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는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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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i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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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일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1.03.03
    20년 만에 만나는 부친의 한시 1
  2. 2009.11.19
    수험생 부모라는게 참...
  3. 2006.01.13
    갈등 2

儒達山峰靑雲起
榮山江岸白帆出
春雨濛濡高下島
豈碍此航河口堰
一老二老我死盡
明山僧達夢中灘
渴馬飮水曲江淵
瑞光侍中舞祭峰

 

1)유달산 봉우리에 청운이 이니
영산강 언덕에서 흰 돗단배가 뜨도다.
봄은 가랑비에 젖은 높고 낮은 섬들과 짝하니
어찌 하구뚝인들 이 항해를 가로막을 수 있으랴
늙고 늙어 이 몸이 죽어 사라지더라도
명산의 승려 되어 꿈속의 여울에 닿으리라
목마른 말은 휘도는 강물을 마시고
상서러운 빛은 무제봉을 시중드네

2)유달산 봉우리에 푸른구름일때
영산강가에선 흰돛단배들이 출항함이라
봄비에 고하도(高下島) 자욱하게 잠기고
어찌 하구를 막아 배들의 항로를 막았는가
하나 둘 우리 같은 노인들 다 죽어가는데 명산 승달산 몽탄 건너에
갈마음수형의 동강의 못 상서로운 빛 드리운 시중골 무제봉이라네.

 
 
해설 원문(임재택 님)

유달산 봉우리에 푸른구름일때
영산강가에선 흰돛단배들이 출항함이라
봄비에 고하도(목포 삼학도 건너 섬?) 자욱하게 잠기고
어찌 하구를 막아 배들의 항로를 막았는가
하나 둘 우리같은 노인들 다 죽어가는데(여기에서 일로 이로는 동강서 목포로 가기전 지명이기도함 다음도 마찬가지)
명산 승달산 몽탄 건너에
갈마음수형의 동강의 못
상서로운 빛 드리운 시중골 무제봉이라네.

 
 
20여년 세월이 지난 어느날 친척으로 부터 예전 부친께서 살아생전에 육필로 써 주셨던 한시 한수가 있다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볼펜으로 쓰여진 메모장을 받았습니다.
한자를 겨우 읽는 정도여서 아는 분께 보여드렸더니 이렇게 해석을 보내 주셨더군요.
무얼 말씀하시고자 한 것인지 구체적인 정황을 알지 못해 정확히 이해 할수는 없으나 어렴풋이 귀의 하시고자 했던 뜻을 말씀하신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벌써 부친께서 돌아가신지 20년이지만 이 한수의 시로 인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해 집니다.
 
(*)
두개의 해석이 있습니다.
나주시 동강면 시중동을 모르시는 분과 잘 아시는 분이 해 주신 것 입니다.
아버지는 고향을 눈 앞에 그리셨나 봅니다.
(*)
이제는 36년 전 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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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욕일까?
그간 모의고사 성적과 거의 비슷한 결과물을 보고 있는데 왜 이리도 아쉬움이 남을까?
지독한 과당경쟁으로 치닫는 입시경쟁을 보면서 그리하지 말자 마음을 다져 왔었는데 막상 그날이 되니 그때 맘은 어델 가고 지독한 경쟁 의식만이 지배한다.
딸 아이에게 미한함 대신에 경쟁에 몰입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태도가 일관성을 잃고 있는 건 아닌지 물어 보고 싶다.
이제 두달안에 딸아이의 첫번째 지독한 경쟁의 결과가 나온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소위 명문이라는 꼬리표를 달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어쩔수는 없는 것 같다. 명문이라는 꼬리표가 앞으로의 세상에 사회적 묵인하에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또 스스로가 본인을 옥죌 것인데... 그런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하는 바램이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는 것이 한심할 뿐이다.
딸아이는 이제 막 본인의 세상에 진입한 것인데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당당함을 보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은데 스스로 열패감에 고민하고 있으니 재수를 권해 보아야 하나 고민스럽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겠지만 아직 미래에 대한 것을 많은 고민 없이 살아 왔기에 현명한 판단이 아직은 서투를 것인데... 이런 생각 때문에 나의 시각으로 규정된 판단을 강요한다는 것도 부질없어 보이고 변화될 미래에 대한 확실한 예지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니 참으로 난감하다.
딸아이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겠지만 본인도 이 과정을 무척이나 힘겨워하고 있는 듯하다. 부디 아마도 인생의 첫번째 고빗길을 당당하게 헤쳐 나가길 바랄 뿐이다.
지금 부터라도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히고 딸아이의 결정에 도움이 될만한 것이 무엇인지 부터 고민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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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돌아 가신지 벌써 15년이 넘었다.
유언으로 화장을 원하셨지만 차마 그리하지 못했다. 살아 있는 식구들의 아쉬움이 더 컷기 때문에 찾아가 볼 수 있는 묘지를 선택했고 그동안 묘지 앞에서 손자도 뵈 드리고 일이 있을때 마다 찾아가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
벌써 돌아가신 부친의 당시 연세와 불과 10여년 차이로 다가서고 있는데 늦었지만 부모님의 유언대로 화장을 해드리기로 맘먹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복병을 만나고 말았다. 위 누님 두분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른 것이다. 나는 영혼의 존재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돌아가신 분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인식에 계실 뿐이지만 누님들은 그게 아닌가 보다. 처음엔 산골을 할까 하다 다른 분들이 우려할까봐 납골당에 모실 생각으로 추진해 왔는데 누님들은 조형이 사라지는 것이 서운하신가 보다.
누님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해 보려고 밤 늦게까지 인터넷에서 납골묘와 납골탑을 검색해 봤는데 검색하면 할수록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만 깊어갈 뿐이다. 공동묘지에 죽 어선 석물들을 보면서 산을 깍아 캐낸 돌을 죽 늘어 놓은 걸 보고 답답함이 밀려온다. 상징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상징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하는 한 어떤 장례문화를 이식한다 하더라도 자연파괴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시진을 보면서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집안에 조촐한 안치단을 만들어 볼까도 생각 중이지만 남들이 ?u로 하지 않는 방법이기에 적당한 솔루션이 없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유골함을 안전하고 깨끗하게 집안에 설치할 방법은 없었다.
이제 어떡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데 맘의 결정이 안선다. 혼자 생각으로 일을 진행하면 같은 부모를 둔 누님들의 서운함이 클텐데 어려울것 같고 누님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납골탑이나 납골묘를 하게되면 내 맘이 편칠 않으니 어찌해야 좋을지 갈등이다.
아무래도 추진을 멈추고 이대로 시간을 좀더 갖는 것이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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