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는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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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i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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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에 해당되는 글 3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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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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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사진 찍은겨? 2
  3. 2006.01.18
    오랜만에 동아리 홈피 들렀다 챙긴 것들
  4. 2006.01.13
    블로그를 옮겼네요
  5. 2006.01.13
    "난주"를 읽음
  6. 2006.01.13
    김지하의 오적
  7. 2006.01.13
    자작 프로젝터 맹글기
  8. 2006.01.13
    은영이 기사 스크랩...
  9. 2006.01.13
    은영이 스크랩..

일년에 한번 쯤 보기도 어려운데 모인을 주선하고 연락을 도맡아 하신 종렬형과 공간과 시간과 음식을 준비해준 명주께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이럼 인호형은 삐질거야 아마도...

다들 바쁜지 소수정예 들만 모여 술이 거나하게 취했답니다. 요즘은 연락을 해서 인원이 많이 모이지 않아도 그러려니 합니다. 워낙에 다들 바쁜 사람들인지라. 갑자기 집안일 때문에 인천까지 왔다가 핸들을 꺽으신 영철형은 아쉽네요. 정말 이날 아니면 보기가 힘든데 말입니다.

오랜만에 본 경환이도 반가웠습니다.

동기넘들은 한놈도 얼굴 못 봤답니다.

모임때마다 즐거운(?) 논쟁거리를 제공하는 종렬형은 마음을 다잡고 조용히 있겠다고 다짐하고 왔다는데 50대 개구장이 정선형의 도발에 말려 들고 서서히 옆으로 전파되어 결국 다짐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재밌는 하루였습니다.

재휘의 과학고 입학도 축하하고 범윤이 오윤이도 반가웠답니다.



아마도 황박이야기 하는 중간인 모양입니다. 진지하네요. 김성옥 여사가 발언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인호형. 올해에도 건강하세요. 한상자 주신 제주 어머니의 정성어린 감귤 잘 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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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찌된 것인지 특정인은 항상 반 밖에 안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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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반쯤 나온 사진의 주인공이 굉장히 낯이 익네요. 누굴까요?

89년 동문회 라는데 나는 가질 않았던 것 같은데.

여하튼 대문에 나온 이 사진 보고 놀랐다는...

아래 "저 평등의 땅에"를 부른 윤선애, 아마 새벽 시절이 아니었을까?

가운데 서있는 이.

A tribute to 1977~1996

3. 저 평등의 땅에('85 류형수 작사·작곡)Since 1988
수많은 곡들을 만들어 낸 '류형수'의 대표곡으로 노래모임 "새벽"의 윤선애(84)의 가창에 의해 널리 알려졌으며, 후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에 권진원의 목소리로 재현되었던 곡. 본 음반에는 이노래의 시작부터 함께 해온 윤선애의 차분한 목소리가 잘 나타나 있다.

4. 그루터기('77 한동헌 작사·작곡) Since1979
초기 메아리 작품으로 79년 어느 야학의 주제가로 만들어진 노래. 20여 년의 메아리 역사상 가장 폭넓은 사랑을 받은 노래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 1집', '김광석(타계)' 등에 의하여 널리 알려졌다. 본 음반에서는 노성은(96)의 감각적인 피아노 연주와 안정일(90)의 새로운 편곡으로 단장되었으며, 1절 정철원(91)의 독창과 2절 79학번인 김보성, 김기수(일요일이 다가는 소리 작곡), 김제섭(산하, 하얀비행기 등 작곡)의 중창, 코러스 및 재즈 기타편성의 간주, 3절 합창으로 표현되었다
< 출처 : 메아리(http://www.meari.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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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팔 블로그에 올렸던 것들을 이곳으로 가져왔습니다.

이쁜 딸과 마눌님이 둥지를 튼 곳으로 제가 이사온 셈이지요.

요즘 생활은 그냥 아무 생각없이 잊고 사는 겁니다.

지난 연말 술먹고 해롱거리고 있는데 친구넘이 황우석과 관련한 전화를 걸었을때 댓구 했던게 생각 납니다. 니일도 아닌데 뭐 그런데 관심 갖고 사냐고요.

그러나 사실은 아니죠. 인터넷이라는게 사람을 가만 두나요?

직업이 하루종일 컴 앞에 쪼그리고 하는 일이라 자연히 뉴스를 읽게 됩니다. 하여 비껴 갈수가 없는 거죠. 메일 확인하러 포탈에 가면 대문에 커다랗게 기사가 올라 있는데 안보고 지나치기가 어렵죠.

이제 저도 생명공학도가 된 기분입니다.

지금 황우석 교수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보면 집단 따돌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날 친구가 황우석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냥 튀어 나온말이 자본가의 승리이자 애국주의의 종말 아니겠냐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간의 황우석 신드롬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고 있었고 지나치게 애국주의 적인 휘두름이 못마땅했던지라 자연스럽게 이런말을 뱉게 되더군요.

그런데 지금 황우석 때리기는 도를 지나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건 자정능력이 아니라 시기심 또는 또다른 애국주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황교수의 거짓과 반윤리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이미 거의 밝혀진 것이고 최종적으로 검찰의 조사 결과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학문적으론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같지 않나요? 그런데 언론과 인터넷 매체에 홍수처럼 쏟아지는 의혹들은 걸러지지도 않은체 마구 마구 퍼져나가고 있어요. 화가 나는 장면이죠.

블로그 옮긴 인사를 한다는게 사설이 길어 졌네요.

네이버!! NHN!!

가족이 저를 이리 오게 만드는 군요. 별로 이용하지 않던 포털로 말입니다.

가족은 역시 든든한 울타린가 봅니다.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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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겨레에서 신간 안내로 보고 마음에 두고 있다 며칠전 다른 책을 구매하면서 끼워서 샀다. 사실은 후일담 이라는 소재가 마뜩찮아 망설이기는 했지만 90년대 초반에 구성했었다는 것이 마음을 끌었던 것 같다. 당시 하고 싶은 말을 세상에 내어 놓지 못한 것을 내심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80년의 광풍에 휘말려 자신의 꿈을 잊은 채 살아가다 어느날 자신의 모습에서 낯선 이방인을 느낄때 당혹스럽다. 그 느낌을 어느정도는 공유하기에 어깨에 통증이 오는 줄도 모르고 내리 세권을 읽고 나니 회한과 그리움이 밀려온다. 진짜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몇몇의 안부가 궁금하고 이미 세상을 등진 몇몇이 가슴을 후빈다. 내가 떠나온 그 자리를 아직 지키고 있을 사람들에게미안하고 아직도 멀기만한 여명을 잊고 산 것은 아닌지 답답하다.
그때의 기억들이 어찌보면 내 삶을 지탱하는 가늠자 역활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힘든 삶이지만 정직한 인생을 강요하는 질긴 끈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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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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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티비보다 모니터가 더 크다보니 모니터에 코박고 영화를 봤었다.
언젠가 집에 프로젝터를 놓아보겠다는 맘은 있었지만 어디 그게 맘대로 되는 일인가.
프로젝터도 자작할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왔었지만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 이번에 어떻게 총알도 준비되고 주변에서 질르기를 충동질하는 바람에 만들게 되었다.
아마도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었으면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쉽게 시작하지 못할 것 이었지만 마침 자작 사이트에서 부품을 모아 공동구매를 진행하는 것을 보고 쉽게 시작할수 있었다.
부품이 도착한 것은 술을 떡이되게 먹고 늦게 귀가한 날이 었다. 부품이 온 것은 알았으나 당장 정신이 하나도 없어 그날은 박스 조차 뜯어보지 못했고 보통때 같으면 쉬는 날이라 하루종일 방바닥에 붙어있었을 텐데 새벽 6시에 기상하여 박스를 풀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눈빛을 보내는 마누라를 모른체 하고 박스를 풀어내는데 부품이 방안 한가득하다.
우선 사이트에서 가장 많은 실패담을 본 LCD 모듈부터 조립을 시작한다. 집에 있던 온갓 공구를 가져다 마져 풀어 놓으니 앉을 공간도 안나오는 상태다. 하하. 그래도 부품을 보니 기분은 좋다. 사이트 자작기를 인쇄해 보면서 분해하고 세트에 고정시키고.. 어 너무 쉽다. 우선은 걍 넘어간다. 다음은 광원 모듈이다. 자작기 보면서 나름대로 생각해 둔 대로 시도 했다. 이것도 안 어렵네. 내침김에 케이스 조립.일사 천리다. 원래는 계획을 세워서 하라고 되어 있는데 인생이 대충인데 이것도 뭐 대충이다. 대충 만들어 놓고 보니 점심때가 됐다.
잠시 쉬고...
오후엔 약속이 있어서 나가봐야 하는데 눈앞에 펼쳐져 있는 부품을 보면서 좀 늦게 나가더라도 박스 안에 다 집어 넣고 가고야 말겠다고 다짐한다. 다음은 제일 자신있는 전기 재료다. 고정하기 전에 임시 배선하고 전원을 켰다. 당연히 불이 들어와야 하는데 꽝이다. 뭐지 뭐가 잘못됐지? 같이 받은 전원 모듈이 전원 공급장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화로 문의해서야 알게됐고 다시 시도. 불이 들어 온다. 광원과 LCD 모듈 적당한 거리에 세워 놓고(세트로 온거라 감으로 해도 된다) 전원 연결하고 LCD에 입력신호가 들어 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절반은 됐다 안심하고 외출했다. 그러고 보니 이때까지 가져온 전자제품 매뉴얼도 한번도 안 봤다. 너무 용감하다는 생각이....
그날저녁 집에 돌아와 스크린 모듈을 조립하기 시작했으나 손님이 온데다 마누라의 잔소리도 있고 해서 내일하기로 하고 살펴만 보는데 모르겠다. 그냥 잊고 손님접대하고 일정은 내일로 미룬다.
다음날 아침 이날도 일찍일어나 조립을 시작한다. 마누라 정말 이상한 눈으로 본다. 아침에 다시 스크린을 보니 구조가 한눈에 팍 들어온다. 자고 있는 중2짜리 딸내미하고 아들내미 깨워서 보조시키고 스크린 조립 완료. 이젠 여기다 프로젝터 화면만 쏘면 끝이다. 하하.
모든게 순조롭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더 어렵다. 케이스 안에 집어 넣어 조립하고 모듈들 위치잡고 스크린에 화면을 띄운다. 나오긴 하는데 좀 이상하다. 이때 매뉴얼등을 보기 시작했다. 좀 일찍 보고 할껄 하는 후회가 든다. 렌즈도 뒤집어 끼웠고 반사경 위치도 문제고 문제 투성이다. 그래도 대충 인생인데.
조금씩 조정하면서 정리해 나갔다. 피쓰컵 결승 요걸로 봐야하는데 손을 재촉하면서 서둘렀다. 근데 결승 언제 하는지도 모른다. 위성 연결해 화면을 띄워놓고 두어시간 고생하다 이정도면 되겠다 싶어 뽄드칠하고 마감했다. 그래도 남은 일이 많을 거란 생각이 든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내미 튀어 나온다. 지금 축구한다고. 아직도 밖이 훤해서 제데로 보지는 못했지만 공을 쫓아 목이 움직여야 되는 걸 느끼는 순간 바로 이거구나 하는 느낌이다.
저녁먹고 아이들이 이순신 보자고 해서 스피커가 아직 설치되지도 않았는데 티비 켜서 스피커 대신하고 스크린으로 화면을 본다. 음 정말 화면 크다. 보면서 좌우 안 맞는 거하고 삐뚫어 진거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광원쪽과 일직선 상으로 일치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하고 반사경 각도가 문제인 것으로 생각이 들어서 반사경 쪽은 일단 손을 보고 광원은 다음을 기약한다.
그리고 올요일 출근. 바빠서 다시 꺼내 보지도 못했으나 맘은 어떤걸 시도해 볼지 정리가 끝났다. 그리고 수요일 다시 꺼내서 조정하고 목요일 스피커 설치해서 화면 조정을 다시 한번 했다.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아그들하고 국민여동생 그녕이 나오는 영화 한편 감상. 극장이 따로 없다. 그것도 쐬주한잔 하면서 보는 영화라니....
담엔 틈틈히 부품모으고 해서 정말 자작한번 시도해볼 예정이다. 공구도 몇가지 더사고.. 특히 직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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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문화] 파리지앙, 재즈에 흠뻑 젖다
장고 연주 선보인 한국가수에 열광도
재즈 가수 강은영씨가 파리의 한 클럽에서 청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프랑스의 노래라면 샹송이 연상된다. 그러나 재즈의 인기도 이에 못지않다. 파리의 재즈 클럽들은 전후 프랑스에 수입된 미국 문화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프리카 문화가 섞이면서 일종의 '문화적 용광로' 역할을 한다. 실제로 전세계의 많은 유명 재즈 뮤지션들이 파리에 거주하며 공연하고 있다. 최근엔 재즈 뮤지션들 특유의 '잼(jam.합주)'이 활발하다. 전혀 모르는 사이인 재즈 뮤지션들이 함께 연주하는 방식이다.

◇재즈와 만난 한국 운동가요=지난달 25일 오후 11시 파리 중심부 샤틀레 지하철역 인근 롱바르가(街) 60번지. 파리에서 세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재즈 클럽 선사이드가 한 한국 가수의 공연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70평 남짓한 실내를 가득 메운 청중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랫말과 장구 장단에도 불구하고 시종 열띤 표정이었다. 재불 재즈가수 강은영씨가 보컬을 맡아 외국 재즈곡 중간중간에 한국 노래를 선보이는 독특한 공연 형태였다.

강씨는 1부에서 도종환씨의 시에 윤민석씨가 곡을 붙인 '오늘 하루'를 부른 데 이어 2부 첫곡으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열창했다. 중간에 10여분가량 장구연주도 끼워넣었다. '빼앗긴 들에도…'를 부르기 전 강씨는 "한국이 일본 식민지이던 때의 암울한 현실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래가 끝나자 청중들은 환호성과 함께 갈채를 보냈다.

공연장에서 만난 프랑스 재즈 가수 안느 뒤크로는 "장구 소리가 가볍고 순수하고 경쾌했다"고 칭찬했다. 자신을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출연 멤버라고 소개한 마리 프랑스 루설은 "타악기 하나로 무대를 장악하는 한국 음악에 놀랐다"고 말했다.

강씨는 서울대 88학번으로 노래 동아리 '메아리'에서 노래와 인연을 맺은 후 20대 내내 학생운동의 현장과 함께 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가극단 '금강'에 들어가 파업과 시위현장을 찾아다니며 노래했다. 이후 우연히 재즈 선생을 만나 재즈에 입문했다고 한다. 그녀는 요즘 파리에서 세 개의 재즈학교를 동시에 다니고 있다. IACP와 빌 에반스 피아노 아카데미, 재즈 프렐루드가 그것이다. "너무 욕심내는 것 아니냐"고 묻자 "한국에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어 단시간에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재즈를 찾는 파리지앵들=프랑스에서 24시간 재즈만 전문으로 방송하는 라디오 방송국은 TSF, 파리 재즈, FIP 등 세 곳이나 된다. 다른 라디오 방송국에서도 재즈 프로그램은 거의 대부분 고정 코너를 장식하는 감초메뉴다. TV에선 채널 6에서 세계 유명 재즈 뮤지션들의 공연을 방영하는 '재즈 6'프로가 15년 넘게 장수하고 있다. 케이블 방송국 메조도 클래식 음악과 함께 재즈를 다루고 있다.

'재즈 맨'등 재즈 전문잡지를 비롯, 재즈 음반만 판매하는 전문상점 '재즈 코너'도 있다. 프낙과 버진 등 대형 음반점에도 재즈는 빠지지 않는 메뉴. 프낙에서 5년간 재즈 음반 판매를 담당했다는 로낭 스파텔은 "팝송보다는 시장이 작지만 기복없이 꾸준히 판매된다"고 말했다.

재즈 교육기관도 성인들을 위한 전문학원들과 파리시에서 구청별로 운영하는 음악원까지 다양하다. 파리에서는 10여 군데의 재즈 전문 공연장에서 매일 연주가 이루어지고, 400곳이 넘는 클럽과 바도 재즈 공연장 역할을 하고 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polee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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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03 17:51 입력 / 2004.05.04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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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재불 재즈 가수 강은영씨 / 삶의 진정성이 담긴 재즈

가녀린 체구처럼 가는 목소리, 수줍은 듯한 첫인상. 프랑스에 온지 3년만에 파리의 유명한 재즈 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재즈 가수 강은영씨는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재즈 가수의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걸어온 '인생의 길'이 다른 가수들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88학번으로 전설적인 노래 동아리 "메아리"에서 노래와 처음 인연을 맺은 그녀는 20대를 학생운동에 '다 바쳤다'. 민중 가요를 부르며 시위 현장을 주도했고 90년대 후반에는 가극단 '금강'에서 정치적, 민족적인 소재를 다룬 가극을 통해 문화 운동을 해 왔다.
그러던 그녀가 재즈를 시작하게 된 것은 한국 재즈의 어머니라고 불리우는 박성연씨를 만나면서부터다.
"그분으로부터 개인 레슨을 1년 정도 받았습니다. 재즈는 그동안 제가 접해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음악이었어요. '변한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재즈 역시 그 뿌리는 미국에서 고통받고 있었던 흑인들의 한과 노동이 만들어낸 음악장르이기 때문에 제가 걸어왔던 길과 상반된다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강은영씨는 재즈로 음악 세계를 바꾼 후에도 각종 사회 집회에 참여해 왔다. 또한 그녀가 부르는 곡들 중에도 강한 메시지를 담은 곡들이 종종 포함된다.
"3년 전, 파리에서 활동하다 한국에 온 재즈가수 나윤선씨를 만났어요. 클럽 YANUS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분이 저에게 프랑스로 재즈를 공부하러 가지 않겠느냐라는 제의를 하시더군요. 재즈를 공부하기 위해 꼭 미국에 가야한다는 법은 없다고 하면서요. 유럽 재즈도 나름대로의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강은영씨는 나윤선 씨의 말을 듣고 바로 프랑스행을 결정했다. 그리고 ICAP라는 유명한 재즈 학교에서 수학하면서 교장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재즈 뮤지션을 존중하는' 프랑스의 분위기가 아직 막 재즈가 꽃피우기 시작한 한국의 분위기와는 달랐기에 빠른 시간 안에 파리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녀의 곁에는 각종 행정적 문제와 음반 홍보 등을 도와주는 전문가들이 있었다. 그들 덕에 빠른 시간 안에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될 수 있었다고 강은영씨는 전한다.
Le Triptyque, le Caf Universel, Opus Caf 등 파리의 다양한 재즈 클럽에서 한달에 2-3번씩 파리의 재즈필(Jazzphile)들을 만나고 있는 그녀. 그녀가 부르는 곡들에는 정통적인 재즈 스탠다드 넘버 뿐 아니라 한국의 민중가요도 포함되어 있다.
"한국말로 된 노래이기 때문에 미리 관객에게 제가 부르는 노래에 대해 설명하고 시작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공연이 끝나고 나면 관객들은 '한국말은 모르지만 그 노래가 제일 감명깊고 좋았다, 네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느껴진다'고 말하더군요. 아무래도 그 노래가 다른 영어로 된 노래보다 저의 삶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면이 있겠지요."
이런 성공적인 공연을 더해오면서 오는 일요일(25일)에는 파리의 3대 재즈 클럽 중 하나인 "SUNSIDE"에서의 공연도 잡혔다. 강은영씨는 "유명한 장소이고 저명한 미국의 재즈 음악가들도 종종 그곳에서 공연을 하기 때문에 조금 떨린다"며 파리에서의 음악 경력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이번 공연에 대한 설레임을 감추지 않았다.
강은영씨의 홍보를 맡고 있는 Diana Hardes 씨는 "은영씨의 강점은 그녀의 독특한 목소리에 있다. 흑인과는 많이 다른 목소리와 한국의 문화와 정서가 녹아든 그의 음악을 정말 새롭게 보고 있다"고 전한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음반이 쏟아지는 재즈 전문 라디오에서도 그녀의 음반을 듣고 바로 연락이 올 정도다. 클래식한 발성법과 동양인의 여린 목소리가 어우러진 그녀의 음색은 그녀의 음악이 '감동적일 수밖에 없는' 가장 강력한 요소일 것이다.
"앞으로 재즈와 우리 민요를 접목시킨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든 프랑스에서든 제가 사는 방식, 제가 부르는 노래의 중심은 변하지 않아요.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통해 제 음악 세계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재즈를 통한 그녀의 새로운 음악 세계가 활짝 꽃피우기를 기대해본다.

2004년 4월 25일 일요일 오후 9시
Jazz club SUNSIDE (예약 01.4358.2350)
60 rue des lombard 75004 Paris

정보 www.jazzvalley.com/musician/eun.young.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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