이 학교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인화가 되면 재단적 성격을 갖게 되어 제도적 장치가 갖춰지지 않으면 구성원들이 학교운영에 참여할 기회는 제한적입니다. 이번의 ‘서울대 법인화법’에는 학생의 참여를 위한 규정은 아예 없고, 교직원의 경우도 주변적입니다. 이는 결국 정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반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일본은 법인화를 했습니다만 총장직선제는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질문 8. 
  지금처럼 교수만 총장 선출에 투표권을 갖고 교직원, 학생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직선제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서울대가 법인화되면 총장선출은 누가 하게 되나요? 이사회가 교수, 교직원, 학생의 의견을 잘 수렴해서 능력있는 총장을 선임하는 것이 더 낫지 않나요? 
=> 현행의 총장직선제에는 교수만이 아니고 직원들도 참여하고 있습니다만, 대표성이 낮습니다. 학생은 배제되고 있고요. ‘서울대 법인화법’에는 ‘총장은 총장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자 중에서 이사회가 선출하여 교과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제7조 1항)고 되어 있습니다. 총장직선제를 얼마든지 살릴 수 있는 규정입니다. 이사회가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가장 잘 수렴할 수 있는 방안이 바로 총장직선제입니다. 이사회의 권한과 총장직선제를 잘 결합시키는 방안 역시 정관을 만들면서 해결하여야 할 문제입니다.

질문 9. 
  법인화를 하면 국가공무원에 관련한 법령에 얽매이지 않고, 조직의 구성, 운영 등에 있어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 애초 찬성론자들이 법인화를 하면 대학의 자율성이 커진다고 했을 때, 그 핵심적인 내용은 총장이 직원인사권과 예산편성권을 갖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행정의 유연성이 커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자율성은 철저하게 대학의 구성원과는 무관한 총장의 자율성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이사회에 교과부차관과 기재부차관이 들어오고 모든 중요한 사항에 대해 교과부장관이 승인 및 추천권을 갖고 있고 또 대학운영에 대한 평가를 매년 하는 상황에서 예컨대 사무국장을 과연 총장이 마음대로 인사할 수 있을는지, 그리고 예산편성권이라는 것이 참으로 자율적으로 행해질 수 있을는지 의문입니다. 
  대학의 운영과 조직구성 등에서의 자율성이 높아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이는 법인화 반대 측에서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율성의 증진이 법인화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고등교육법’의 개정을 통해 국립대학이 예산집행, 운영, 조직구성 등에서 자율성을 가지도록 만들 수도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로, 현재 개별 사업별로 정부의 예산을 지원받는 방식에서 포괄적 재정지원 방식으로만 바뀌어도 서울대의 자율성은 급격히 높아질 수 있고, 이를 통해 같은 재원으로 훨씬 효율적인 배분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교과부나 관련 정부 부처가 자신들의 대학 지배력을 잃지 않기 위해 포괄적 재정지원을 거부하고 있는 겁니다.  

질문 10. 
  서울대가 법인으로 바뀌면 교육과 연구의 자율성이 높아지는 거 아닌가요? 특히 경쟁 체제의 도입과 업적주의에 따른 보상이 더욱 필요하지 않습니까?
=> 법인화의 핵심은 대학지배구조의 변경에 있기에 그것과 교육 및 연구의 자율성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법인화로 대학에 대한 자본과 기업의 요구가 커질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교육 및 학문의 자율성이 침해받을 여지는 그만큼 커집니다. 대학이 기업과 국가의 도움도 받고 또 국가와 기업의 발전에 기여해야 합니다만, 그것들과 다른 존재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최근의 연구는 경쟁체제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효율성을 보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내게 마련임을 보입니다. 대학은 ‘철밥통’이기는커녕 이미 경쟁이 너무 많은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경쟁의 긍정적 측면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쟁과 업적주의에 따른 보상은 교수를 긴장하게 만들고 학문과 교육활동에 대한 동기유발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은 효율성을 감소시키는 역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시장적 방식의 경쟁을 통해 학문과 교육의 상품화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법인화로 인해 교수, 학생, 교직원들이 학문과 교육 활동의 질적 향상을 위한 경쟁보다는 각종 재원을 끌어오기 위한 정치적 로비의 경쟁에 내몰릴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일본의 법인화 사례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법인화 이후 일본의 대학 교수들은 연구 활동보다 각종 보고서 및 서류 작성에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었다는 보고가 있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대학 사회에서 경쟁이 높아지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해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어떠한 경쟁이 우리에게 필요한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과연 법인화가 우리 대학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혁할 ‘건강한 경쟁’을 촉진할 것인지, 아니면 그 이전에 이미 우리 대학사회를 좀 먹었던 부정적인 모습의 경쟁을 더욱 더 강화할 것인지,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공공성 문제>

질문 11.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하는 것은 그동안 서울대가 누렸던 기득권이 흔들리는 것을 우려해서는 아닌가요? 날치기 통과된 법안을 폐지하는 것이 대학 교육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공정성에 대한 무력감과 자포자기를 극복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  높은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고등교육의 기회가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은 공정한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국민적 합의이며 공감대일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질 높은 대학 교육이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지 오래라는 사회적 무력감과 자포자기가 서울대 법인화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로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이 무력감은 특히 1990년대 이후 급격히 사회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근저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책임방기가 매우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우리나라에서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재정의 기여는 전세계적으로 매우 낮은 수치입니다. 이 부분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고는 고등교육의 사회적 공공성은 실현되기 힘들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사립대학의 비중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기에, 국립대학은 교육의 공공성을 지켜주는 버팀목입니다. 그것은 양질의 고등교육을 모두에게 제공하여 교육의 기회균등을 실현하고 공평한 사회의 초석을 놓습니다. 그런데 이미 우리 국립대학의 등록금은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나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화란 사실상 국가가 고등교육을 방기하고 시장논리에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교육의 공공성을 근저로부터 무너뜨릴 것입니다.

질문 12. 
  산학협동 등 기업이 대학운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대학재정은 물론 산학협력도 강화되고, 국가 경제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 물론 기업은 대학에 도움을 줄 수 있고 대학 역시 기업의 발전에도 기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의 대학에는 산학협동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학의 독자성이 유지되는 한에서만 허용되어야 할 일입니다. 대학의 존재이유는 근본적으로 학문의 교육과 연구를 통해 한 사회의 자기성찰능력을 함양하는데 있습니다. 지성은 자본이나 권력과 마찬가지로 고유한 존재영역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성찰력이 발휘될 때 미연의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이는 우회적이지만 기업 못지않게 확실한 방식으로 사회 및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국제경쟁력 문제>

질문 13.
  서울대가 국내 1위이지만, 세계 대학순위에서는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데, 법인화나 뭔가 큰 변화가 있어야 서울대의 세계화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 먼저 대학의 순위가 기만적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른바 100위 안에 독일이나 프랑스의 대학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이 두 나라의 학문이 세계적인 경쟁력이 없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사실 서울대가 40위권이라고 하는데, 주어지는 재정에 비한다면 그렇게 나쁜 성적도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 서울대가 행복한 상태가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건교 60돌을 지나면서 21세기에 걸맞은 발전의 새 계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하지만 과연 법인화가 유일한 대안인지는 명확치 않습니다. 
  대학의 경쟁력은 해외 학술지 출판 논문 편수, 노벨상 개수, 대학의 연구비 수주 액수 등과 같은 지표로 쉽사리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정량적 수치보다도 어떤 대학에서, 혹은 어떤 국가의 대학 사회에서, 건전한 “지식공동체”와 “지식생태계”가 살아있는지, 그 지식공동체가 얼마나 역동적인지와 같은 정성적인 요소가 대학의 경쟁력을 평가하는데 훨씬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얼마 전 여러 언론에서 지적되었듯이, 현재 서울대의 “지식공동체”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공동체의 복원이 법인화를 통해 가능할까요? 앞서 지적하였듯이, 법인화는 서울대의 교수, 학생, 교직원들을 정치적 로비의 경쟁으로 강하게 내몰아, 지식공동체의 말살을 더욱 가속화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질문 14. 
  서울대 법인화를 지지하는 주된 주장은 대학 경쟁력 강화입니다.  그렇다면 대학의 경쟁력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지표로 계산되고 있는지 또 어떤 지표들이 고려되어야 하는지요? (대학의 경쟁력이 교수들의 연구 성과나 실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오히려 교육의 수준과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교수들의 연구 성과나 실적 이외에 학생들이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교육의 질과 대학생활 만족도, 대학생들의 사회적 기여와 봉사 등도 수준 높은 명문대학의 평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  대학의 경쟁력이란 과연 그 대학이 건전한 “지식공동체”와 “지식생태계”를 바탕으로 학문을 재생산할 수 있는 역량과 토대를 갖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서울대와 한국의 대학 사회는 그간 교육 및 연구 역량이 비약적으로 성장했습니다만, 자생적 기반을 아직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수와 학부생은 우수합니다만, 중간허리, 곧 대학원이 부실합니다. 그러기에 특히 미국대학에 학문적으로 종속되어 있습니다. 독자적인 축적기반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독일이나 프랑스가 100위권 대학이 거의 없으면서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독자적인 학문세계를  꾸리고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는 결국 학문이 한 대학의 차원에서 이룩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웅변합니다. 그러기에 서울대의 법인화는 국립대학체계 전반을 보지 못하고 특권의식과 이기주의에 함몰된 단견인 것입니다. 

질문 15.
  법인화를 하면 더 이상 공무원 조직이 아니라 공기업처럼 되는 것일 텐데요, 그러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공무원 조직의 비효율성, 관료적 폐해 등이 개선되는 건 아닐까요?
=> 흔히 현재 서울대의 교육행정이 비효율적이고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법인화 찬성론자들은 이것을 경직된 국립대 탓으로 돌립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직교수의 수가 너무 많아, 직원들의 교육행정의 전문화를 막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바꿔 말하면, 교수들의 보직 선호가 학문의 발전을 억제하고 대학의 자치를 보듬어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서울대 교육행정조직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재정 및 조직 문제>

질문 16. 
  서울대가 법인화되면 교수님들의 신분은 어떻게 변경되나요? 교수님들의 연봉은 명문 사립대와 비슷해지나요? 
=> 교수들의 경우, 법인화되면 ‘5년간 공무원 신분을 보유하나’ 그 이후에는 법인의 피고용인이 됩니다. 연금은 법인화가 된 이후 20년까지는 ‘공무원연금법’의, 이후에는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법인화된 이후에 신규 채용되는 교·직원은 모두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직원의 경우 공무원은 법인화의 시점에서 서울대의 직원으로 임용될 것을 희망하면 공무원에서 퇴직하고 법인의 직원이 되고, 기성회직은 법인화와 더불어 퇴직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고용승계가 되면 신규 채용되는 셈입니다. 많은 교수들이 법인화되면 봉급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나 서울대의 재정구조로 보아 등록금이 크게 오르지 않는 한 명문 사립대 수준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질문 17. 
  한국은 OECD 국가 중 대학재정에서 정부지원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를 비롯한 모든 국립대학이 법인화된다면 정부지원 비율이 더 낮아지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대학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은 어디서 어떻게 확보될 수 있습니까? 
=> 대학재정에서 정부지원 비율은 OECD 국가의 평균이 GDP 대비 1.0%이나 우리나라는 0.5%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정부지원의 여력이 충분한 편입니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그런 투자를 기피하고 국립대의 법인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40개에 달하는 모든 국립대학이 법인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법인화하여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여기는 대학은 기껏 몇 개에 불과합니다. 
  연구비, 기부금, 수익사업의 수익금 등이 획기적으로 늘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고지원이 획기적으로 늘지 않는 한 사실 등록금 이외에 재원 확보의 뾰족한 방안은 없습니다.

질문 18. 
  서울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타 국립대에 비해 월등했던 것으로 아는데 법인화 반대는 국가 지원이라는 바람막이가 없어지리라는 불안감 때문이 아닌지요?
=> 다른 국립대에 비해 서울대가 우월적인 지위에서 국가의 지원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국립대학체계 전반의 개선이라는 관점에서 이 부분은 고쳐질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대 뿐 아니라, 여러 지역의 거점 국립대학의 균형있는 성장과 발전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고등교육 전반에 대한 국가의 지원 그 자체는 더욱 더 늘어나야 합니다. 고등교육을 발전시키는 것은 일부 특권층 자녀에 대한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법인화는 서울대의 우월적 지위도 그대로 유지하면서,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지원도 줄이겠다는 것입니다. 
  서울대에서 법인화 추진론자들은 내심 법인화하면 정부의 재정적 특혜가 주어지리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통과된 법안을 보면 법인화 이전과 이후에 재정지원 면에서 어떤 근본적인 차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솔직히 법인화된다고 하여 재정지원의 어떤 두드러진 추세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장기적으로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질문 19. 
  서울대 등록금 수준이 일반 사립대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 현재 서울대의 등록금은 단과대학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대략 명문 사립대에 비해 2/3정도 됩니다. 그러나 지방 국립대에 비하면 이미 연 200만원정도 많습니다. 올해 서울대는 등록금을 동결시켰지만, 법인이 되면 장기적으로 등록금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이는 사립대가 등록금을 올리는 것을 용이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학재단은 서울대 법인화의 간접적인 수혜자입니다. 이것이 우리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해쳐 기회균등이라는 최소한의 공평성을 무너뜨릴 것이 너무도 자명합니다. 

질문 20.
  법인화가 되면 재정을 확보하는데 좀 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할 수 있지 않을까요?
=> 다양한 방법이 동원될 것입니다. 당장에 학내의 여러 편의시설에 대한 임대료가 인상이 될 것입니다. 당연히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교수와 특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수익사업에도 열을 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대학이 수익사업에서 몫돈을 마련한 예는 미국에서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방안들은 대학에 이렇다 할 수익은 가져다주지 못하면서도 대학을 기업화하는 데에는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고등교육과 대안>

질문 21.
  서울대가 법인화되면 전국의 모든 국립대학이 곧 법인화의 길로 들어설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법인화의 구체적인 추진 내용에서 서울대와 지방 국립대학 간에 차별이 발생할 소지는 없는지요?
=> 정부는 ‘선택적 법인화’를 추진하고 있고 그나마 여건이 낫다는 9개 거점대학 가운데 많아야 4개 정도가 추진을 시도할 것입니다. 이는 당장에는 해당 대학에 엄청난 갈등을 부를 것입니다. 국고지원이 획기적으로 늘지 않는 한 법인화 대학이 좀 더 많은 지원을 받으면 나머지 국립대학들은 파국을 맞이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법인화 대학들은 역시 등록금을 올리는 것 이외에 대안이 없을 것입니다. 서울대가 시장구조에서 자체 경쟁력을 확보할 지도 미지수지만, 지방 국립대는 참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질문 22. 
  미국과 일본의 교육 체제가 한국이 지향해야 할 유일한 모범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유럽의 대학들 중 우리가 따라 배울만한 모범적 모형은 없는지요?
=> 미국에서는 모든 대학이 다 법인이사회의 지배구조를 갖고 있지만 우리의 사립대와 같은 특정인의 소유물로 간주되는 천박한 대학관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예컨대 인디애나 주의 퍼듀 대학처럼 오히려 주가 재정난에 처한 사립대학을 인수한 바 있습니다. 일본은 2004년에 모든 국립대를 법인화했습니다만, 대학의 지배구조는 굳건하게 내부자 중심입니다. 
  유럽에는 사립대학이란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법인이라고 하더라도 독일의 괴팅겐 대학처럼 기본적으로 ‘공익형 재단’입니다. 영국을 제외하고는 최근 등록금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지만 그 액수가 일 년에 기껏 몇 십만 원을 넘지 않습니다. 서울대 교수협의회는 ‘괴팅겐대학을 중심으로 주정부의 직접적 관할에서 벗어나서 대학의 자율성은 보장하되 주정부의 재정적 지원 보장 등 국립대학의 지위를 유지하는 공법상의 재단대학 형태로 전환하는 사례’를 모범적 모형으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질문 23.
  법인화를 반대한다면 그 대안으로 현재의 서울대법 체제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현재 체제에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 등에는 어떤 대안이 있습니까? 
=> 서울대 법인화가 폐기된다면, 서울대가 이전의 ‘설치령 체제’로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른 국립대학, 특히 유수한 거점 국립대와의 연계를 통해 국립대학체제를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공동입시안을 꾸려 사교육비의 부담을 줄이는 한편, 대학원의 강화를 통해 지식공동체의 재건을 꾀해야 할 것입니다. 보직의 수를 과감히 줄여 ‘연구대학’에 걸맞은 면모를 갖춰야 합니다. 
  더 근본적으로 학문의 독자적 재생산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교수충원에서 자충율을 대폭 낮추고 다양한 통로를 마련하여 학풍을 일신해야 합니다. 서울대는 철저한 자기혁신의 기반 위에서 국민에게 대학발전에 필요한 재정지원을 요청해야 할 것입니다.

질문 24. 
  서울대 법인화에 문제가 많다면 왜 서울대 교수님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지 않습니까? 
=> 대학은 일반 사회와 다릅니다. 사회는 언제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곳이기에 문제가 발생하면 파열음이 들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대학은 교육과 연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행정이 주요활동이기에 여기서는 갈등이 표출되지 않습니다. 대학에 자치를 위한 소통구조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서울대 내부에서 대의기구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대학평의원회가 있습니다만, 대학본부에 사실상 예속되어 있습니다. 모든 교수가 회원으로 들어와 있는 교수협의회가 임의기구로서 있습니다만, 법인화 자체는 반대하지 않고 다만 이번에 통과된 법안에 대해서는 반대의사를 표명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 서울대 교수들이 대체적으로 우리 고등교육 전반이나 다른 국립대학의 실상을 고민하지 않은 채 내 알 바가 아니라는 이기적인 태도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 국립대학의 정체성을 급속하게 상실해가고 있음도 또 다른 요인입니다.

질문 25. 
  서울대 동문들이 법인화 반대운동에 어떤 지원활동을 하면 도움이 될까요?
=> ‘대학 문제’하면 주로 입시나 취업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추세인 듯 보입니다. 법인화가 대학의 기업화, 기초학문의 약화, 지방 국립대의 고사, 노동유연화, 등록금의 인상, 교육공공성의 약화 등을 초래할 것이 거의 명백합니다만, 그래도 그것이 우리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높인다면 그 나름의 정당성을 가질 것입니다. 과연 그러한지 본질적인 문제에 바싹 다가가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회 일반에 서울대문제의 본질을 알리는 작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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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내의 무소유 실험, 세상으로 넓히고 싶다”
- 18년 보금자리 ‘산안마을’ 나온 유상용(농학 82) 회원을 만나다 -
 
 
임은경(농학95,선구자취재기자)
 
인터넷에서 '산안농장' 또는 '산안마을'을 검색하면 수많은 게시물이 뜬다. 경기도 화성에 있는 산안농장은 항생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은 고급 유정란 생산지로 입소문이 퍼진 곳이다. 이곳의 닭들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좁은 우리에 갇혀서 '알 낳는 기계'로 혹사당하는 대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마음껏 모이를 먹고 건강한 계란을 낳는다. 가격은 일반 계란보다 2~3배 비싸지만, 한번 먹어본 이들은 십 년, 이십 년, 평생 고객이 될 정도로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좋다. 하지만 이 마을이 주목을 받는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마을 전체가 한 가족이 되어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독특한 생활 방식이 그것이다. 마을의 정식 명칭은 ‘야마기시즘 생활실현지’. 일본인 농부 야마기시 미요조(山岸巳代藏·1901~61)가 제창한 ‘무소유 공용 일체 사회’라는 이념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뜻이다.
산안마을의 남다른 삶의 방식은 각종 매체를 통해서 이미 여러 차례 소개된 적이 있다. ‘모든 것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쓰일 뿐’이라는 생각 하에 각자 가진 것을 풀어 내놓아 모두 함께 사용하는 마을. 때문에 ‘내 소유물’은 없지만 오히려 쓸 수 있는 물건은 더 풍성해지는 곳. 분업?협동을 통해 공동 생산한 계란을 팔아 마을을 함께 꾸려가고, 마을 내에서는 돈이 전혀 필요하지 않으며, 외부로 나갈 일이 있을 때는 공동 지갑에서 필요한 만큼 꺼내다 쓰는 곳.
그런데 많은 이들이 동경하고, 가서 살아보고 싶어 하는 이 ‘유토피아’에서 제 발로 걸어 나온 사람이 있다. 1992년부터 지난해까지 18년 동안 산안마을 주민이었던 유상용(농학 82) 회원. 그가 지난해 6월 가족과 함께 산안마을을 나온 것은 그곳의 이념을 세상에 더 널리 퍼뜨리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산안마을에서의 삶은 행복했어요. 괴로운 고비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것이 싫기보다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그곳이 내 자리였으니까요.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움은 어느 정도 따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즐거운 일들도 많았고, 전체적으로 보면 정말 좋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사람의 행복에 관한 가장 이상적인 것을 함께 했으니까요.”
 
한국에 야마기시즘이 소개된 것은 60년대 후반이고, 실제로 산안마을이 시작한 것은 1984년부터다.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50여 곳에 퍼져있는 ‘야마기시즘 생활실현지’들은 종교에 근거하지 않은 공동체 중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례로 꼽힌다.
야마기시즘은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의 대척점에 서 있다.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할수록 성공한 것이라 여기는 물질 만능주의 세상. 그러나 야마기시즘은 욕심껏 움켜쥔 그 손을 놓고 무소유의 자유를 누리라고 가르친다.
 
“야마기시즘의 근본 사상은 세상 만물이 모두 하나, '일체'라고 보는 것입니다. 너는 너, 나는 나,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냥 생각해봐도, 내가 먹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온 것이고, 배설물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잖아요. 생태순환적인 사고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사람이든 동물이든 다 한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외부에서는 산안마을 사람들이 단지 생계 수단으로 닭을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양계는 야마기시가 사회 운동의 중요한 수단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닭과 사람이 하나로 이어져서 닭에게도 행복한 양계를, 동시에 인간도 행복사회로 가는 길을 실현해보자는 것이었죠.”
 
서양의 근대사회는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어져있다고 유상용 회원은 말했다. 자연이건 작은 동식물이건 함부로 대하면 언젠가는 그 해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소유라는 것은 인간의 머릿속에 있는 관념일 뿐입니다. 물건도, 식량도, 지구 자체도 함께 나누어 쓰는 것일 뿐이죠. 야마기시즘에서는 무엇에건 소유가 있고, 분리되어 있고, 내 것 아니면 못 쓴다는 생각 자체가 틀린 것이라고 봅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이렇게 마음먹는 순간에 외로워지잖아요. 자본주의가 생산력이 발달했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고통을 전제로 하고 있죠. 경쟁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그것이 ‘너를 이겨야 하는’ 투쟁적인 경쟁이라서 문제인 것입니다.”
 
이 같은 생각을 세상에 가르친 야마기시는 일본이 한창 전쟁을 치르고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하던 1901년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 어느 마을 축제에 갔다가 복숭아를 먹고 무심코 씨를 던졌는데, 그 씨가 지나가던 어른에게 맞은 사건이 그에게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그 어른이 너무나 크게 화를 내는 것을 보고 어린 야마기시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사람은 왜 화가 날까 하는 의문은 그의 평생을 지배했다. 열아홉 살 때쯤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인적 없는 오두막에 들어가 홀로 지내다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진리는 하나이며, 진리를 펼쳐가는 데는 구체적인 방법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의 사랑, 석가모니의 자비……, 그동안 인류에게 주어진 가르침들은 모두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들뿐이다. 하지만 야마기시는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에 도달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산안마을과 같은 ‘야마기시즘 생활실현지’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이 때문에 야마기시즘은 종교가 아니라 사회 운동으로 방향을 잡게 되었다.
 
“종교적으로 수련을 하는 대신, 야마기시는 연찬(硏鑽)이라는 방법을 택했어요. 연찬은 야마기시회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이 생각을 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사회를 구성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토론을 하기보다 생각을 모아가는 것인데요, 연찬에서는 듣기가 가장 우선시되죠. 나랑 생각이 다른 상대방의 생각을 물끄러미 또는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누가 얘기를 하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예'하고 받아들여 보는 거죠. 그것을 ‘영위(영점에 위치한다)’라고 표현하는데요. 영어로는 제로 베이스(Zero base)가 되겠네요.”
 
내 생각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은 제로가 아니다. 내 생각이 있더라도 일단 내려놓고, 나랑 생각이 다른 상대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 그 다음에 그 생각을 가져다놓고 정말은 무엇인가를 탐구해가는 과정이 연찬이다. 야마기시는 이것을 '자기를 풀어놓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를 위해 몇 가지 프로그램들을 개발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야마기시즘 특별 강습 연찬회’이다. 7박 8일간, 일 년에 네 차례 정도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외부인이 참여할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은 없다. 7박 8일을 꼬박 함께 생활하면서, 끊임없는 연찬을 통해 모든 것을 단정하고 고정하는 관념을 깨고 ‘정말의 것’(진짜)을 서로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예를 들면 '눈앞에 있는 컵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컵과 정말 같은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요. 내 눈이 보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눈에 비친 상이지 그것의 실체가 아니지요. 사람은 무엇을 보면 그것을 고정하려는 속성이 있어요. 내가 눈을 문지르면 사물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 눈이 흔들리는 것뿐이잖아요. 자신의 생각이 곧 사실이라고 단정하는 데서 벗어나면, 내 생각도 틀릴 수 있고 상대의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대화를 할 때 내 생각이 옳다고 단정하고 출발하지 않게 되지요. 틀릴 수 있으니까 좀 더 개선하고 나은 방향으로 갈 수도 있고요.”
 
연찬회에서는 '화', 마음의 자유, 소유, 참된 행복 등의 테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후반부로 가면 ‘진실 사회’(야마기시가 명명한 것, 진리가 실제로 현현되는 사회)를 어떻게 전개해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한다. 이밖에 보름짜리 프로그램인 ‘연찬학교’도 있다. 회원들의 입소문을 타고 신청자가 많아 인기가 좋은 프로그램들이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누가 배워가서 다른 데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산안농장에서만 하도록 했기 때문에 널리 확산되기엔 한계가 있었다.
유상용 회원의 고민이 시작된 것도 이 같은 문제와 맞물린다. 산안마을의 울타리 안에서만 실현되는 이상사회는 답답했다. 야마기시즘은 ‘무고정 전진’이라고 하는데, 어느 지점에서는 자꾸 고정되는 것이 보였다. 더구나 그즈음 새로운 청년 세대가 들어오지 않아 공동체가 노쇠하고 축소되어가는 것도 문제였다.
 
“산안농장과 연계되어서 다음 세대를 배출할 수 있는 청년 센터를 만들자고 건의를 했지요.
그런데 지금 실현지의 형태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의 반대에 부딪혔어요. 그래서 그 문제를 놓고 일 년 이상 논의(연찬)를 했는데, 결국 생각의 다름이 해소가 안 되더군요. 그분들은 새로운 시도보다는 산안마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저는 본질을 지키면서도 더 유연한 방식의 조직 구성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결국 '해서 보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단독으로 나왔습니다. 앞으로 저의 활동을 통해 성과들이 나오면 다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연찬을 통해서도 생각이 접근되지 않은 부분은 안타깝지요.”
 
내가 가던 길이 애초의 생각과 다르거나, 다소 옳지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현재의 것들을 미련 없이 버리고 새 길을 찾아나서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은 힘들고 어려운 길이고,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상용 회원이 살아온 삶은 언제나 많지 않은 사람들이 가는 그 길이었다.
 
“대학 때는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저도 학생 운동을 했지요. 몇몇 선배들과 함께 농대에 처음 탈춤반을 결성했는데 제가 1세대에요. 제적당하고, 군대에 갔다 오니까 89년이었는데 6월 항쟁을 겪은 후여서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 있더군요. 민주화 운동 전력이 있는 학생들을 복학시켜주었고, 저도 졸업을 했어요. 그때 함께 운동했던 선후배들은 운동의 다양성에 대해서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이전에는 정치 민주화가 최우선 과제였지만, 이제는 또 다른 대안이 될 사회 만들기가 과제가 된 것이죠. 다들 노동 운동, 농민 운동, 문화 운동 등으로 흩어지고, 취직을 해서 직장을 가지기도 하고…….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역할을 찾아 떠났어요.
저는 농업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같은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농업 문제에서 진로를 찾으려는 생각에서 농대 내 동아리 우리농업연구회(농연)를 찾아가 ‘바른농업연구회’라는 소모임 활동도 했지요. 투쟁보다는 사이좋게 사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고, 사이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곧 사회운동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간디가 했던 것처럼, 사회 문제에 대해 투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레 한살림, 카톨릭의 생명공동체 운동이나 도농 직거래 운동에 관심이 갔어요. 유기농, 자연농을 하는 공동체를 하면서 도시와 직거래를 통해 도시 사람들이 농장에 와서 견학도 할 수 있는 그런 모델을 구상했지요. 그즈음 나온 한살림 선언(1989.10.)의 영향도 컸어요.”
 
유상용 회원이 애초에 가졌던 구상은 한국의 전통 사상을 바탕으로 수행과 삶과 운동이 하나로 통일된 공동체였다. 당시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원불교. 원불교는 신앙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 실천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공부와 사회가 둘이 아니라는 원불교의 이념은 매력적이었다. 졸업 후에 원불교 내에서 그런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 모임을 가졌다. 그중에는 원불교 교무도 있었다. 뜻을 같이 하는 3 세대 십여 명이 지리산 문수리에 들어갔다. 구례 토지면 버스 정류장에서 두 시간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여섯.
 
“산속이라서 기계를 쓸 수가 없어요. 소로 쟁기 갈아서 쌀농사를 지었죠.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몰라.(웃음) 죽염 사업도 하고, 나물 채취하고, 고로쇠 물도 받아다 팔고 그랬어요. 장차는 한봉을 해볼까 하는 계획도 있었죠. 그렇게 열심히 몇 달을 했는데, 막상 같이 살면서 각자 바라는 점들을 꺼내놓고 이야기해보니까 너무 다른 거예요. 처음에는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내놓고 보니까 전혀 그렇지가 않더군요. 사람의 생각을 모으는 것이 제일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규모는 작고 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있는데 꿈이 너무 종합적이니까 따라가지 못한 것도 있었고요.”
 
2월에 시작한 지리산 공동체는 그해 7월에 끝이 났다. 실패의 순간 느낀 절망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원불교 사상과 공동체의 실천 방향이 일치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공동체를 시작하자 교단에서 교무들의 참가를 막아 나서기도 했다.
 
“절벽에 다다른 느낌? 그때 처음으로 길이 보이지 않더군요. 한 달 정도는 종교도 없는데 기도를 했어요.”
 
그렇다고 뜻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유상용 회원의 ‘길 찾기’가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라즈니쉬의 제자들 모임에서 시인 류시화 씨도 만나고, 해외의 공동체로 눈을 돌려보기도 했다. 그러다 찾은 것이 '성스러운 빛의 전령사'라는 이름의 에미서리(emissaries) 공동체였다. 미국 콜로라도에 본부를 두고 있는 에미서리는 유상용 회원이 그때까지 생각하고 있던 것을 이미 실현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를 결정적으로 매료시킨 것은 '진리를 이 땅에서 실현하는 것이 곳 하늘이다.'라는 한 문장이었다. 혈혈단신 혼자였지만, 망설이지 않고 떠났다.
 
“90년 8월에 갔다가 92년 2월에 돌아왔어요. 거기서의 삶도 좋았고, 앞으로 얼마든지 계속 교류할 생각도 있어요. 하지만 결국 내가 가야 할 곳은 야마기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에미서리에 있는 동안 한국에 잠깐 나온 적이 있는데, 그때 조카를 데리고 어린이 캠프에 참석하러 산안마을에 갔다가 받은 깊은 인상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에미서리 공동체와는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처음에 그에게 에미서리를 소개했던 한국인 캐나다 교포가 몇 년 전 제주도에서 에미서리 공동체를 시작해, 가끔 서로 연락이 오간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마침내 찾은 산안마을에서 유상용 회원이 바라던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것은 앞서 얘기한 대로다. 하지만 공동체도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의 흐름에 맞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일본 야마기시 실현지에서도 지난 2000년에 저랑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독립한 사람들이 있어요. 50명 정도가 나와서 혼슈 미에현의 스즈카라는 작은 도시에 정착을 했지요. 조직에 집착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저와 같아요. 그분들도 나와서 처음에는 공동체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2008년에 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KNI(켄산(‘연찬’의 일본식 발음) 네트워크 인터내셔널)'가 정식으로 출범했지요.”
 
스즈카는 새 길을 찾아 나선 유상용 회원의 중요한 교류 대상이다. 다음 달에도 벌써 방문 계획이 잡혀 있고, 강화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던 세대의 자녀들이 곧 스즈카로 가서 교류 활동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사업은 스스로 길을 찾아나갈 수밖에 없다. 그것을 위해 유상용 회원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단은 역시 ‘연찬’이다. 그는 이것이 보수와 진보, 다양한 사회 세력들이 대립하고 다투는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소통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산안마을이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했던 무소유 실험을 저는 좀 더 세상으로 넓히고 싶어요. 한 달에 한번 정도 지역 사람들이나 지인들, 관심 있는 분들과 연찬회를 열 생각이에요. 주제는 여러 가지를 다룰 수 있겠죠. 이곳 강화 지역에 농대 선배도 있고, 제가 동아리 탈반 활동할 때 만났던 친구도 있고, 기존에 시민운동을 했던 분들도 있어요. 요청이 있으면 다른 단체에 가서 연찬 진행을 할 수도 있겠죠. 연찬의 사고방식을 사람들에게 전하기도 하고요.”
 
그의 구상은 이미 하나씩 실천으로 옮겨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강화에서 ‘마리학교’라는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밝은마을’ 관계자들과의 연찬회가 있었다. 스즈카 사람들도 와서 함께 한 자리였다. 이번 1월에는 ‘한살림’ 전주?익산 시민운동가들과 강화지역 활동가들이 모여 ‘시민운동 간의 소통 및 소통 가능한 사회 만들기’를 주제로 4박5일간 연찬회를 열었다.
 
이번 연찬회는 “무엇이든 주제가 있으면 다 같이 제로 베이스에서 함께 생각해보는 연찬적 사고방식을 연습해본 것”이라고 유상용 회원은 말했다. 우리 사회는 진보든 보수든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얕다. 상대를 적으로만 생각하고, 쉽게 선을 그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사실 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눈에 적으로 보일 뿐이다. 상대는 이렇다고 단정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좀 더 상대의 말을 들어보고 탐구해보고, 질적으로 서로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들이 연찬회에서 나왔다. 연찬은 이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거리도 가능할 수 있도록 좁혀준다. 연찬회에서는 이밖에도 다양한 얘기가 나왔다. 보수의 기득권 문제만이 아니라 진보의 기득권 문제는 없는가? 또 내 안에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경향은 없는가? 많은 것을 돌아본 시간이었다.
 
“이번 연찬회에는 충북에 계시는 한살림 조희부 선생님하고 전에 산안마을에 같이 살았던 전북 장수의 이남곡 선생님도 참석하셨어요. 이남곡 선생님은 남민전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하셨던 분이죠. 그 연세에 그 정도 유연성을 가진 분들은 한국 사회에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이 선생님은 이전부터 진보? 보수를 넘어 다 같이 함께 연찬해가자는 뜻이 있으셨어요. 연찬을 야마기시즘의 독점물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누구든지 할 수 있도록 보편화하자는 것이죠.”
 
유상용 회원은 삼 년 전만 해도 강화도에 아무 연고가 없었다. 야마기시즘을 세상으로 넓히기 위해 적당한 곳에 청년 센터 같은 것을 설립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부터, 그는 자연과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공간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삼 년 전에 강화를 주목하게 됐다고 한다. 강화도는 삼국시대만 해도 두 개의 작은 섬으로 갈라져 있었다. 이후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바다를 메워 간척을 해서 지금의 섬이 된 것이다. 생각해볼수록 강화는 특별한 곳이었다. 외침이 있으면 왕실은 이곳으로 피난을 했다. 고려시대에는 몽고에 맞서 항전하면서 39년간이나 수도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바다로 나가는 관문인 동시에 외침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전략적 요지. 단군이 마니산에서 천제를 올린 것은 그만큼 이곳이 평범한 땅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니산에서는 신라시대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지금도 매해 천제가 올려지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화만한 곳이 없더군요. 인천공항도 멀지 않고요. 그때는 아시아 지역 청년들이 와서 교류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국제적인 청년 센터를 구상했었으니까요. 산안마을 다른 분들과 제 생각이 달라서 결국 무산됐지만.”
 
그는 지난해 6월부터 강화도의 한 펜션을 구입해 운영하고 있다. 18년간 ‘무소유’의 삶을 살다가 이제 ‘소유’의 세상에 나와 펜션 사장님이 된 것이다. 산안마을에서 지원해준 돈으로는 부족해 빚도 내고 어렵사리 시작하게 됐다. 일반인들에게 대여도 하지만, 사안이 있을 때마다 필요한 활동의 베이스캠프로 쓸 생각이다. 작년 12월에는 해외 각지에 자원봉사자를 파견하는 '국제 워크캠프 기구'의 자원봉사자 캠프가 1박2일 동안 이곳에서 열렸다.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100일간 열린 평화 순례 ‘워크 나인’도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해서 출발했다. 일본의 평화운동가 마사키 다카시씨가 주도하고 한국의 도법스님 등이 참가해 100일 동안 한국 땅 구석구석을 누빈 ‘워크 나인’은 많은 언론과 시민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워크 나인이라는 이름은 ‘걷다’라는 뜻의 ‘walk’와 일본 평화헌법 9조의 ‘9’를 합성해 만든 것이다.
 
“참가자들이 저희 집에서 길게는 4박5일간 준비모임을 가졌어요. 첫날 마니산 등반이 첫 일정이었지요. 부천, 서울, 동해안, 부산을 거쳐서 남해안을 돌아 올라와서 임진각에서 마쳤어요. 도중에 한국의 아픔이 있는 곳곳을 들렀어요. 나눔의 집 일본 위안부 할머니들을 방문한다거나, 광주 민주화 묘소를 참배하는 활동을 했지요. 한?일간 고대사에 대해 공부도 하고. 지금의 현대 문명은 서양이 일으켰지만 편리함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죠. 그 해결책은 서양 문명이 아니라 동양의 사상적 전통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마사키씨의 생각이에요. 제 생각도 같습니다. 우선 일본, 한국, 중국이 동아시아 문명을 회복하고, 그것을 통해서 세계에 메시지를 보내자는 것이죠. 모든 것을 분리된 것으로 보는 서양 문명에 반해, 사물을 일체라고 보고, 하나로 이어진 것으로 보는 눈이 동아시아 전통에 있어요. 서양만 바라보지 말고 여기서부터 다툼 없는 평화, 아시아발 평화의 메시지를 세계에 던지자는 운동이에요.”
 
스즈카 지역과도 더 활발한 교류를 할 생각이다. 머지않아 강화도 출신의 대학생 4명이 보름 일정으로 스즈카로 떠난다. 강화도에서 '콩 세알'이라는 두부 공장을 운영하는 서울대 법대 출신의 동문, 목사님 등 강화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했던 세대의 자녀들이다. 대안학교를 나왔는데도 대안사회가 없어 기존 사회로 편입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던 청년들이 스스로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찾아나서 보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은 부모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에서 우연히 나왔다. 유상용 회원 자신도 다음 달부터 스즈카에서 하는 새로운 방식의 연찬 프로그램에 참여하러 간다. 그가 꿈꾸는 것은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보다 나은 삶,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즐겁게 길을 찾아가자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싶어요. 관심 있는 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주시면 좋겠어요. 함께 대화도 하고, 기회도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야마기시는 자신이 깨달음을 얻은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에 계속 의문을 던지고 죽을 때까지 끝없는 실험을 거듭했다고 한다. 부부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일부러 아내를 화나게 만드는 등 실험을 계속했는데, 나중에는 부인이 화가 치밀어 그의 머리에 뜨거운 물을 끼얹은 적이 있었을 정도라고. 살아생전에 '나를 위인으로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농장 한쪽에 비석도 없는 작은 무덤으로만 남았다는 야마기시.
가슴 속 질문에 답하기 위해 끝없이 새로운 도전을 피하지 않는 유상용 회원의 모습이 어쩐지 그를 닮았다.
 
 
펜션 우리꽃자리 : 인천시 강화군 양도면 삼흥리 666-6
www.cochari.com
Tel. 032-937-3912
대중교통 : 지하철 신촌역 7번 출구로 나가 직진 200m 지점에 강화로 가는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다. 10-15분 간격 운행. 강화 터미널에서 펜션 근처까지 시내버스가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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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방 질식사고를 예방하려면
강태선 (산업안전감독관)
 
엊그제(2009. 12. 4) 충주의 한 찜질방에서 사람이 죽는 일이 또 발생했다. 변을 당한 분들이 부부라니 그 안타까움이 더하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공간에서의 사고라 충격도 크다. 찜질방을 찾는 발걸음이 당분간 뜸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늘 그렇듯 이번 사건도 처음이 아니다. 언론은 사건만을 담담히 보도하거나 관련 안전기준이 없음을 지적했다. 지자체 관계자도 기준이 없어서 그런 것까지는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이번 사건 또한 얼마의 시간만 지나면 잊혀질 것이고 또 비슷한 사건이 재발할 것이다.
 
보도를 보니 전과 다르게 구체적으로 일산화탄소(CO) 중독이라고 나온다. 혈액 중 CO-hemoglobin을 측정한 모양이다. CO-hemoglobin이란 산소를 운반하는 혈액 중 헤모글로빈에 산소대신 일산화탄소란 놈이 달라 붙어 있는 것을 말한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사람의 혈액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헤모글로빈이 나오며 이것으로 일산화탄소 중독을 진단한다. '일산화탄소=연탄가스' 등식이 성립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연탄가스외에도 일산화탄소는 우리 주변에 여전히 흔하다. 모든 유기물은 탈 때 일산화탄소를 낸다. 특히 불완전하게 연소되는 경우 연소가스 중 일산화탄소의 비율이 높아진다. 숯을 만드는 과정이 대표적인 불완전연소이다. 사고가 발생한 충주의 찜질방은 요즘 성업중인 참숯가마 찜질방이라고 한다.
 
지자체 관계자나 언론에서 말한 대로 찜질방에서의 일산화탄소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관련법이 과연 없을까? 없지 않다. '숯가마찜질방'은 '땀을 낼 수 있는 시설 및 설비 등의 서비스'로 분류할 수 있고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관리법' 적용을 검토할 만하다.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관리법'에서는 연면적 1,000 제곱미터 이상의 찜질방(법에는 '땀을 낼 수 있는 시설 및 설비 등의 서비스'로 기재)에서는 실내공기중 일산화탄소 농도를 10ppm 이하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신축하는 다중이용시설은 표에 있는 필요환기량을 충족해야 한다.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 별표 1의4>
 
 
다른 법도 있다. 건축법의 한 시행규칙인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서는 신축하는 연면적 1,000 제곱미터 이상의 찜질방은 '기계환기설비를 설치하여야 하는 다중이용시설'로 분류하였고 그 필요환기량을 25㎥/인·h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즉 신축하는 동 면적이상의 찜질방에는 기계환기설비를 해야하고 그 환기수준은 매 시간 당 최소 (찜질방 손님 수×25)㎥ 만큼의 새로운 공기가 찜질방으로 유입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 '숯가마 찜질방'은 황토와 돌 등으로 만든 대형 가마 속에서 참나무를 고온으로 태워 숯을 만들고 그 부산물로 목초액을 생산하는 제조시설을 찜질방 겸용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경기도의 최근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업체가 전국적으로 2009. 9월 현재 393개(환경부 자료)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 9월 초 경기도에서는 특별사법경찰관을 동원하여 이러한 숯가마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진행한 바 있다. 단속은 숯가마가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른 '탄화시설'로 분류될 수 있는데 배출시설 신고와 배출물질 정화 등에 관한 사항을 준수하고 있는 지에 관한 사항이었다. 경기도는 총 57개소를 단속하여 배출시설 미신고 등 위법 사실이 드러난 22개 업체에 대하여 검찰 송치 또는 과태료 처분했다. 경기도의 관련 보도자료에 따르면 도는 대기오염은 물론 이용객들의 가스중독 또는 화상 등 재해를 예방할 목적으로 기획단속에 나섰다고 한다. 경기도의 선도적인 행정이 돋보인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취지는 좋았으되 이번 단속으로 이용객들의 가스중독재해가 예방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관련 단속은 '탄화시설'의 배출시설에 관한 것이었을 뿐 이용객의 일산화탄소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를 찾아보기 힘들다. 관련 법인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관리법'의 적용 및 준수 여부를 조사한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단속의 취지대로라면 점검을 하면서 숯가마찜질방의 실내의 일산화탄소라도 측정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대기환경보전법만을 적용한 결과로 숯가마찜질방이 배출시설 중 공기정화장치를 강화한다면 배출물은 안전해질른지 몰라도 실내오염은 오히려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대기오염방지라는 한 쪽 만으로의 규제가 오히려 다른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속은 저탄소정책의 일환으로 보이는데 사실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굴뚝 배출물의 저탄소보다는 실내공기질의 저탄소화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환경부 등은 숯가마찜질방에 대한 위 언급한 기존 관련 법 적용에 문제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정비를 해야할 것이다. 지자체도 관련 법을 광범위하게 검토하여 소비자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단속을 해야 한다. 사실 법이나 단속 보다는 숯가마찜질방을 운영하는 업자들의 경각심이 먼저 필요하다. 모든 가스에 의한 질식사고는 '밀폐'에서 비롯된다. '열 보존'에만 집중하지 말고 '밀폐'하면 사람이 죽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건축법에 정한 필요환기량을 감안한 주기적인 환기가 필수다. 불안하다면 직접 가스농도를 측정하는 것도 좋다. 측정기기는 100만원 미만의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고 누구나 쉽게 측정할 수 있다. 요즘 같이 밀폐가 심한 겨울철이나 이용객이 많은 때를 택해 찜질방 곳곳의 일산화탄소의 농도를 측정하는 것이 좋다. 2005년 홍천에서 같은 형태의 찜질방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고 2007년 법원은 숯가마찜질방 주인에게 2억 6천만원의 손해배상 지급을 판결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숯가마는 사장님의 마음마저 숯으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한 번 해보면 어떨까. 이용객들의 안전을 위한 환기나 일산화탄소 측정을 하면서 동시에 이것을 홍보하는 것. '우리업소는 실내공기질 기준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또는 '일산화탄소 항시 모니터링 중' 등으로 말이다. 찜질방도 이젠 '안전'이 품질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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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법원의 판결이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좌파적 판결”이라고 사법부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검찰은 검찰대로 총장이 나서서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결” 운운하며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시국 사건들을 보면 해바라기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권 남용 때문인 경우가 많고, 판사 개인의 편향된 판결은 결코 아니라고 보여진다.

신태섭 전 KBS 이사 해임, 정연주 전 KBS 사장 해임 및 기소,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구속, YTN 기자 대량해고, PD수첩 사건은 누가 봐도 엠비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정략적으로 기소한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의 법원 판결을 보면 언론장악 시도는 정당성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나 엠비 정권에게 법원의 판결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신태섭 전 KBS 이사 해임과 신임이사 선임 절차를 밟아 정연주 사장을 해임했다. 이에 신태섭 이사는 해임의 원인이 되었던 동의대 교수 해임 무효소송을 하였고, 법원은 해임이 무효하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정연주 사장은 KBS 사장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정연주 사장은 해임 무효 소송을 통해 무효 판결을 받았음에도 이미 잔여 임기가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엠비 정권은 언론장악 시나리오를 의도적 기소를 통해 완성해 나간 것이다. 또한 피디 수첩에 대한 1심 재판부의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언론노조는 “검찰 수사나 처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이번 사건을 통한 언론의 위축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엠비 정권의 재갈 물리기가 계속되면서 언론의 자기검열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세간의 주목을 받은 사건이 또 있었다. “대한민국”이 개인(박원순)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국정원이 본인과 주변에 대한 사찰과 후원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주장에 대해 국정원이 명예를 훼손 당했다며 2억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회운동가인 박원순씨에게 심지어 “대한민국”이 원고가 되어 소송을 제기한 것은 엠비식 법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금전적인 압박을 가하던 그 방법 그대로 정권의 비판자에게 압박을 가하려 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원고가 되는 것에 대해 엠비 정권의 법제처장까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내 놓고 있다. 이렇게 무리한 소송을 하는 이유는 언론의 자기검열 강화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자기검열을 강화하는 효과를 노려 비판자들의 입을 막으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전교조 시국선언 참여 교사에 대한 1심에서 무죄 선고 되었다. 전교조 교사에 대한 무죄선고가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시국선언 참여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거부한 김 교육감을 여전히 소환하려 하고 있다. 엠비 정권 내내 엠비식 법치는 계속될 것이다. 입법부를 통한 견제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지만 만성화된 무력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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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양심선언문이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마음이 아픕니다.
광고를 내기까지 도와준 동기들과 추진한 후배님들께 감사드리며 더이상 현실에 양심선언문이 인용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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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중2 막내가 시험 공부를 하더군요.
어려서 서당에서 천자문을 외우던기억이 나서 잠시 아는 척을 좀 했습니다.
워낙에 오랜 기억이고 글씨도 잘 안보이고 OTL
그래도 음은 대강 기억이 나더군요.

아래 내용 한번 살펴 보시죠.
택리지에 나오는 글귀랍니다.

我國山多野少

我國之勢東高西低

我國東西南皆海

船無不通이라


다들잘 보세요.

이게 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마지막 글귀가 가슴에 팍 오네요.

ㅋㅋ


MB야 이래도 대운하 할래?

한문 교과서도 바꿔야 긋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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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을 하나의 대상으로만 보는 암울한 2mb 일파들에 의해 방송장악 음모가 진행중이고 정연주 사장 해임을 정점으로 서서히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뉴스가 나오면 이내 채널을 돌려 버리고 마는 자신을 보면서 우울함을 넘어 분노로 치닫고 있는 국민이 떠오릅니다.
중2,고2 두아이의 학부모로서 아이들의 미래가 어떨지 상상해 보다 그저 좌우로 머리를 흔드는 것 말고는 방법이 별로 없네요. 도데체 상식을 가진자들인지 그저 두려울 뿐입니다. 상식적이지 않은 인간들이 무슨짓을 벌일지가 두려울 뿐입니다.
괴벨스의 입. 저들이 원하는 것이 전쟁이고 학살이 아니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오늘도 마음속의 촛불 하나 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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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고 싶은가요? 복제소가 식탁에 
    美 체세포복제소 출하, 국내 수입가능성 높아져

오오츠카 아이코

맛있는 고기와 많은 우유를 만들어내는 소와 유전자가 같은 개체를 대량생산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복제소. 최근 미국에서 체세포 복제송아지 출하가 풀리면서, 일본(한국도 마찬가지 상황이다)에도 이들이 수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FDA ‘복제가축 표시의무 없어’ 소비자 무방비


가축의 체세포 복제는 피부 등을 통해 얻은 체세포와 핵을 제거한 미수정란을 융합시켜 대리모에게 이식함으로써, 체세포를 제공한 어미와 유전적으로 같은 동물을 만드는 방법이다. 1996년 복제양 ‘돌리’가 첫 사례다. 이후 쥐와 소, 돼지, 고양이, 염소 등에서도 복제동물이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체세포 복제가축은 서구와 일본, 한국, 호주에서 출하가 자중되어왔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올해 1월, 유럽식품안전청(EFSA)이 복제소와 복제돼지의 안전성을 인정한 것에 이어, 미국식품의약국(FDA)도 소, 돼지, 염소의 복제가축이 안전하다고 선언했다. FDA측은 사실상 ‘복제가축이라고 표시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미국의 복제소가 일반 소와 섞여 일본에 수입되어도 소비자는 이를 알 수 없게 된다.


이런 사태에 대비해서인지 후생노동성은 4월, 내각부의 식품안전위원회에 ‘체세포 복제기술로 생산된 소와 돼지를 원료로 하는 식품의 안전성’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그러나 식품안전위원회는 소 해면상뇌증(BSE, 광우병)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 정부의 의향에 따르는 결론(먹어도 안전하다)을 낼 가능성이 높다.


이미 1996년부터 일본 시장에도 출시되어있는 ‘수정란 복제소’의 경우, 복제소라는 것을 표시할 지 여부는 의무가 아닌 임의에 맡겨져 있다. (수정란 복제는 체세포가 아니라 수정란이 16개에서 64개로 세포 분열했을 때 이를 분할하여 이식한다. 이렇게 되면 같은 유전자의 형제자매가 대량 만들어진다.)


복제동물 54% 이르는 ‘이상 사망’, 원인 불분명


지난 5월 27일 도쿄에서는 ‘유전자 변형식품 필요 없어! 캠페인’이 주최하는 복제 가축식품 반대집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국립예방위생연구소의 혼조 시게오씨와 시민 바이오테크놀로지 정보실 대표인 아마가사 케이스케씨가 나와 강연을 했다.


혼조씨는 “복제기술은 수십억 년이나 걸쳐 유성생식으로 진화해온 포유동물을 시험관 안에서 인공적으로 무성생식 동물로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생리를 거스르는 위험한 조작이다. 언젠가는 파탄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마가사씨는 “애완고양이를 복제해 파는 장사를 시작한 사람이 있었는데, 체세포에서 복제동물을 만드는 기술의 성공률은 극단적으로 낮아, 가격이 200만 엔에서 300만 엔 정도의 고가가 되는 바람에 도산했다고 한다”며, 마찬가지로 “소가 출산에 이르는 경우는 드물고, 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출산이 가능하다 해도 일정 비율 태아가 지나치게 성장하는 ‘과발육’이 발생하는 점, 사산과 조기사망이 많은 점, 어미의 체세포를 사용한 탓에 세포연령 자체가 노화되어있어 질병에 걸리기 쉬운 점, 단명 등의 문제점도 있다고 한다.


아마가사씨는 “윤리 측면에서는 물론 동물복지의 측면에도 문제가 있어 소비자의 저항감이 센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시장에 내놓으려 할까” 라며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방사선조사식품(irradiated food), 유전자변형식품, BSE 감염소를 둘러싼 수입 문제, 거기에 복제소의 출하 금지 해제로 먹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감은 높아만 가고 있다.


* 기사출처 : <여성주의 저널 일다>, 이 기사는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언론 <페민>에 실린 7월 5일자 기사임. 번역(고주영).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4488&section=sc3&sect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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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촛불집회가 처음이던 날.
고2,중2 두 아이를 집에두고 지인들과 강원도 동해시에 있었다.
밤 10시경 딸아이의 전화 한통으로 왠지 모를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20년도 더 지나버린 과거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 나며 딸아이를 아스팔트 위에 또다시 서게 했다는 자책감, 어느덧 광장에 나설 나이가 되어버린 딸아이, 사회적 이슈에서 한발짝 떨어져 방관자적인 자세를 가졌던 일상, 자신의 이해타산을 먼져 따지고 있는 자신, 그리고 무엇 보다 거리에 서 있는 아이에 대한 걱정등 만감이 교차하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달여 흐르고 5월 30일 김상진기념사업회에서 동화면세점 앞에서 모이자는 문자 한통으로 정말 최루탄을 뒤집어 쓸 각오를 다지며 처음 집회에 참석했다. 시위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이 혹시나 프락치로 오인 받을 까봐, 한편으론 내 소중한 카메라 시위 도중 망가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집에 고이 모셔 놓고 비장한 마음으로 도착한 동아면세점. 시청역에 내리는 순간부터 왠지 낯선 곳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큰 규모의 축제 현장 같다는 느낌, 아니 길거리 응원을 온 것 같았다. 그래도 그때까진 긴장을 풀 순 없었다. 과거 현장 87년 시청앞에서 세종로로 진출하던 순간 수십만에 달하던 시위대가 최루탄 몇방과 페퍼포그 연기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그날 그 현장이었기에 말이다. 약속한 동화면세점에 도착해서야 비로서 2008 이라는 숫자가 가슴에 박힌다. 세종로 사거리 인도와 차도 사이를 꽉메운 전경차 바로 2-3 미터 뒷편에서 1-20명의 젊은 친구들이 마치 엠티 온 듯 물과 쵸코파이를 쌓아 놓고 핸드마이크로 이명박 퇴진을 외치고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바로 옆엔 투입된 전경 부대(분대 정도)가 휴식을 취하고 있고 현장 지휘자인 듯한 간부가 무전기를 들고 그 옆을 지나가면서 눈길한번 안준다고 상상해 보라. 가능한 일인가? 내 머리론 이해가 안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곳은 2008년 서울이다.
한번 뗀 걸음은 다음이 쉽다 했던가. 6일과 7,8일 그리고 10,13일 광화문 일대에서 마음 놓고 챙겨간 카메라로 찍은 몇장의 사진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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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연행된 시민들이 몇 있었다. 그러자 마자 시민들이 답하고 있다.전경차 타고 서울시 관광하자고 말이다. 자진해서 전경차에 올라타잔다. 갑작스레 등장한 손수레를 개조한 이동 파출소에 올라타 기념촬영을 하는 게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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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뭔지... 세종로 네거리에 등장한 유모차 부대. 세종로에 왔었다는 인증컷이라도 올리기로 한건가? ㅋㅋ 어디 인터넷 동호회에서 단체로 나들이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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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가족사진 한장 박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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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저녁 시청광장 풍경과 7일 오후 세종로 근처. 경찰차로 막아 놓으면 전체 집회와 관계없이 그 앞에만 모이는 호기심 많은 분들이 상당히 많다. 전경들 음료수도 가져다 주고 쵸코파이 전해주고... 내 생각엔 그거 받는 전경 저녁에 기합 좀 받을 텐데... 요즘은 안그런가? 민주경찰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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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 대열에 보이는  색다른 무지게 깃발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은 했었는데 확실하다. 성소수자!!! 쉽게 다가 가기 어려운 주제를 광장으로 끌고 나오는 저들이 존경스럽기 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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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이나 찾고 싶었던 아고리언들... 확성기녀 부터 말이 많더니 주체측의 통제를 전혀 따르지 않더군. 자발적으로 장소를 정하고 따로이 행진하고... 사진엔 안보이지만 중고딩들로 구성된 태극기부대들도 보이고 다음 이종격투기 카페 펼침막도 보였다.
롯데 앞을 지나면서 불매운동을 하던데 그날은 이유를 몰랐다. 햄버거 때문일까? 지금에사 그 이유를 알았다. 아고라 글을 읽어 보니 조선에 광고하는 "롯데"를 불매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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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다양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홍보전을 한다. 미술 동아리 인듯한 몇이서 동아일보 앞 인도 바닥에 설치된 조명을 이렇게 훌륭하게 바꿔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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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새벽 시민들에 의해 끌려 나온 포로(?)와 진압을 준비하는 경찰... 밀리는 과정에서 흥분한 노땅들 몇명 되지도 않는 서총련 깃발들 앞으로 와서 학생들 뭐하고 있느냐고 야단이다. 나가서 경찰하고 쌈하라고. 그래서 한마디 해 줬다. 얘들이 명박이 찍었냐? 니들이 나가서 막으라고. 정작 저들의 집권 막았어야 할 우리(맞나?)가 못 막아서 이런 고생을 하는데 우리가 막아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럴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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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6월항쟁 계승대회. 집회 방해하러 나오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 낮에는 북파공작원 위령제 지낸다고 몇십명이서 시청 광장을 무단 점거(명박이가 지시 했을까? 전날 저녁 명박이 만났다던데...) 하더니 저녁엔 저들이 광장을 점령하고 있다. 알수 없는 소리(방언)로 시끄럽게 하기도 하고... 사진 안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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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하러 나오신 선배님... 이 사진도 안줄입니다. 열정이 이만 저만이 아닌 성님. 경찰서 유치장 탈출 경력이 있으신 분. 아마 이분이 촛불집회의 배후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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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광화문 사거리에서 종각 쪽으로 행진하던 시민들이 도로 중앙선에 촛불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워 놨다. 그리고 세종로와 시청 일대에서 밥도 먹고 춤도 추고 심심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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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미선이 효순이 추모집회는 모임이 있어서 9시경에 시청에 도착했는데 시위대는 KBS에 있는 촛불과 합류하려고 여의도로 출발한 상태더군. 만화 전시 부터 토론회등이 시청광장 주변에서 이루어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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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광장 한편에 중년의 두분이 조용히 대화를 하고 있는데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쉽지만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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