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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i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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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4.01
    1985년 3월 28일

4월14일(일)


일요법회 참석을 했습니다. 좋은 말씀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뿐입니다.
처음엔 못다 살고 간 당신의 한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견딜 수 없었습니다. 헌데 지금에 와선 오히려 당신이 부럽고 제가 불쌍해지는구려. 이렇게 초라해보일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슬플수가 없습니다. 길을 걸어가도 누가 저만 보는 것 같고 차 안에서도 저만 보는 것 같습니다.  구의 역에만 가면 아침 저녁으로 다니시던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옵니다. 그래서 되오곡이면 전철을 타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나 당신이 늘 다니서던 곳이었습니다.  이 곳 저 곳 보지 않으려고 방에만 있자니 울화통이 터집니다. 여보, 전 어떻하면 좋습니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앞이 캄캄합니다. 지금 심정으로선 부모의 의무도 책임도 져버리고 당신 곁으로 가소 싶습니다. 당신없인 하루도 휘젓하며 잠 못이루는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 혼자서 앞으로 10년 20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악몽 같은 세월입니다.
무슨  재미로 여생을 보냅니까? 같이 만나 같이 가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련만 그렇게는 하지 못할 망정 이렇게 간격이 벌어질 줄이야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여보, 우리 윤경이 시집 보내고 철훈이 졸업시키고 장가보낸뒤 저도 당신 곁으로 데려가 주세요. 저 오래 살고 싶지 않습니다. 지나간 과거가 이렇게 그리워질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부러운 것 없이 남이 저를 부러워하는 행복한 50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남은 여생 이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모 복도 그만하면 되었고, 남편복도 그만 남보다 훨씬 좋았는데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식복도 이만하면 남보다 못하지는 않는데 제가 욕심이 너무 많은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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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0일(수)


여보, 오늘은 당신대신 의료보험 조합 주연씨를 만나러 갔었습니다. 다방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려니 당신 생각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살아계셨더라면 내가 왜 여기에 나와있겠습니까? 생각할수록 답답하고 눈물이 나옵니다.
날마다 무엇을 할까 망설이고 있을 뿐 내가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여보, 왜 저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아니 제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아직도 꿈만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 계실 때 나도 좀 돌아다녀도 보고, 친구들도 사위어 볼걸. 집에만 가만히 앉아있다가 이렇게 되고보니 막막하고 슬픔을 더 가눌 길이 없습니다. 당신과 함께 산에도, 들에도, 강에도 바다에도 명승교적, 영화, 다방 등등 두루두루 다녀보지 못한 제가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다니는 걸 좋아하는 당신의 뜻을 받아주지 못한게 이렇게 한스럽고 죄송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그 땐 저도 사정이 있었지요. 이유가 있었지요. 돈이 아까워, 옷이 없어 남 앞에 나서기엔 당신 체면이 안 설까봐 되도록이면 같이 다니는 걸 싫어했고 집에서의 생활도 그런데로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가고나니그저 그렇게 후회;스럽고 인생을 잘 못 산 것 같습니다. 전 다음 세대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후회없는 생을 살려면 제일 먼저,
1) 자기 위주, 2) 자식,3) 주위 이런 순위로 살아가라고 꼭 말하겠습니다. 저처럼 멍청하게 제일 먼저 주위, 다음 자식 맨
끝이 자신이었느리까요. 얼마나 멍청하고 바보스러웠습니까? 제가 생각해 봐도 바보 인생이었습니다. 당신에게 너무너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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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7일(일)


오늘 처음으로 윤경이와 윤서방을 데리고 일요법회 참석을 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도 정신을 쏟을 수가 없었읍니다. 오로지 생존 시의 당신의 모습만이 떠오를 따름입니다. 남들처럼 종교에 푹 빠져버렸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부처님 앞에 나가면 남들은 그렇게 열심히 합장하고 절을 하고 향 피우고 촛불켜고 야단 법석들인데 저만은 오직 딴 생각에 잠겨 의무인 양 법당에 들어가면 절 몇 자리 하고 나와버린 저였습니다.
그 모든 것이 당신에게 배운 것인다 봅니다. 당신 그랬고 어떤 스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무조건 부처님께 빌고 절을 한다 하여 훌륭한 불제가가 아니라고… 저도 그 말씀들을 믿고있습니다. 그렇지만 열심히 중얼거리며 절을 하는 모습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나도 저렇게 한 없이 절을 하며 빌 수가 있다면… 저도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무조건 풀 빠져보고 싶습니다.
오늘 법회 공부는 ,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에 대하여(봉은사 총무스님께서) 였습니다.
원효와 의상대사가 당나라에 법을 배우러 가려고 지금의 경기도 남양에 오는데 경주에서 경기도 까지 밤낮 1개월. 남양에서 원효는 크게 깨닭고 더 할 필요가 없다하고 다시 신라로 가 버리고 의상대사만 당나라에 가 훌륭한 화엄경을 만들어 스승께서 나에게 더 배울 것이 없으니 본국에 돌아가라고 했다함. 그 때 원효는 45세, 의상대사는 35세.
의상대사의 화엄경(의상조사 법성계)
"남탁스님 조그마한 암자에서 좌선하고 있는데 마조 스님께서 툇마루에서 열심히 싯돌에 기왓장을 갈고 있으니 하루는 스님(남탁)이 마조 스님께서는 어디에 쓰려고 기왓장을 가십니까? 하고 물으니 마조스님, 기왓장을 아무리 갈아도 거울이 되지 않듯이 참선만 한다고 해서 성불할 수 없습니다. 했다함.
무조건 절만한다 하여 불심의 강약을 가릴 수 없는 법. 법을 알고 배워 행동하고 지키는 것이 더 훌륭한 불제자가 될 수 있음.
부처님께서 온갖 고행을 다 마치고 나셔서 나처럼 고행을 한 사람도 나 이전에도 없었고, 나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고행이 무조건 불타(성불)가 되는 길이 아니기 때문… 알맞은 고행, 그 뒤에 법을 깨닫고 배우고 행함이 바른 길이니라 하셨다 함.
스님께선,
축원을 할 땐 크게는 전세계의 평화를 그 다음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마지막 내 가정 재 자식을 위해 기도하라 하셔는데, 당신은 왜 기복을 하지말라 하였습니까? 스님은 포교를 하는 것도 부처님을 널리 알리는 것이나 하라고 하였는데, 당신의 왜 포교를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까?  당신께선 기복은 포교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남들은 다 자기의 소원을 이뤄달라고 빕니다.
나무아미타불은 부처님 곁으로 가기위함이교, 관세음보살은 무슨 소원이든 풀어준다고 들었습니다. 당신 살아 생전에 물어보지 못한게 한이 됩니다. 하지만 저도 법당에 들어서면 당신 이승에서 못다푼 한 풀어주게 해 달라고 극락세계 왕생하게 해 달라고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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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6일(토)


여보 오늘이 병원에서 집으로 온지 꼭 한 달째입니다. 퇴원 수속 밟으면서 둘이 부둥켜안고 울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나갔구려. 주위 모든 사람들은 다 제 자리로 돌아가 열심히 살고 있건만 전, 전 그러지를 못하고 있으니 어쩌면 좋습니까?
여보, 이런 나를 두고 어떻게 가셨습니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잠시 제 곁을 떠난것만 같습니다. 영원히 떠나려 했다면 저에게 긴 얘기 꼭 하고 갔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단 한마디 내 몫까지 가지고 영암 어머니와 함께 살라던 말씀과 그 누구에게도 빚은지고 가지 않는데 나에게 빚을 지고가니 미안하다고…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여보, 여보 이럴 수가 있습니까? 죽고 싶습니다. 따라가고 싶습니다. 나 혼자 두고 어디로 가셨나요? 얘들은 그래도 저희들의 생이 있고 희망이 있으니 나 같지는 않은가 봅니다. 순간 순간 아버지를 잊을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 잠시도 잊을 수가 없고, 기쁨도 즐거움도 모두 당신과 함께 떠나가 버렸습니다.
낮이면 혼자 앉아 눈물로 보냅니다. 당신이 가고 없으니 전화 벨소리도 울려오지 않습니다. 그 많던 친구들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로지 저희 식구 3사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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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5일(금)


오늘 아침 아니 새벽에 당신의 꿈을,처음으로 뚜렷한 꿈을, 꾸었습니다. 곡 잡아주는 꿈. 작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꾼 것 같습니다. 꾸고나니 너무 허전합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천수경 반야심경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한 시간동이나 외워보았습니다. 하지만 허전한 마음은 달랠 길 없고 그 모두가 옛날의 꿈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눈을 감고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돌이켜볼수록 가슴만 더 답답할 따름입니다.
과거ㅗ는 다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과거는 다 무조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여보, 여보 당신은 지금 무얼하고 계시는지 무슨생각을 아니 이승의 모든 생각 다 버리고 극락세계 왕생하여 기쁜 나날 보내신지…
내세가 꼭 있어서 그런 좋은 나날을 보내신다면 저 이렇게 슬퍼하지 않겠는데 당신을 위해서 참을수도 있겠는데, 부처님께 빌어서 좋은 곳으로만 갈 수 있다면 제 생 다바처 죽는 날까지라도 빌겠는데…
여보 그렇게 믿고 부처님께 빌며 앞으로의 남은 생을 보낼까 합니다.
극락세계가 꼭 있다고 믿고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꿈을 갖고, 이세상에 머무는 동안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열심히 살아보렵니다.
당신께 이 글 보냅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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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4일(목)


오늘이 4재입니다. 허전한 마음은 갈수록 더해갑니다. 어젯밤도 꿈속에서 여보하는 한마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보니 꿈이었습니다.
내가 일어나지만 안했어도 당신과 몇마디 말을 주고 받았을텐데 왜 일어났는지 모르겠군요.
날이 갈수록 당신 생각이 더 나니 어떻하면 좋겠습니까? 어떠한 어려움도 당신과 함께였다면 극복해 갈 수 있었으련만 지금은 저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처나갈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옛날에 선이를 잃어버렸을 적에 비통에 빠진 저를 달래주시던 생각이 눈에 선합니다. 밤마다 밖으로 데리고 나가 논두렁 밭두렁에 앉아서 잊자고 잊어버리자고 어루만져주시던 그 때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몇 해전 혜령이 때문에 속이 상해있을때도 밖으로 나오라고 하여 외식도 하고 극장식당도 데려가 주시던 생각, 낮이면 혼자서 걱정하고 있으면 좋아하는 풀빵사가지고 와서 점심같이 하던 생각이 모두가 옛날의 회상이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렸습니다.
여보, 우리들의 과거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와서보니 나쁜 것 하나도 없었고 좋은 것만 생생하게 떠오르니 아마도 좋았나 봅니다. 그런데 이젠 이미 다 지나간 옛날 이야기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 인생은 밝게 즐겁게 희망을 가지고 영원한 미소 속에 살아야 한다. 인생의 고는 표면적인 것이고 자체가 락인 것이다.-당신의 수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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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3일(수)


3월31일 영암 어머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얼마나 서러워하시는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더 침착했었지요. 자식보다는 부모가 부모보다는 제 심정이 더 괴롭다는 걸 느꼈습니다.
여보, 이런 나를 두고 어떻게 가셨즌지 전 생각도 못해 보았습니다.꿈도 꾸어보지 못했습니다. 어젯밤도 당신과 함께 보따리를 들고 산이라고도 하고 병원이라고도 하는대로 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날마다 꿈에 보이긴 하지만 뚜렸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당신과 함께 이미자 노래를 들을 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마음은 허전하여 당신이 가신 후 처음으로 이미자 판을 틀어 보았습니다. 헌데 가슴은 천갈래 만갈래 더 찢어지는 듯하고 눈에선 눈물이 한없이 흘렀습니다. 제 심정 당신에게 전하고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전할 길이 없습니다.
여보, 여보 정말 정말 죽어서 만날수만 있다면 당신곁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 누구도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식도 부모도 제 깊은 뜻은 헤아려 주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서러울수가..이렇게 괴로울수가 있습니까?
둘이 만나 같이 가는게 제일 행복할 것 같습니다. 헌대 우린 이렇게 헤어질 순 없는데…
이 세상에 저 혼자인 것 같습니다. 이런 세월을 얼마나 보내야 합니까? 앞으로의 생, 제 생이 아닐 것 같습니다. 남을 아니 자식을 위한 생이 될 것 같읍니다. 여보, 여보 이런 모습 당신은 원하지 않을텐데, 열심히 살길 원할텐데 죄송합니다. 어쩔수가 없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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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9일(금)


여보, 내일이 서산계 곗날이라고 나더러 오라고 어젯밤 전화가 왔더군요. 작년 이 땐 당신과 함께 다여왔는데 나 혼자 뭘하러 가겠습니까? 당신과 함께 다닐 땐 좋았었는데…
이번엔 괜히 가슴이 더 터질 것 같습니다. 더 우울해 집니다. 더 살고싶지 않습니다. 혼자산다는게 그렇게 쓸쓸하고 허전한 것인지 미쳐 몰랐습니다. 남들도 사는데 전 왜 이런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서산계원 7명중 당신이 제일 먼저 가버렸습니다. 제가 박복하여 당신을 잃었는지, 당신이 명이 짧아 이렇게 가버렸는지 알 수 없군요. 차라리 남들처럼 제가 먼저 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당신과 바꿀수만 있다면 더더욱 좋구요. 하지만 현실은 그럴수가 없는 걸..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기가막힐 지경입니다. 가려움증만 있을 뿐 밥도 잘먹고 누워있지도 않고 활동도 제대로 하면서 병원에 갔었는데 3개월만에 가버리다니 생각할수록 어이없는 일이군요. 현대 문명이 그토록 아니 의술이 그토록 발달되었다고들 하면서 그 병하나 못 고치고서야 어떻게 의술이 발달됐다고 하겠습니까?
내게 이런 벼락이 어디있습니까?
전 49년간 남을 위해 살았고 남편을, 자식을 위해 살아왔을 뿐 저 자신은 내동댕이치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계시다면, 부처님이 계시다면 저에게 이런 모진 별을 주지는 않았을 터인데…아마도 당신이 죄가 많은가 봅니다.
전 오늘 김회장 사모님 문병을 갔었습니다. 가기는 싫었지만 당신 빚 갚으려구요. 다녀오는 길에 을지로 큰 점숙이네 집에 들렀었지요. 거기에 갔더니 당신 살아있을 땐 아무얘기도 않더니 죽고나니까 옛날 얘기하더군요. 당신과 장원이 엄마 이야기. 언젠가 당신이 서울에 출장화서 전화로 만나자고 아여 나갔더니 그런 이야기 하면서 재가 충격이 커서 어쟀으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더라고 만약에 내가 먼저 가더라도 혼자 살면서 서러워 할꺼라고… 그렇게 걱정하는 사람이 어떻게 먼저 갈 수가 있습니까?
오늘 김회장님을 보니 나보다는 훨씬 더 나아 보이더군요. 최선을 다한 다음은 어쩔수가 없다구요. 그리고 여지껏 살아준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저더러 운명으로 돌리고 힘내라구요. 하지만 슬픈걸 어떻합니까? 괴로운걸 어떻합니까? 도저히 살 수가 없습니다. 과거가 그립습니다. 옛날이 좋았었습니다. 여보, 여보 대답 좀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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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토)


오늘 아침도 울었습니다. 속이 상합니다.
여보, 어쩌자고 나만 남기고 가셨습니까?
내 마음 나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몰래 서러워진걸 어떻합니까? 과거를 돌이켜 보면 나라는 사람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전 좋은것이라곤 없었던 것 같습니다. 헌데 이게 또 무슨 꼴입니까? 정말 복없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저인 것 같습니다. 당신은 그래도 한때나마 나가면 나쁜 일도 있었고 좋은 일도 있었지만 전 50평생 일 아니면 혼자서 살아왔습니다. 이제 막 재미붙여 살아볼까 했는데 이 꼴이 되고 말았으니 당신보다 나은게 뭐가 있습니까? 돌이켜 생각해보니 만약 지금 내가 죽을 병에 걸려 누워있다면 누가 나를… 내가 당신을 간호했던 것 반의 반 아니 1/3도 못해줄 것 같군요. 어쨌든 먼저 간 사람이 행복한가 봅니다. 그 괴로운 생 더 살면 무얼하고 덜 살면 무얼하겠습니까? 마지막 순간 아쉬울 따름..죽어버리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속이 없이 내가 살아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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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8일(목)


오늘이 또 절에가는 날입니다. 삼재.가신지 3주째 되는 날입니다. 그너나 몇 달이 지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허전한 마음은 갈수록 더 한 것 같구요. 여보, 어젯밤도 당신을 보았지요. 요즘은 날마다 보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뚜렸한 모습, 다정한 말씀은 한마디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어제는 힘을 내 화단 정리를 하였는데 당신과 함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또 옛날 생각이 자꾸납니다. 작년에는 조그만 화분 하나라도 당신과 함께 였는데 올해는 당신대신 철훈이와 함께 했습니다.
전 당신을 대신해서 철훈이와 하고있습니다. 당신 없이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재미는 없을 것 같구요. 하지만 죽은 당신보다야 났겠지요. 정말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여보, 왜 우린 그렇게 고생을 했는지, 쩔쩔 매었는지 … 이제 막 고비를 넘기고 일어서려는 순간 이렇게 억울하게 가버리면 어떻합니까? 이러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서럽지는 않겠습니다. 이렇게 괴로워하지 않겠습니다. 고생 끝에 락이란게 무엇입니까? 죽는게 락이 되었군요. 여보 잡아당길수만 있다면 죽을힘을 내서라도 잡아당기고 싶습니다. 전 무슨 락으로 삽니까? 현재로선 락이라곤 없을 것 같습니다. 오직 저에겐 자식들 잘 되어가는 재미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네, 예전에도 주고만 살았으니 앞으로도 주고만 살까요? 제 모든 것을 주려고합니다. 아낌없이 다 주렵니다. 그멈 편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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