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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i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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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에 해당되는 글 3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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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1.03.03
    PX4 bootloader 만들기
  3. 2021.03.03
    PX4 ArduPilot 개발환경
  4. 2021.03.03
    아두파일럿(ArduPilot) 바이너리 만들기
  5. 2021.03.03
    드론 입문 3년차
  6. 2015.01.16
    잡생각 - 각련(롤링 타바코) 말아 피워 볼까? 담배 키워 볼까?
  7. 2014.11.20
    오랜만의 블로깅
  8. 2011.10.11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가다
  9. 2009.08.22
    강화 설화펜션 하늘 빛에 반하다.
  10. 2009.05.27
    '무사의 죽음' - 김규항 & '한 시대의 종말을 애도함'

스마트팜을 집에서 시작해 볼까?

몇년째 묵혀 두고 있는 숙제다.

예전의 경험으로는 우선 적당한 하드웨어를 설계하고 각종 IO를 설계해야 만 시작할 수 있었다.

IOT가 발전해 감에 따라 상용 디바이스들이 엄청 좋아 졌다.

소규모 스마트팜을 구성하는데 굳이 고민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물론 온실 환경에 따라 전장함 인터페이스가 필요하겠지만 그것도 상요 디바이스를 얼기설기 엮으면 안될 일이 없어 보인다.

각종 UI 만드는 일은 잼뱅인데다 최근 개발 도구를 잘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쫌 걱정이긴 하다.

당장 복잡한 스마트팜(온도 환기제어, 관비 제어)을 만들기 보다는 간단한 가드닝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좀 더 전문적인 접근을 위해서는 온실내 각종 환경정보를 수집하는 인터페이스와 종합적인 구동기 제어를 위한 인터페이스에 대한 접근은 고민을 더 해 봐야겠다. 그래서 일단 뒤로 미루고 ㅎㅎㅎ

 

뭐 리눅스에 어느정도 익숙하니 Raspberry PI로 시작해 볼까 한다.

마침 디바이스마트에 특가 판매하는 4B 우선 주문했다.

도착하면 본격적으로 이미지 부터 만들어 보고 와이파이 폐쇄망으로 HA를 구성해 보고자 한다.

 

디바이스 마트

https://www.devicemart.co.kr/goods/view?no=12234534 

 

라즈베리파이4 (Raspberry Pi 4 Model B) 4GB + 방열판

1.5GHz 쿼드코어 64-bit Cortex-A72(ARM v8) / 기가비트 이더넷 / USB 3.0 x2, USB 2.0 x2 / 듀얼 4K 디스플레이(Micro-HDMI x2) / USB-C 전원(5V 3A 이상 권장) / RAM : 4GB

www.devicemart.co.kr

 

흠 Zigbee와 z-wave 라즈베리파이 쉴드 보드에 대한 정보 알고 계시면 좀 알려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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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X4에서 지원하는 하드웨어의 부트로더(boot0 코드)를 플래쉬해 주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아래 절차를 통해 바이너리를 빌드한 후 하드웨어에 다운로드 해 주어야 정상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하드웨어를 구매하면 부트로더가 다운로드되어 있다.

 

git clone https://github.com/PX4/PX4-Bootloader.git

cd PX4-Bootloadser

git submodule sync --recursive

git submodule update --init --recursive make

make

아마도 에러가 날 것이다.

지원하드웨어 전체를 빌드하려다 dependency 오류로 더이상 진행하지 않고 에러가 난다.

안그럴 수도... 그래서 특정 하드웨어 바이너리 만 만들는 것이 좋다.

fmuv5의 바이너리만 빌드하려면 make px4fmuv5_bl

이 바이너리는 ArduPilot도 동일하다. ROS이전에 부트 영역에 있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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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X4나 ArduPilot이나 리눅스 파이썬 3.6 크로스 컴파일러(gcc toolchain) 환경에서 개발하는 것이 안정적이다.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경우 윈도우즈 환경에서 개발이 가능하다.

윈도우즈 환경에서 개발환경을 일일이 설정하는 것 보단 아래의 툴체인을 받아 설치하면 쉽다.

github.com/PX4/PX4-windows-toolchain/releases

 

Releases · PX4/PX4-windows-toolchain

Repo containing all scripts to install and use the PX4 Toolchain for Windows. - PX4/PX4-windows-toolchain

github.com

설치하는 방법은 PX4의 문서를 보면 쉽게 따라할 수 있다.

 

docs.px4.io/master/en/dev_setup/dev_env_windows_cygwin.html

 

Windows Development Environment | PX4 User Guide

Windows Development Environment The following instructions explain how to set up a (Cygwin-based) PX4 development environment on Windows 10. This environment can be used to build PX4 for: Installation Instructions Download the latest version of the ready-t

docs.px4.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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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duPilot 깃허브에서 원하는 버전을 다운로드 받아 자신의 하드웨어에 맞는 바이너리를 만드는 방법.fmuv5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경우를 설명한다.

 

git clone -b Copter-4.0.3 https://github.com/ArduPilot/ardupilot.git ArduCopter-v4.0.3

cd ArduCopter-v4.0.3

git submodule update --init --recursive

python -m pip install future

 

정의된 하드웨어의 내용을 수정하고 싶다면 

\libraries\AP_HAL_ChibiOS\hwdef\fmuv5\hwdef.dat

파일을 열어 수정하고 컴파일 하면 된다. 센서의 방향을 부착하는 방향을 설정에서 변경하지 않으려고 로테이션 정보를 수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제 바이너리를 만들어 보자. 먼저 fmuv5 하드웨어는 io를 담당하는 프로세서가 따로 있다. 따로 있는 프로세서의 바이너리를 먼저 만들자.

./waf configure --board iomcu

./waf clean

./waf iofirmware

 

먼저 위에서 만들어진 바이너리를 포함되도록 아래 폴더에 복사한다. 기본적으로 만들어져 있으나 혹시 io 바이너리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면 위 과정을 해 주어야 한다.

\build\iomcu\bin의 iofirmware_highpolh.bin,iofirmware_lowpolh.bin 파일을 \Tools\IO_Firmware 폴더로 복사한다.

 

다음으로 메인 프로세서의 바이너리를 빌드하면 완료.

./waf configure --board fmuv5

./waf copter

 

오류없이 빌드가 완료되었다면

\build\fmuv5\bin 폴더에 arducopter.bin 파일이 만들어 졌을 것이다.

 

PX4 단순하다. 

git clone -b v1.11.0 https://github.com/PX4/Firmware.git Firmware-v1.11.0

필요한 파일을 수정한 후(센서 정보등을 수정하려면 rc.board.sensors 파일을 찾아 수정하면 된다)

make px4_fmu-v5_default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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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 운영하는 드론 교육원을 방문한 것이 17년 겨울 철새관제 프로젝트를 할 때였다. CCTV를 설치해 저수지(우습제)의 철새 도래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일이었는데 AI 전파를 최대한 빠르게 파악해 보자는 프로젝트였다. 요즘은 딥러닝이 보편화되어서 분석을 한다면 딥러닝(AI)으로 AI(조류독감)를 추적하려고 했겠지만 그때는 기계학습으로 분석했었다.

자그마한 드론만 보다 약재살포 드론을 그때 처음 만났다. 특히나 산업용 드론에 장착된 거의 모든 FC가 DJI 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드론에 관한 연구개발도 많이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고 국방용 드론 개발에도 많은 투자를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의외였다. 폭풍 검색 후 나름의 결론은 오픈소스 진영이 꽤 많이 존재하고 있었고 충분히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준에 까지 이르렀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PixHawk 2.1 큐브와 나비오를 구매하고 PX4와 ArduPilot 오픈소스 분석에 들어간지 2개월여 만에 소스 수준에서의 접근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소스를 직접 빌드하고 원하는 드라이버를 선택하여 자그만 드론에 장착 첫 비행을 한 것이 이듬해 4월. 결론은 드론 개발을 해도 될 것 같은데? 항공역학이나 수치해석은 못하더라도 오픈소스의 도움을 받으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리고 개발을 진짜 시작해 버렸다.

그동안의 메모가 여기 저기 흩어져 있어서 조금 정리를 해 봐야 할 것 같아서 블로깅을 시작한다. 어쩐 주제로 시작해야 할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올리는 주기도 잘 모르겠다. 요즘은 영상분석에 관심이 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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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가격이 두배가량 올랐다. 엄밀히 보자면 담배 가격이 오른게 아니라 세금이 올랐다. 

저정도 금액이면 담배를 조금 줄이면 피울 수 있을 만한 가격인데 건강증진세 거둬다 건강과 관련이 없는 곳에 쓰겠다고 하는 별 싸가지 없는 조세 정책에 동의하지 못하겠다. 담배를 끊어야 겠다는 생각을 누군가 강요하는 것이 마뜩찮지만 어쩔수 없이 강요 당하고 있다.

김근태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국민건강을 위해 담배값 인상을 정책제안 했을때 서민들 위한답시고 반대질 하던 것들이 이제는 앞장서서 찬양 일색이다. 온갖 감언이설로 현혹하고 있는 담뱃세 인상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다른 대안을 찾아 보기로 했다.


세금을 좀 덜 내는 방법이 있기는 있더라. 각련이라고 한다. 인터넷에 롤링 타바코로 검색하면 다양한 내용이 있다. 자가 권련 제조 기기 부터 상품 안내까지 다양하다. 내침김에 담배 종자를 검색해 보았더니 담배인삼공사에서 연구 또는 관상용으로 얻을 수 있다는 정보가 있다. 구차하다.

또 다른 방법은 외국 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며칠전 개발키트를 구매하려고 가입했던 이베이 들어가 tabacco seed를 검색하니 생각보다 많이 검색된다. 버지니아 종도 보이고 켄터키 종도 보인다. 볼리비안 종도 있다. 하우스에 거꾸로 매달아 잎담배 말리던 풍경과 농활 갔을때 건조기에 쪄서 말리던 광경이 그립기도 하고 냅다 구매해 버렸다. 3월 초에 파종해서 5월 초쯤에 정식해 봐야 겠다. 중부지역이라 조금 늦게 심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이런 깜찍한 Air mail로 도착했다.







참 부지런한 분들 많다. 상세하게 방법을 정리해 주셨다.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S102&articleId=67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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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별난 취미가 있다.

청국장과 막걸리.

헬리코박터 치료후 주체할 수 없이 몸무게가 불어 다이어트 소재로 선택한 청국장은 새로운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처음 띄운 청국장에서 엄마의 향수가 느껴졌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방법을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고 옛날을 기억하고 현대 문명을 이용하고 몇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처음 완성한 날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지금은 감각적으로 생청국장을 거의 매일 접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억이 있다.

어린시절 세무소 직원이 시골 집에 찾아와 밀주를 담그고 있는 지 조사하러 다니면서 집안을 뒤집고 다니던 기억과 엄마가 돌아 가시기 전 언젠가 외할머니께 전수받은 기술로 막걸리를 담그시던 기억이다.

돌아가신지 한참인데 그 기억이 자꾸 기억의 언저리를 맴돌아 또다시 인터넷을 뒤지며 시도 했었다. 지금은 10년 가까이 막걸리를 담고 있으니 자연스럽지만 처음엔 수십차례 실패를 거듭했었다.

지금은 어지간히 비슷한 맛을 내고 있으니 대충은 선무당은 되나 보다.

막걸리에 철학이 있는 것 보다는 엄마의 맛을 기억하는 것이고 그다지 나쁜 맛이 아닌 가양주를 지인들에게 제공한다는 자부심으로 근 10여년을 살고 있다.

오늘은 친구가 쌀을 보내 담궈 달라고 부탁을 한다. 물론 친구들 끼리 회포 풀 요량이다.

나도 이번엔 이쁜 막걸리를 대접하고 싶어 흑미로 밑술하고 찹쌀로 덧술 했다.

흑미의 전분 함량이 형편 없어 식은 밥으로 보충하기는 했지만 불안했다.

오늘 덧술 담그는데 향이 좋다.

분홍빛 청주가 기대된다.


아 그런데 땅콩 발아는 왜 이리 더딘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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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모임을 만들라고 배후 조정하셨던 회장님께서, 관악산에서 였을까? 가을에 지리산 들러 남원에 가자고 제안 아닌 제안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이번 남원에서도 해외 등반 이야기도 꺼내 놓으시더니 슬그머니 근우에게 묻어 가시더라. 계속된 회장님의 불참으로 지리산행이 잊혀질 무렵 남한산성에 야유회 갔다가 거기서 다시 지리산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들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가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여유롭게 다녀 오는 것도 좋겠지만 다들 시간 맞추기도 힘들고 해서 무박 산행을 하기로 의기투합 하여 정한 것이 백무동-천왕봉-중산리 코스였다. 물론 코스를 알아본 건 본인이었지만 별다른 이견이 없어 확정 지으려는데 우리의 회장님 께서 무슨 생각이신지 백무동으로 다시 내려오는 코스를 잡으시잔다. 그 이유는 당일날 았았지만...


페북에 이벤을 띄우고 기다리고 있자니 어라~ 원봉이하고 근우네는 가족 동행이네? 이름만 알고 있던 95? 후배 둘도 간다고 하네? 제법 판이 커지는 상황이 걱정이 앞서있는데 회장님께서 덜컥 동기 세분 까지 명단에 올리신다. 안되겠다 싶어 같이 산에 다니는 친구에게 무전기를 구해 볼려고 했으나 일정이 겹쳐서 어렵게 되고 문제가 있겠나 싶어 출발 당일까지 걱정 붙들어 메어 놓고 당일 동서울 터미날로 향했다. 
 

전날 집을 나온 탓에 가는 도중 화장실에서 등산복으로 갈아 입고 터미날에 도착해 보니 좀 이르다. 우리 회장님께 전화가 온다. 술한잔 하고 가고 있는 중이시라는 데 취기가 상당하게 느껴진다. 내일 산에는 절반도 못 오르고 전부 하산하는 게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이래저래 밤 12시 동서울 터미날에 도착한 회원은 이병호,정혁기,정동실(부부),나,근우와 아들 지훈,원봉이 하고 미경이 그리고 윤희, 후배 평송이하고 재현이 모두 12명이다. 함양에서 합류하기로 한  석원이 까지 하면 13명이라는 올라야 하는데 선두와 후미가 차이가 많이 날 것 같지만 걱정은 일단 제쳐 두기로 한다,  


드디어 출발시간이 되어 지리산행 버스에 오르려는데 5분 간격으로 4대의 차가 대기하고 있다, 예약 승객이 많아서 3대의 버스를 증편한 것 같다, 대략 150여명이 자정에 지리산으로 행하는 것을 보면 지리산은 모두에게 제일봉이란 인식이 있나 보다. 백무동에 버스가 도착할 무렵 차창밖으로 누군가 주차장에서 해드렌턴을 비추며 열심히 석유 버너로 물을 끓이고 있다. 원봉이가 제일 먼저 광경을 보고 석원이 임을 직감했다 한다. 남원에서 늦을 까봐 자지도 않고 미리 와 있었다 하니 그 마음이 더욱 느껴진다.
 

백무동 주차장에서 산행 준비중

주차장에서 정성껏 준비해준 사과와 오이를 나눠 가방에 넣고 따뜻한 커피와 컵라면으로 요기를 한 뒤 두 팀으로 나눠 등산을 시작한다. 선두는 가장 복장과 장비가 좋은 평송이 하고 재현이가 앞서 출발하고 술자신 양반들 하고 근우네 식구 동실형 부부 혁기형과 후미로 출발한 시간이 새벽 4시 반경인가 보다. 오르는 길이 시작 부터 너덜길이어서 관악산 10분 오른게 전부라는 동실형네와 근우 아들 지훈이와 속도를 맞추다 보니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는다. 게다가 렌턴을 준비해온 것이 부족해서 중간중간 끼어 불을 비추고 올라가니 더딜 수 밖에... 그렇게 한참을 낑낑거리며 올라가던 중에 누군가 우리 대열 후미에 따라 붙는다. 이렇게 느린 대열에 합류한 그는 우리가 쉬면 같이 쉬고 출발하면 마치 일행 인 것 같이 간다. 대략 6시 반경이 되었을까 희뿌연 새벽이 어둠을 어느 정도 밀어 낸다. 병호형이 먼저 치고 올라 가신다. 조금 지나 혁기형이 후미는 걱정하지 마시라 하여 형의 등산 이력을 알고 있었던 터라 선두를 따라잡기 위해 나도 출발. 참샘까지 20여분 올라가니 병호형이 가고 계신다. 선두가 궁금한 터라 병호형을 뒤로하고 오르다 보니 얼마가지 않아 배낭을 가볍게 하려는 듯 선두 일행이 쉬고 있다. 가만히 보니 한명이 안보인다. 앞서 간 것인지 어쩐지 물어 보니 후미와 같이 올라 오는게 아니냐고 반문하는데 그제서야 후미 일행에 살짝 합류한 그가 재현이 인것 같다는 생각이 버뜩 든다. 오늘 처음 본 후배인데다 어두워서 사람을 분간하기 어려워 그가 재현이 인 것을 모르고 올라 온 것이다. 아니 침낭까지 배낭에 매고 온 친구가 왜 뒤로 처졌는지... 평송이 말로는 몇해 전 지리산을 왔었는데 그때도 힘들어 했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말도 없이 조용히 귀신처럼 우리 일행 후미에 달라 붙어 올라온게 그저 황당할 따름이다.


조금 뒤 병호형과 합류하여 출발. 장터목에서 뵙기로 하고 조금 속도를 내 본다. 장터목에 도착한 시간이 대략 8시 30분경. 지리산 산행 중 이렇게 좋은 날을 만나기는 처음이다. 천왕봉에서 새벽 일출을 보고 내려온 산객들이 식사 준비가 한참인데 화려한 일출을 자랑하느라 여기저기 난리다. 3-4시간동안 탁 트인 곳을 보지 못하고 올라왔는데 장터목에 이르자 사위가 훤하다. 구름한점 안보이는 데 새벽 안개인지 낮은 봉우리들이 구름에 걸쳐 있는 듯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느낌이다.
 


장터목에서 바라본 주변


하산 계획이 12시 정각에 현재 위치에서 무조건 내려간다고 약속을 하고 올라 온 길이다. 산의 어둠이 빨리 내리는 데다 백무동 쪽은 동쪽이어서 더 빨리 어두워 질 것 같아 오후 4-5시 전에는 하산하여야 안전 할 것 같아서 그리 정한 것다. 아무래도 후미는 장터목에서 하산해야 할 것 같아 선두로 올라온 병호형,석원이,평송이 하고 천왕봉으로 방향을 잡았다. 너무 쉬다 다시 올라 가는 길이라 또 힘이 든다. 올라가며 고산 지대에 펼처진 주목 군락과 짙푸른 하늘을 보며 다시 힘을 내고 보니 천왕봉이 지척이다. 마지막 암벽지대를 오르고 보니 사방에 더 높은 곳이 없다. 멀리 노고단이 보이고 마치 섬처럼 덕유도 보이는 것 같고 시계에 걸리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천왕봉에서 바라본 풍경 그리고 셀카


천왕봉에서 재현이와 근우,지훈이가 올라 왔다는 소식이 들린다. 올라 오신다는 병호형은 아직 감감이고 불편한 볼일 때문에 먼저 장터목으로 향하는데 병호형이 올라 오신다. 오시다 졸려 한숨하고 오신단다. 후미 소식 전하고 장터목에 도착해 보니 근우가 지고 올라온 라면을 끓여 소주 한잔 했다 한다. 한잔이 아니었겠지?
 



제석봉 근처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 군락지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 왕복 1시간 내외 걸리는데 11시경에 재현이하고 근우가 아들 지훈이하고 올라간다 한다. 12시 되면 천왕봉 못 가더라도 바로 하산하라 이르고 장터 같은 장터목에서 12시 조금 넘어 하산을 시작했다. 천왕봉 올라간 일행도 당연히 하산을 시작할 것이고 병호형이 같이 하산 하신다 하니 먼저 내려가 먼저 하산한 일행과 합류하려고 서둘러 백무동으로 내려왔다. 오후 두시 조금 넘어 도착해 동실형에게 전화하니 이미 남원에 가 계신다고 한다. 하릴없이 배회 하실까봐 빨리 내려 왔는데 이제는 내가 할일이 없다. 하산후 만나기로 한 집에서 묵에 막걸리 시켜 놓고 한잔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혁기형,병호형,평송,석원이가 차례로 내려오고 원봉이가 식구들과 내려온다. 마지막으로 재원이가 내려오는데 근우하고 지훈이가 뒤에 많이 쳐져 있는 상태라고 한다. 날은 어두워 지기 시작하고 걱정이 되서 다시 산을 되짚어 올라 가다 하산하는 객들에게 물어 보니 힘들어 한다는 소식을 전한다, 30여분을 다시 올라 가니 임무를 마치고 내려가는 구조대에게 물으니 바로 뒤에 있다 한다. 구조대에게 같이 하산하자 부탁하여 근우,지훈이 백무동으로 무사히 귀환 비로서 맘을 놓는다.
 



*) 백무동에서 부터 함께해준 함양사는 창호,명숙이 부부 반가웠습니다. 지방의 명산을 그 지역 회원 들과 같이 하는 자리가 가끔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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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nowflakes.kr/
www.cochari.com 

항상 그렇듯 즉흥적인 제안으로 강화에 있는 설화펜션을 방문했다. 저녁 9시경에서야 오기로 한 이들이 도착하고 자정 쯤 장어집 식구들이 도착해서 멀리 외포리 선착장의 불빛을 바라보며 늦은 밤까지 오랜만의 정담을 나눴다. 비몽사몽의 아침을 맞아 바쁘게 모두들 떠나가고 동우네와 펜션의 정취를 감상하며 찍은 몇장의 사진과 쥔장식구들과 함께한 사진을 올린다.
 
펜션 수리가 한창이다. 하늘위로 날아가는 제비가 눈에 띈다. 몇년 사이 구경도 못했던 제비가 어찌 그리많던지...


참 예쁘게 지어진 펜션과 강화의 하늘.


제비도 펜션에 숙박하고... 키우던 새끼는 둥지를 떠나고 둥지에 벌이 집을 지었다는데... 누가 벌집을 부셨단다. 제비들이 그랬을까?

펜션 주변의 풍경과 하늘.


더위에 지친 강아지(?) "미미" 울 둘째하고 같은 나이(15)다. 참 동물하고 함께한다는 것도 이별을 생각하면 쉽지 않을 것 같다.

쥔장 부부. 바삐 뭔가를...

펜션을 배경으로 쥔장 식구들과 함께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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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UHANG.NET

2004, 1998, 야간비행, 저 너머 세상을 향하여..

무사의 죽음

어리석은 형제와 아내와 자식들이 연루된 일로
그의 오랜 정적들이 그를 죽이려 악귀처럼 달려들었다.
몇몇 옛 동지들이 그를 팔았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신문들은 역사적 책임이라도 질세라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고함치며 발을 뺐다.

신중하고 또 신중했어야 할 측근들은
“생계형 범죄”니 “순수한 정치 보복” 따위 모자란 말이나 일삼아
그를 더욱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노란 손수건을 든 모든 사람들은 그를 구하는 일보다는
그를 향한 제 감정에만 충실했다.
결국 그를 도울 아무 것도, 단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절대 고독 속에서
그는 깊은 침묵의 마지막 칼을 빼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모든 비루한 것들을 단번에 베어냄으로써
“자연의 한 조각”으로 돌아갔다.
무사의 죽음이었다.

사람들아,

그의 죽음 앞에서
한 달을 지속 못할 입에 발린 칭송도
싸구려 신파조의 추억담도 모두 접고
깊은 침묵으로 예를 갖추자.
순전한 이상주의자이던 시절 그가 꾸었던 꿈만을 되새기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한겨레>
[시론]

한 시대의 종말을 애도함 / 김상봉



그가 마을 뒷산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한 시대가 끝났음을 알았다. 그는 바로 우리 시대였다. 누구도 그처럼 치열하게 자기를 시대 속에 던져 시대와 하나 된 삶을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가 보여준 숭고, 그가 넘지 못한 한계 그리고 비극적 종말이 모두 그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숭고였으며, 우리 자신의 한계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의 이 비극적인 종말은 시대가 길을 잃고 낭떠러지에서 추락한 것이 아닌가?

1979년 부마항쟁으로 장전되고, 80년 광주항쟁을 통해 발사된 시대, 모든 불의한 것들에 대한 광기 어린 분노가 총알처럼 아스팔트 위를 질주하던 시대가 불러낸사나이가 바로 노무현이었다. 그는 광주항쟁 이듬해 이른바 부림 사건으로 체포되고 고문당해 만신창이가 된 부산의 대학생들을 변호사로서 만나면서 처음 역사에 발을 들여놓았다. 불의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 타인의고통에 대한 순수한 공감이 아무 걱정 없던 세무 전문 변호사를 역사의 가시밭길로 불러내었던 것이다.

그 뒤 그는 역사의 부름에 언제나 자기의 전 존재를 걸고 치열하게 응답했던 소수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 치열함이 우리를 감동시켰고, 그 감동이 그를 끝내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까지 밀어올렸다. 그것은 그의 명예이기 이전에 한 시대가 보여줄 수 있는 치솟은 숭고였으니, 그는 우리의 자랑이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나는 역사가 이렇게 한 걸음 더 진보한다고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5년 뒤 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짐을 국민에게 떠넘기고 청와대를 떠날 때, 내겐 더 이상 그에게 실망하고 분노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그가 고향마을에 큰 집을 지어 이사하는 것을 보고, 잠깐 그 많은 공사비가 어디서 나왔을까 궁금했을 뿐.

그런데 그가 고향 뒷산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왜 이렇게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부끄러워지는가. 그는 자기를 던졌는데 나는 왜 구차하게 살아 있는가? 그의 시대는 나의 시대이기도 했으며, 그의 실패는 나의 실패이기도 했는데, 왜 그만 가고, 나는 여기 남아 있는가.

내가 그에게 동의하든 하지 않든, 그는 치열했다. 이를테면 그가 권력이 청와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했을 때, 나는 깊이 좌절하고 실망했으나, 생각하면 그것은 그 개인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한계였다. 자본이 절대 권력이 된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 한계 앞에서 변절하거나, 세치 혀로 한계를 넘어갈 때, 그는 자기 방식으로 시대의 한계와 끊임없이 부딪혔고, 결국 좌절했다. 그가 곧 한 시대였으니 시대의 좌절이 그에게 치명적 타격으로 돌아온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보라, 한때 우리의 사랑을 받았던 소설가가 다른 것도 아니고 광주를 팔아 노벨상을 구걸하고 있을 때, 노무현은 모욕과 멸시 속에서 구차하고 더럽게 살기보다 깨끗이 파멸을 선택함으로써, 우리 시대가 비록 실패한 시대이기는 했으나, 적어도 비겁한 시대가 아니었음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우리 시대가 오월 광주의 죽음에서 시작되었듯이, 모든 새로운 시대는 죽음 위에서 잉태된다.

죽지 않아야 할 사람이 죽었으니 머지않아 운명의 여신은 그 핏값을 받기 위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그리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자들이 그에게 적용했던 그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그들을 그리고 우리를 심판할 것이다. 그 심판을 피하려면 우리 자신이 정화되어야 할 것이니, 역사는 그렇게 쇄신되는 것이다.

뜨겁게 사랑했으므로 내가 미워했던 마음의 벗이여, 잘 가오. 그대 영전에 오래 참았던 울음 우노니, 그대 나 대신 죽어, 내 마음에 영원히 살아 있으리.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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