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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i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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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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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생각난 고은의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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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대 ‘애학투’ 사건

3월22일


어젯 밤 당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살아계실적보다 너무 냉정했었습니다. 그저 자기 할 일만 하고 계셨습니다. 저 역시 또  무표정했습니다.
여보, 난 잊을 수가 없는데 어떻하면 좋습니까? 만날수만 있다면, 아니 갈 수만 있다면 어딘들 못 가겠습니까 하지만 만날 수도 갈수도 없는 영원한 곳. 인연이 끝나면 그만인 것을 살아생전 그토록 아웅다웅하며 살았을까요. 고생, 고통, 근심 걱정 다 겪어보았지만 다 견딜만 했던가 봅니다.
그 때 그 시간들이 그립기만 합니다. 낚시 다니던 때 산에 가던 일 바다에 가던 일 제주도 다녀 오던 일 이 모두가 영화의 필름처럼 제 머리에서 계속 돌아가고 있으니 미칠지경입니다. 작년에 자꾸만 일요일만 되면 산에 가자더니 지금은 당신 혼자만 다니겠지요.
여보, 여보 미안함니다. 죄스럽씀니다. 당신이 가자고 해도 자주 가지 못한 것이 이렇게 후회스럽습니다. 견딜수가 없음니다. 자기병 자기가 잘 안다고 하더니 이렇게 죽을병 걸리고서도 몰랐던 당신. 작년 여름 왜 병원에 한번 안가보았는지 약방에 한번 안가보았는지 가슴을 치고 싶슴니다. 발을 구르고 싶슴니다. 잘못했어도 너무 너무 잘못한 것 같음니다. 하지만 잊기 위해 운명으로 돌려봅니다. 그렇치만 잊어지지는 않는군요. 세월이 가면 언젠가는 까마득히 잊을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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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오늘이 2번째 주일입니다. 7일마다 제사를 지내면 심판도 가볍게 받고 좋은 곳으로 간다 하기에 절에가는 날입니다. 좋은 곳이 있다 생각하고 저의 마음을 안정도 시켜봅니다. 이승에서의 고생한 저승에서 풀라구요. 하지만 이승만큼 좋은 곳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절에가면 부처님께 한을 풀게 하달라고 절을 10자리 100자리  당신에게 제 소원을 풀어달라고 10자리 100자리 해보지만 허전한 마음은 여전합니다.
내 의무가 끝날 때 까지는 살아야겠기에 잠자고 먹는 건 거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 생각도 지워버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생각만은 지워지지 않고 도 생생하게 떠오르니 이제 어떻하면 좋습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울적한 마음에 부엌으로 나가지 않고 펜을 먼저 들어 이렇게 몇마디 써봅니다. 그러면 한결 가슴이 후련해 지거든요.
여보, 여보 남들은 다 제 몸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 자신있습니다. 옆에는 없지만 제 곁에서 지켜봐 주시고 도와주리라 꼭 믿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남들이 보는 것처럼 그렇게 허약한 사람도 아니니까요.
여보, 여보, 절 좀 도와주세요.
당신외의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원래 제가 남을 돕기는 하지만 받고싶지는 않았습니다. 헌데 당신이 가버렸다 하여 더더구나 받고 싶지 않습니다.
꾿꾿하게 살겁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정신을 못차릴 것 같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정신을 차리게 해주세요. 눈물을 걷우게 해주세요 용기를 내게 힘을 주세요.
가슴을 펴게 해주세요. 제 소망을 이루게 해 주세요. 윤경이도 잘겁니다. 철훈이도 잘 될겁니다. 지켜봐 주세요. 도와주세요. 우리 혜령이도 잘 될겁니다. 우리 가정에 아니 제 앞에선 다시는 이렇 폭풍이 밀려와서는 안됩니다. 아니 오지 않을 겁니다. 제가 당신곁으로 갈때까지 절 도와주세요. 제 소망을 이뤄주세요. 자식들을 건강하게 오래 오래 이세상에 머물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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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이꿈, 저꿈 수없이 꾸지만 당신 꿈은 꿀 수가 없군요. 꿈에라도 한 번 보고싶은데 나를 위해 꿈에도 안보이고 잠도 잘자게 해주시는 것인지요.
저녁 11시부터 아침 6시까지 잘 자고 일어나서야 당신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그리고 일기장을 펴들고 한없이 울었읍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내가 이렇게 되리라곤 정말 상상 밖인 것 같습니다. 어딘가 꼭 잘못되 당신을 보낸것만 같으니 당신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군요. 여보, 전 전 어떻하면 좋습니까
날마다 되풀이되는 눈물, 한숨 감당할 수가 없군요. 1년만 더 계셨더라도 제 마음이 이렇게 아프진 않겠는데 병 중에 하고픈 이야기 몇 마디만 더 했어도 이렇게 슬프진 않겠는데…
가신지 꼭 12일째 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엄벙덤벙하다 어쩐줄 몰랐는데 갈수록 이렇게 슬프고 제 옆에 아무도 없는 같고 제 모습이 이렇게 초라해 보일수가 없습니다. 남이 부끄러워 현관문도 나갈 수가 없어서 연탄불도 철훈이더라 갈라고 합니다. 여보, 여보, 진정 나를 사랑했다면 이렇게 두고 가지는 않았을텐데…
생존시 잘못했던 것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제게 잘해준것만 생생하게 생각이 나니 살 수가 없습니다. 견딜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빨리 가실 분이었다면 여기저기 같이 구경이나 실컷해볼걸…후회해도 소용없고 땅을 쳐도 소용없는 일. 이젠 내곁을 떠나버린 인연이 끊긴 옛날 분.
하지만 자꾸만 자꾸만 생각이 나는 걸 어떻하면 좋습니까?
지금으로 따져보면 먼 옛 날이 되겠지요. 결혼후 학교에 다니면서 자기 일은 자기가 하자던 당신, 자기 빠자마는 자기가 천 떠다가 마름질하여 자기가 고모님 댁에 가서 해입던일, 먼저 온 사람이 저녁을 하기로 하고 자기가 먼저오면 자기가 하던 일, 내가 몸이 불편하여 병원에 누워있으면 학교로 갔다 병원으로 왔다 하던 일.. 조금만 힘든 일 해도 여보 고생많았지 하던 당신 이제는 이런 소리도 들을 수가 없겠군요.
여보 올 1년 저와 멋있게 살다가시지 1년도 못 기다려 주셨습니까
내 남은 생 누구와 함께 보낼까요.
화투, 바둑, 등산, 낚시, 당신은 누구와 함게 즐기실른지요.
여보, 여보, 여보, 가슴이 터져 옵니다.
눈물이 막 쏟아져 내립니다.
마음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여보, 여보, 날 좀 도와주세요,내 손 좀 잡아 주세요.
당신이 좋아하던 일본노래를 들어봐도 가슴이 답답하고, 당신이 남기고 간 마지말 말을 틀어봐도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누가 옆에 있어도 눈물이 펑펑흐릅니다.
가만이 혼자 앉아있자니 미칠 지경입니다.
전, 전 어떻하면 좋습니까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 그렇게 거리가 멀고 아득한 곳입니까? 한 번 죽으면 그만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는 곳이군요.
12일도 이렇게 지루한데 10년 아니 20년을 어떻게 삽니까? 딸들을 보고 아들을 보고..네.. 시집은 보내고 장가는 보내야지요. 그건 부모의 의무이니까요. 더군다나 당신 몫까지 내가 하고 가야지요. 하지만 부모의 의무가 끝나면 전 무얼하고 삽니까? 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말년을 좀더 멋있게 남들보다 더 보람있게 살려했는데 꿈이, 희망이 무너져버렸습니다.
앞으로의 저의 인생 처량하기만 합니다.
당신이 제 제 가슴을 채워주지 모한 한을 자식이 채워줄는지, 그건 알수 없구요
만약 자식이 채워준다 하더라도 당신만큼은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부디 부디 극락세계 왕생하여 저의 소망 이뤄주시옵고 이승에서 못다 푼 한 저승에서 푸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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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잊으려해도 잊을 수 없고 지워지지 않는 당신의 모습. 자식들을 봐서라도 이 먀음을ㅇ 바로 잡아야 하는데 이 복받치는 설움 달랠길 없으니 어쩌면 좋습니까? 당신을 잊기 위해 천수경 반야심경을 생각날때마다 외어보지만 눈물만 앞을 가리니 어쩌면 좋습니까.
어제 밤 처음으로 당신의 영상은 보지 못했으나 여보하는 한마디 말에 벌떡 일어나 보니 꿈이었습니다. 꿈속에서나마 한 번 보려고 애썼지만 보이지 않던 당신 어젯밤 겨우 한 마디 여보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무정한 당신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 제게 아무말씀도 남겨주지 않은 당신, 또한 저 역시 아무말도 물어보지 못한 제가 답답할 뿐입니다.
여보, 난 당신을 보내놓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나 혼자만 잘살기위해 너무한 것 같습니다. 이게 마음에 걸리고 슬픕니다.
세상에 나왔다 무엇인가 남기고 가야한다던 당신 왜 당신의 생의 마무리도 짖지 못하고 동강난 인생을 살다 가셨습니까?
나를 두고 어떻게 눈을 감을 수가 있습니까?
철훈이 대학 졸업하면 한가한 시골로 내려가 화훼나 하자던 당신이 먼저 가시면 전 어떻하라고… 둘 만의 인생을 위해 앞으로 살려고 했더니…
전 평생을 자식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또한 주위를 위해 살아야 합니까
차라리 여유를 주지 않고 갔다면 자식들과 살기위해 당신을 원망하면서 열심히 살 수 있으련만 그것이 아닌 살기도 힘들지 않고 할 일도 없으니ㅣ 전 전 어떻하면 좋습니까?

내세가 있다면 아니 죽어서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당장 따라가고 싶은 심정이오.
여보, 여보, 난 어떻하면 좋습니까?
말씀 좀 해 주세요.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은 27년간  자라면서 친가에서 21년 당신에게 와서 27년  남은 인생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아니 30년이 될지  이 지루한 남은 인생 누굴 위해 삽니까.
자식을, 아니 나를 생각만해도 앞이 캄캄합니다.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단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여태껏 내가 사는 방법이 옳은줄 알았는데 빗나갔습니다.  당신이 옳았습니다.
자식도 엄격히 따지면 남. 너무 자식만 생각지 말라던 당신 그럴 때 마다 전 반대했지요.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이런 내 생활신조였으니까요. 그렇지만 당신도 말만 나더러 그렇게 불만스러워 했지만 그럴 때 마다 전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군요 나보다 더 철저한 봉사정신, 희생 전 미처 생각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 못했습니다. 너무너무 후회스럽습니다. 일생을 너무 길게 잡아 한평생이 80-90인줄 알았더니 55세가 웬말입니까 60은 한창으로 생각했던 제가 너무 어리섞었나 봅니다. 60을 기준으로 두었드라면 생의 마무리는 멋있게 지웠을 것을…
원통해도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날마다 정신을 못차리고 몸을 가누지 못하오니 어떻하면 좋습니까 항상 당신이 하시던 말씀을 되새겨 보기도 합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를 위해 살라던 말씀,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 과거를 붙잡고 있으면 발전이 없다고 항상 하던 말. 그러나 그런 말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생각도 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꾸자꾸 과거가 눈앞에 아른거려 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누워계시던 4개월 8일이 눈을 감으나 뜨나 생생하게 떠오르니 이걸 어떻하면 좋습니까.
나 죽지는 않을라나봐 하시던 말씀, 이제 일어나면 자신이 없어 대충 살아야할까봐 하시던 말씀, 꼭 자리에서 일어날 줄만 알았던 당신 전 이런 말을 들을적마다 가슴이 터지고 안타까운 심정을 어디에 호소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생각엔 어쩌면 살것도 같고 어쩌면 영영 못일어날 것도 같아서 저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모릅니다. 그러나 여보 당신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려고 꿈이야기, 점 이야기하다가 당신에게 꾸지람을 들은 적도 있었지요.  그리고 가는 순간까지 아무 말씀도 못 드렸읍니다. 그런데 그게 잘 못된 것 같습니다. 잘못되도 너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여보 여보 난 어떻하면 좋습니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슬픔이 복받쳐 터집니다.
남부끄러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당신 생각만 하면 눈물이 줄줄흘릴따름입니다. 여보, 여보 이렇게 안타까울수가 ..
이 세상에서 나 혼자만 당한 것 같습니다. 그 고집, 내가 먹이고 싶었던 약들 그 약들만 먹었서도 꼭 낳을 것 같았는데 그러나 마지막 순간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말은 못하고 표정으로만 끝까지 열심해 했다던 당신. 네. 잘알겠습니다. 네 끝까지 열심히 잘 하셨습니다.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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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난리랍니다.

아파트 옆으로 주유소 건축 승인이 나서 공사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주민들이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아파트 담과 안양천변 도로 사이의 공간에 주유소를 짓는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던 것을 이번에 주유소로 바꿀 모양입니다. 원래는 활용가치가 주차장 이외에는 없는 곳이었으나 목동으로 넘어가는 고가차로가 개통되어 이용하는 차량수가 많아 짐에 따라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게 된거죠. 국민의 세금을 들여 기간도로망을 만들어 놓으면 손에 물한방울 안 묻히고 개발론자들이 들어오는게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신자유주의 틀속에서 자기 재산권 행사하겠다는 사람 막을 수 도 없는 노릇이고 보면 합리적인 것이 가장 올바른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주민들의 요구는 주유소 건축허가를 백지화 하라는 것인데 행정적인 처리가 크게 잘못되지 않아 보여서 그다지 합리적인 요구로 이해하기 조금 어렵네요. 근데 합리적인 것 보다는 연관 법의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주거환경에 대한 주민들의 권리를 명확한 기준으로 보장해 주어야 할 법령이나 조례가 없어서 주민들과 사업주 끼리 서로의 이익을 놓고 싸우는 형국입니다. 향후에라도 주거환경과 삶의 질에 대한 기준을 정비하여 최소한 주거환경에 대한권리를 주민들이 누릴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네요.

그런다고 하더라도 현재 진행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좀더 지혜를 모아야 겠지요? 공무원들이야 행정적인 절차에 문제가 없으니 할일 다 했다는 태도를 보이겠지만 민원이 발생한 다음에야 그런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근무 태만에 불과합니다. 이해 당사자들을 적극적으로 중재해야 하는게 맞겠지요. 피해가 최소화 되도록 아파트 진입로를 확보해 주고,사고에 대비하는 시설물의 추가 설치,식수 오염 우려에 대한 대비등이 적절히 될수 있도록 관련 법을 검토하는 것이 공무원들의 역할이 아닐까요? 행정 절차등을 제데로 알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설마 관련 법규들을 찾아 검토해 문제 제기 하라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겠지요?

주유소가 들어 섬으로써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불편을 요약해 보면

1. 아파트 진입로와 주유소 진출입로가 교차됨으로 인해 교통이 혼잡해 진다.

2. 교통량의 증가와 통로의 비좁음으로 인해 아이들의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3. 아파트와 주유소가 인접해 있어 화재등 사고시 아파트가 위험에 노출된다.

4. 교통량과 기화하는 개스로 인해 대기 오염을 일으킨다.

5. 지하 저장탱크에서 기름이 유출되거나 지표에 누출된 기름이지하의 물탱크를 오염시킬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거리가 가까움)

주민들에게 불안감을 주는 요소가 있다면 이것은 공무원이 중재에 나서 해소해 주어야 하는 것이 공무원의 도리가 아닐까요? 불안 요소가 과장되어 있거나 또는 잘 모르는 것으로 부터 나오는 막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주 터무니 없는 문제제기는 아닌 것 같아요.

우려가 있다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건축주로선 추가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어느정도는 받아 들여야 파국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런 조정을 누가 해야 하는 건가요? 공무원이 나서 주어야 지요.

나만 이런 생각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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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장 상 환(진보정치연구소장,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2006-02-12

민주노동당은 현재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해 10.26 재선거 결과 울산 북구에서는 조승수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잃어버린 의석을 되찾지 못했고, 경기도 광주시와 부천시, 대구 동구을에서는 2-4%라는 초라한 득표를 했다. 당 지지도도 2004년 총선 당시의 13.1%에서 2004년 8월 18%대까지 올라갔다가 점차 하락하여 2005년 11월 7-8%로 내려갔다.

최근 지지도도 낮다. 문화일보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여론조사전문기관인 TNS와 함께 지난 2월 7일 실시한 격주 정기여론조사에 의하면 정당지지도는 한나라당(34.7%), 열린우리당(20.3%), 민주노동당(8.8%), 민주당(4.7%) 순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5월말의 지방선거 전망도 비관적이다.

그리고 2006년 1-2월에 걸친 당직선거를 통하여 새 대표, 사무총장, 정책위원장, 최고위원 지도부가 구성되었다. 새 지도부는 당이 처하고 있는 주체적 객관적 어려움을 잘 이해하고 당을 잘 이끌고 나가야 할 것이다. 당이 처한 상황이 워낙 어려운데 비해서 새로 당직을 맡은 분들이 축적해온 정치적 경험과 그동안의 행적으로 봤을 때, 지방선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긴박한 시점에서 앞으로 수개월간 당의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당 지지도를 올려놓을 수 있는 실천의 방향을 정립하고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그러나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념을 고집하지 말고, 정파적인 사심을 버리면 사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대처할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04년 4월 15일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을 하게 되었을 때 국민들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대는 높았고, 민주노동당 스스로도 밝은 미래를 보며 사기가 높았다. 그런데 그동안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가. 그 원인을 분석하고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확산되는 현 시점에서 민주노동당의 역할과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기로 한다.

1. 민주노동당 위기의 원인

2004년 4월 15일 제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을 가져온 요인은 무엇이었나? 민주노동당이 비례대표선거에서의 정당 지지도 13.1% 득표, 지역구 의석 2석과 비례대표 8석, 합께 10석로 의회에 진출한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외환위기 이후의 사회경제적 양극화, 1987년 6월 이후 사회단체의 활동 발전, 전후 세대의 사회 주도세력으로의 등장 등의 객관적 요인과 함께 민주노동당의 서민대중 옹호를 위한 정치노선과 합리적 정책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합쳐져서 이러한 성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총선 직후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도는 높아졌다가 꾸준히 하락했다. 한길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총선 전 2004년 3월말에 7%미만이었던 민주노동당의 지지도가 총선을 계기로 올라가서 2004년 7월에는 최고 18%대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그 후 몇 차례의 계기를 통해 하락하여 2004년 10월 14.6%, 2005년 3월 10%로 내려왔다가 2005년 11월에는 총선 이전 수준인 7.8%까지 하락했다. 민주노동당 핵심지지층의 당 지지도도 급격히 하락했다.

30대는 9월 24.1% → 10월 16.2% → 11월 10.9%로 내려갔고, 대졸자는 같은 시기에 각각 17.8% → 13.0% → 10.7%로 내려갔으며, 화이트칼라는 각각 21.5% → 12.0% → 11.5%로 하락했다.

이러한 민주노동당 지지도 하락의 원인에 대해서 홍형식 한길 리서치 소장은 민주노총의 도덕성 추락과 서민대변 부족,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실정, 소수정당의 한계와 이에 대한 딴지 걸기 등 주로 민주노동당 외부와 관련된 이유를 든다.

첫째 노동계와 관련된 문제로서는 민주노총이 그동안 노조간부의 부패와 도덕성, 비정규직 이용, 노동귀족 등으로 LG칼텍스 파업 및 귀족노동자 논쟁으로 2004년 8월부터 2005년 1월까지 지지도가 18%대에서 14%대로 떨어졌고, 민주노총 폭력사태 및 기아자동차 채용비리 등으로 2005년 2월부터 10월까지 10-11%로 떨어졌고, 민주노총 강승규 부위원장 비리사건 및 민주노총 지도부 사퇴. 전교조 APEC학습자료 및 교원평가제 관련 연가투쟁 등으로 2005년 11월에 지지도가 7.8%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2005년 11월 조사를 보면 지지도 하락 원인으로 노동계 문제 관련을 가장 많이 꼽고 있다고 지적했다.

둘째,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실정에 따른 지지도 하락에 민주노동당 지지도도 동반 하락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국민들이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노무현 대통령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범 진보개혁세력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셋째, 소수정당의 한계로서 국민들은 지난 2년 동안 민주노동당을 지켜 본 결과 민주노동당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끼게 되었고, 보수 언론들도 민주노동당에 불리한 기사를 많이 내서 이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홍형식, “민주노동당 지지도 추이와 지지층 분석”, "위기의 민주노동당, 무엇을 할 것인가", 진보정치연구소 긴급토론회, 2005. 11. 10)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상당 부분 타당하지만 부분적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민주노총의 문제가 바로 민주노동당으로 번져오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과 차별화를 하지 못한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을 넘어서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 빈민 서민을 확실하게 대변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지지도가 동반 상승하고 하락하는 현상도 민주노동당이 노무현 대통령 및 열린우리당과의 명확한 차별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졌고,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대통령이 양극화에 대응해 분배를 말로만 강조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무능을 보였다면 소외 계층은 당연히 자신의 이익을 옹호하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야 할 터인데 지지가 한나라당으로 옮겨간 것은 민주노동당이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복지 지출의 감소를 의미하는 8조9천억원의 감세안을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선거에서 모두 승리하고 지지도도 40% 대로 올라갔다. 지지도 하락을 외부요인에만 돌리면 민주노동당 스스로는 할 일이 없다는 의미밖에 안 된다. 민주노동당 스스로의 요인이 중요하다. 중요한 외부 요인이 없었더라도 민주노동당이 잘한 것이 없으면 지지도는 내려갔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이렇게 재선거에 참패하고 지지도가 급격하게 하락한 것은 민주노동당 자신의 책임이 크다.

첫째, 총선 후 민주노동당은 기본 정치노선의 면에서 민중들의 민생문제를 소홀히 했다. 새로운 지도부가 2004년 말에 국가보안법 철폐에 올인한 전략은 민주노동당의 지지도 상승에 기여하지 못했다.

결국 열린우리당을 도와준 결과가 되고 말았는데 열린우리당도 이를 적극 추진하지 못함으로써 국민들의 지지를 잃었다. 국가보안법 문제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면에서는 중요하지만 대중들의 직접적인 생활상의 이해관계 측면에서는 중요도가 떨어진다. 이러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의제와 함께 대외관계에 지나치게 기울어진 것도 문제였다.

독도 파병 주장, 북미관계에서 북한의 입장 주로 옹호, 북한 인권 비판 소홀 등도 다수 기층 국민들의 지지를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둘째, 당 조직 운영이 비민주적이었다. 즉 다수 당원의 의사, 지지자들의 의사를 당 운영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1인 7표의 최고위원 선출제도는 정파대립 구조의 단점을 극대화했다. 이 결과 선출된 지도부는 민족해방파 그룹이 대다수를 차지했고, 최고위원의 다수는 사회단체 활동을 주로 해왔을 뿐 당활동 경험이 일천했고, 책임있게 당론을 형성해 실천하지 못했다.

지도부에 대한 당 내외의 비판을 정파적 차원의 비난으로 받아들이고 잘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지도부는 1년반 동안 당 지지도만 대폭 하락시키고 결국 중도 퇴진하고 말았다.


셋째, 당의 인적 물적 자원을 민중들의 생활상의 문제를 실천하는 핵심 분야에 집중하지 못했다. 당 소속 국회의원 세비 가운데 180만원을 넘는 부분과 의원보좌관 보수중 150만원을 넘는 부분을 당 재정으로 납부했는데 이것이 중요 과제 실천에 쓰이지 못하고 당의 일상조직 운영에 투입되고 말았다.

지역위원회 준비위원회 실무자에게까지 상근비를 지급했다. 반면에 당의 핵심사업이 되어야 할 비정규운동본부에는 인력과 재정이 투입되지 못했다. 재정의 합리적 운용도 실패했다. 민주노동당은 현재 약 10억원에 가까운 빚을 지고 있다.

특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회계처리 미비(용도외 사용 1281만원, 보조금 배분기준 위반 372만원)와 중앙당 유급사무원 초과(2080만원) 등의 이유를 들어 지난 11월 15일 국고보조금을 종전의 금액인 5억2350만원에서 5천여만원을 감액하고 4억6514만원만 지급했다.

2. 민주노동당의 위기 극복방향

민주노동이 혁신해나가야 할 과제를 정치노선, 조직노선, 실천노선으로 나눠서 살펴보자.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는데 당 조직을 어떻게 운영하고 어떻게 실천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첫째, 전략적 과제의 면에서 민주노동당은 계급적 문제, 즉 민생문제의 해결에 주력해야 한다. 당이 현재 실천하고 있는 것은 한국사회의 객관적 조건에 정확하게 대응하고 있는가, 즉 유권자 내지 지지자들의 요구에 잘 부응하는가를 살펴보면 그렇지 못하다.

국가보안법 문제나 미군기지 문제, 미국의 북한 압박의 문제 등은 그것대로 중요하기는 하지만 민중들의 집중적인 관심과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격화되고 있다. 그런데도 민중의 정치의식은 보수적이다. 비판적 사회과학에서는 이를 허위의식이라고 부른다.

홍세화선생은 이를 ‘존재와 의식 간의 괴리’라고 부른다. 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현상은 ‘법보다는 주먹이 앞선다’는 민중들의 일상생활에서의 경험 탓으로 볼 수 있다. 복지국가를 확충해서 민중의 생활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것이기는 하지만 당장 해결될 수는 없는 먼 장래의 일이다.

법은 먼 것이다. 따라서 당장에 실리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지역정당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도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006년 현재 한국사회의 화두는 양극화 문제이다.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모든 정당이 인정한다. 그러나 그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서는 차이가 난다. 한나라당은 성장을 통해서 양극화를 완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 감세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열린우리당은 빈곤층에 대한 복지를 확대한다고 하지만 재정 마련을 위해 증세에는 주저하고 있다. 재벌과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는 너무나 느슨하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아주 좋은 정치적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동안 공약해온 정책을 철저히 밀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 부유세 도입 등 증세와 사회보장기여금 증액을 통해 제대로 된 사회보장 체제를 구축하는 방향이다. 그리고 양극화의 주범은 과도한 이윤을 획득하고 있는 국내외 자본이다. 비정규직의 처지가 더욱 어려워진 것은 그동안 노동소득분배율의 악화, 즉 자본의 몫이 점점 더 커진 탓이다.

외환위기 이후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전체 취업자 중 피고용자 비율은 61.7%에서 66.0%로 연평균 7.0% 증가했는데 요소비용국민소득 가운데 피용자 보수, 노동자몫의 비율인 노동소득분배율은 61.9%에서 58.8%로 연평균 5.0% 감소했다. 이보다 더 뚜렷하게 현재 한국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양극화의 실상과 본질을 잘 보여주는 통계는 없다.

민주노동당은 양극화 해소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무주택자, 빈민, 장애인, 여성 등 기층 민중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양극화를 조장하는 재벌과 외국 자본 등 국내외 자본의 횡포를 제어하는 데도 큰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실천을 꾸준히 누적해나갔을 때 민중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당과의 차별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른 보수정당에서도 민생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다. 그러나 이것은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지원규모가 극히 미미하다는 한계를 가지거나 다른 정책분야에서는 민중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다른 보수정당을 비판할 때는 종합적인 정책효과를 판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이른바 개혁세력, 열린우리당과의 차별성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현재의 위기는 연대성과 도덕성의 약화에서 기인한다. 민주노동당도 이것이 부족하면 마찬가지로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당은 민주노총 등 대중조직에 대해 도덕성의 유지와 함께 연대성의 확대를 위해 실천해 나가도록 필요한 비판을 하는 등 집중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산별노조 건설에도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는 당원들이 앞장서도록 결의해서 실천해야 한다.

둘째, 대선과 총선에서의 선거공약을 기초로 일상적 활동에서 진보성과 현실성을 동시에 담보하고 의회활동과 대중운동을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에 가장 적합하고 대중의 요구를 반영하는 정책과제를 선택하여 집중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실천방법도 당원의 참여와 대중의 호응을 높일 수 있는 현실적인 방식을 택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대중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면 가시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국민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예컨대 모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재정지출계획과 이를 위해 소요되는 재원 마련을 위한 세제 개혁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대중운동 조직의 요구를 수용하되 진보적 지식인들을 최대한 참여시켜 현실성 있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 지도부와 간부 활동가들도 분야별 전문지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의회활동과 민중운동을 유기적으로 결합하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구체적인 문제를 최대한 발굴 조사하여 의회활동의 자료로 뒷받침해야 한다. 예컨대 시도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거나 홍보물을 제작해서 배포하는 등 실천을 할 때는 중앙당에서 마련된 정책자료를 그냥 반복할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 대중들의 문제를 당사자들 면접조사 등을 통해 조사해서 발표해야 한다. 그러한 구체적 자료와 내용이 있어야 대중들의 구체적인 관심과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지역의 언론에도 보도될 수 있다.

셋째, 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당의 중요한 의사결정의 경우 필요하면 당원 총투표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가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일반 국민들도 등록하여 당의 정책상의 쟁점에 대해서 투표할 수 있는 개방적 의사결정 구조가 필요하다.

당 지도부 구성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정파가 지도부에 참여해서 다양한 실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정파등록제를 도입하여 정파들이 정치적 책임을 지는 체제를 구축하도록 당직 선출제도 개선을 해야 할 것이다. 중앙위원회 구성에서 정파명부에 따라 중앙위원 후보를 출마시키고 당원들이 직선으로 선출하는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당내 선거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재 정파등록제가 시행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다양한 정파가 논의하는 비공식 논의 테이블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당원들의 요구와 실천의지를 모을 수 있는 지혜를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 대해 당권을 잡은 민족해방파 인사들은 논의가 복잡해지면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책임성이 약해진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민주적 의사결정은 형식만이 아니라 실질이 중요하다. 민주적이지 않은, 일부 세력만에 의한 신속한 의사결정은 더욱 나쁜 결과만을 가져올 수 있다. 당대표 선거에서 조승수 후보를 지지한 50%에 가까운 당원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그들의 참여를 보장하지 않는 안이한 방식으로 당을 이끌고 가면 당권파들은 빠른 시기에 당 내외로부터 정치적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당 게시판에서 표출되는 당에 대한 다양한 불만들은 당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긍정적 표현이다. 이에 대해서 당직자들은 불편하다거나 야속하다고 생각하는 좁은 마음을 떨쳐버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당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등 앞장서서 그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실천내용들을 제시하고 불만을 표시한 분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포용과 통합의 자세가 필요하다.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 확립과 관련하여 노동부문과 농민부문에 대의원과 중앙의원의 28%, 14%를 할당하는 현재의 부문할당제는 민주노총과 전농이 과다 대표된다는 문제가 있다. 민주노총의 적극적 참여는 당의 초기 건설기에는 긴요했다. 당의 안정성과 노동자적 계급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노동부문 30% 할당제가 필요했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다. 당은 조직 노동자를 넘어서는 다양한 노동자계층과 소외된 민중부문을 대표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민주노동당이 성장할 수 있고, 민주노총도 조합원과 노동자 계급 전체에 유리한 법률을 더 용이하게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도 현재와 같은 부문할당제를 고수하게 되면 소외계층과 전문가 계층 등 다양한 계층이 중앙의원과 대의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봉쇄하게 된다.

예컨대 노동부분과 농민부문이 지금처럼 과다한 할당을 배정받게 되면 학계는 중앙위원을 낼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진보적 학계의 지원과 협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 대표성이 후퇴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분회모임을 조직관리 차원에서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나누는 친목회 방식으로 운영할 것이 아니라 당에서 작성한 정책자료, 예컨대 비정규직 차별 해소 방안 자료를 배포하는 등 주민을 대상으로 한 실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당 지역위원회를 비정규직 센터로 전환하자는 제안은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넷째, 당의 인적, 물적 자원을 전략적 과제의 실천에 집중해야 한다. 당의 재정과 인력의 큰 부분을 비정규직 사업과 같은 전략적 과제를 선택해 집중해야 할 것이다. 현재 당의 재정은 조직관리에 너무 많은 부분이 배정되고 있다. 중앙당 유급정원 초과로 인한 지출이 2천만원 이상에 달하고 그것만큼 국고보조금이 삭감당하고 있다.

재정문제는 극히 중요하다. 국가의 어떠한 정책이든 법률과 제도, 기구, 인원, 재정의 4가지가 구비되어야 실행될 수 있다. 재정의 뒷받침이 없으면 실질적으로는 구호에만 그치는 정책이 된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공약을 발표할 때 공약 실천에 소요되는 예산과 이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재원마련 방안을 함께 발표해왔다. 무상교육, 무상의료라는 공약은 부유세를 중심으로 한 고소득층에 대한 조세 징수 확대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하나의 세트로 되어 있는 공약이다.

재정의 중요성은 당내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차별철폐사업 등 아무리 강조되는 사업이라 해도 인력과 그에 필요한 예산이 배정되지 않으면 실제로는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다.

현재 10억원 정도로 누적된 당 재정적자를 해소하고 2006년 지방선거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재정문제 해결의 원칙을 정립해야 한다. 연간 20억원 정도의 국고보조금으로는 정치자금법의 규정에 따라 중앙당에 50%를 배정해 상근자와 정책개발비로 사용하고 정책연구소에 30%를 배정하고 10%를 여성정치 발전을 위해 시도당에는 10%를 사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역위원회 조직 운영은 기본적으로 당원들의 당비로 운영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시도당에 배정된 국고보조금은 경상조직 운영비로는 사용하지 않고 일반 유권자들을 상대로 하는 정책홍보자료 제작 등 정치활동비에 사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도 당의 각급 조직에 배치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부문별 정책조정위원장을 맡아 당내의 정책조정을 해내고, 제출법안 관철을 위해 의회와 언론활동에서 다른 당의 정책조정위원장과 정책을 두고 대결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비정규직 운동본부, 부동산대책위원회 등의 대표를 맡아 앞장서서 실천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에게 정책실천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고 발의한 법안에 사회적 힘을 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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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어쓰는 茶山 이야기

시장·군수 출마자들에게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방자치 단체장들과 자치단체 의회의 의원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치단체에 대한 전면적인 감사결과를 감사원에서 발표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런 때일수록 다산의 『목민심서』에 대한 이야기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8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지방자치단체 장들의 지침서인 『목민심서』는 그 책의 첫줄에 “다른 벼슬이야 구해도 되지만 시장이나 군수의 벼슬은 구해서는 안된다”(他官可求 牧民之官 不可求也)라고 가장 먼저 선언하였습니다.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이후 얼마나 많은 시장이나 군수들이 뇌물죄에 걸려들고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턱 없이 많은 피해를 보았던가요. 이번의 감사결과도 26개 단체에 문제가 있다고 발표되지 않았는가요.

“비록 덕이 있으나 위엄이 없으면 직책을 수행할 수 없고, 비록 뜻이 있다 해도 밝지 못하면 행하지 못한다. 행할 수 없는 사람은 백성들이 피해를 당하고 괴로운 고통으로 길 위에 쓰러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비난하고 귀신들이 책망하여 그 재앙이 후손들에게까지 미칠 것이니, 이런데도 시장이나 군수의 자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雖有德不威 不能焉 雖有志不明不能焉 凡不能者 民受其害 毒 顚連 人非鬼責 殃流苗裔 斯豈可求者乎 : 除拜條)

최근 보도를 보면 시장과 군수를 하려는 사람들이 넘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덕이 있고 위엄이 있으며, 뜻도 있고 밝은 지혜가 있다면 시도해 볼만한 것이지만, 그런 능력이나 도덕성도 없으면서 너나나나 모두 시장·군수에 출마하겠다니 나라가 참으로 걱정됩니다. 주민들이라도 제대로 선출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그래도 마음이 놓이는데, 학연이나 지연에 얽매이고 성씨가 같고 친분이 있다고 아무에게나 표를 준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선출직이야 덕과 위엄이 높고 뜻이 고상하고 깨끗한 사람이어서 남이 추천하고 천거해서 출마하고, 그래서 당선이 되는 사람이어야지, 자신이 하고 싶다고 무턱대고 출마하는 사람은 절대로 선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다산의 『목민심서』정신입니다. 우리 주민들이 명심해야 할 것 같네요.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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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보드를 사용하는 사진방에 그림을 한꺼번에 올릴 수 있도록 만든 겁니다.

간편하게 사용하도록 한 것이어서 UI나 기타 사용 방법이 거칠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본 기능엔 충실(?)합니다.

오픈소스인 cximage 599c를 이미지 라이브러리로 사용했고 파일업로드는 wininet을 사용하였습니다. 물론 자그마한 php를 서버에 하나 만들었구요. 이 php가 웹 루트에 있어야 파일이 정상적으로 제로보드에 등록됩니다.

VC++ 6.0을 제작하였고 혹시 소스가 필요하시면 글 남겨 주세요. 재미로 짠 소스라 정리는 잘 안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혹시 이미지 프로세싱에 관심있으시나 오픈소스를 이용하시는데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분들 참고로는 괜찮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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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85년 경인가?

이 시를 노래로 만들어 나온게...

잔디밭에 모로 누워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가락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며칠전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 문이 열리는 바람에 흠칫 하기도 했지요.

과녁이 정해 진다면 뒤돌아 보지 말고 가야겠지요?

만약 과녁이 내 심장을 겨누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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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민주화운동] 78. 건국대 ‘애학투’ 사건

[경향신문 2004-11-21 18:12:08]

1986년10월28일 오전 8시쯤. 건국대 교정은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등교하는 학생들로 붐볐다. 국화 전시회 기간(국화는 건국대의 브랜드로 정평이 나 있다) 중이었다. 본관과 그 주변은 황국을 주종으로 더러 붉게 타오르는 듯한 국화가 늦가을의 정취를 짙게 풍겼다.
교정 중심인 황소상 주변에서 일행인 듯 보이는 동아리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게 평소와 다소 다른 모습이었다. 역시 또다른 일행인 듯한 여학생들이 구내식당으로 대거 모여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사실 건국대생이 아니었다. 서울지역의 다른 대학교 학생들이었다.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학교측은 9시쯤에야 급히 경찰에 경계병력을 요청했다.

그러나 경찰의 태도는 달랐다. 학생들은 3인이 1조를 이뤄 라면 상자에 꽃병(화염병)을 담아 대규모로 이동하고, 다른 학생들이 정문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시위때 사용하기 위해 작게 쪼갠 돌)을 깨고 있었다. 그런데도 무슨 일인지 이미 배치돼 있는 경찰은 정문을 통제하지도 않았다. 학생증 검사도 하지 않은 채 이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오가 되자마자 정문과 후문, 민중병원 쪽 출입구를 중무장한 닭장차로 에워싸기 시작했다.

경찰은 전국의 대학생들이 이날 건국대에 모여 ‘전국 반외세 반독재 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 발족식을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상당수 건국대생들은 집회의 성격이나 내용을 알지 못했다. 건국대 총학생회 실무자들이 준비에 골몰하느라 홍보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었다.

오후 1시, 민주광장에 29개 대학 2,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발족식이 시작됐다. 행사 후반 들어 전두환 5공정권을 지원하는 외세를 규탄한다며 미국 대통령 레이건과 일본 총리 나카소네에 대한 화형식을 진행할 무렵이었다.

이때 공대 건물을 지나 학생회관까지 진입한 경찰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최루탄을 무차별 난사하기 시작했다. 광장은 순식간에 먼지 구름 같은 최루 연기에 휩싸였다. 직격탄을 맞은 부상자를 업고 교직원과 교수들이 정문으로 내달렸다. 집회 참가자들은 최루탄을 피해 건물 안으로 쫓겨 들어갔다. 본관, 중앙도서관, 학생회관, 사회과학관 등으로 피신한 학생들은 경찰의 진입을 막고자 출입구에 캐비닛·책상·의자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이도 잠시에 불과했다. 경찰은 건물 안을 향해 최루탄을 대거 발사했다. 실내는 최루가스로 가득 찼다. 학생들은 환기를 위해 궁여지책으로 유리창을 모두 부셨다. 교정은 삽시간에 아수라 지옥으로 변했다.

해가 지면서 찬바람이 엄습하면서 기온이 뚝 떨어졌다. 학교는 경찰에 병력 철수를, 학생들에게는 안전 귀가를 전제로 자진 해산을 제의했다. 그러나 경찰은 학교측 제의를 묵살했다. 오히려 오후 7시가 지나면서 전경차는 70대로, 경찰병력은 2,000여명으로 불어나 건국대를 물샐 틈없이 포위했다.

집회 참가자뿐만이 아니었다. 도서관에 있던 건국대생도, 친구를 만나러 온 타교생도 투망 속에 갇힌 물고기 신세로 전락했다. 본의 아니게 학생들은 점거농성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준비없이 건물 안에 갇힌 이들은 첫날 밤을 극도의 공포 속에서 지샜다.

이틀째인 10월29일 휴교에 들어간 건국대는 총장을 비롯해 간부들이 나서 경찰에 학생들의 안전귀가 협상을 시도했으나 허사였다. 일개 대학 따위의 성의쯤이야 간단히 묵살해도 좋다는 듯, 경찰은 오전 단수에 이어 오후에는 전기까지 끊었다. 학생들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밤에는 극심한 갈증과 추위에 떨어야 했다. 뉴스를 보고 달려온 학부모들이 건물 밖에서 외투를 전달하려고 경찰에 애원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이를 지켜본 학생들은 ‘어머니의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부둥켜 안았다.

학교 근방 화양리 일대에는 성능 좋은 마이크를 장착한 정체불명의 차량들이 “공산당은 반드시 망한다”고 방송하면서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그러자 극심한 피로와 허기에 지친 와중에도 사회과학관의 한 여학생이 밖을 향해 손나팔을 만들어 “애국시민 여러분, 우리는 빨갱이가 아닙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꿈꾸는 애국학생들입니다”라고 외쳤다. 주변 건물의 옥상에 있던 주민들이 박수를 보내고 격려했다.

서울의 여러 대학에는 애학투의 건국대 농성에 대한 지지 대자보가 붙었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를 한데 모을 역량이 없었다. 각 대학 투쟁본부가 이미 건국대에 갇혔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추위와 누적된 피로, 타는 듯한 갈증과 굶주림 속에서 10월31일 아침을 맞았다. 오전 8시30분, 8,500여명의 경찰병력이 진압작전에 돌입했다. 무장 헬기가 굉음과 함께 건국대 상공을 선회하면서 적을 공격하듯 소이탄을 토하는 것을 신호로 경찰들은 일제히 다섯 개 건물 안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무서운 속도로 내려꽂히는 소이탄과 최루탄, 적의를 번득이며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쇠파이프 등 건국대 교정은 생지옥이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투신에 대비해 건물 주변에 깔아놓은 매트리스에 불이 붙으면서 검은 연기가 불길과 함께 치솟았다. 건물 안쪽에서는 “사람이 죽어간다” “구급차를 불러주세요”가 난무했다. 거친 비명으로 가득했다. 운동장 스탠드와 정문 밖에서 진압작전을 지켜보던 학부모들까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고가사다리에서 소방 호스로 퍼부어대는 최루액을 잔뜩 뒤집어쓴 학생들이 거의 실신 상태로 끌려나왔다. 지칠대로 지친 학생들은 끌려나오면서 잔혹한 발길질 세례를 받아야 했다. 경찰은 도서관, 학생관, 교양학관, 본관, 사회과학관 차례로 진압작전을 완료했다. 주동자급 체포에는 1백만원 상금과 포상 휴가까지 걸려 있는 작전이었다.

진압이 끝난 뒤 경찰은 대운동장에 55개 중대 병력을 집결시켰다. 마치 적을 섬멸한 뒤 전공을 자축하기라도 하듯, 의기양양한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관제언론은 전장에서 상처를 입은 학생들을 향해 연일 공산혁명분자라고 매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검찰은 연행자 1,525명 중 부상자 등을 제외한 1,290명을 구속했다. 그중 주동자 29명에게는 국가보안법이 적용됐다. 근대적 사법체계가 출범한 뒤 단일 사건으로는 세계 최고의 기록이었다.

애학투는 ‘반제 민중민주화운동의 횃불을 들고 민족해방의 기수로 부활하자’는 슬로건 아래 86년 봄의 대학생 전방입소 훈련 거부와 팀스피리트 반대 투쟁에 주력하던 학생운동 그룹(민족해방파)이 만든 조직이었다. 이들은 5·3 인천사태가 대중의 신뢰를 잃으면서 민주화운동 조직의 궤멸적 탄압을 불러온 점을 반성했다. 대신 직선제 개헌을 매개로 제도권 야당과의 연합전선을 구축해 군사정권을 향해 대대적 투쟁에 돌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당시 논란이 된 88올림픽은 남과 북이 공동으로 개최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사태가 종료된 뒤 공안당국이 학생운동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일부러 사상 유례없는 투망작전을 벌였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돌았다. 사건을 둘러싼 여러 정황을 볼 때 개연성이 매우 높았다. 미 국무부 차관보가 갑작스럽게 방한한 것이라든지, 김대중이 대통령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정권측이 모종의 비상조치를 내릴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온갖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더욱 희한한 일은 사건 직후에 일어났다. 북한 금강산댐에 관한 언론 보도가 그것이었다. 북한이 만성적인 전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금강산댐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그해 4월이었다. 이때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러나 건국대 사건 뒤 갑자기 이 소식이 언론을 타기 시작했다. 북한이 88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금강산댐 물을 방류하면 여의도 63빌딩의 절반 높이까지 물에 잠기는 등 원폭 투하 이상의 피해를 입힌다는 내용이었다. 국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방송은 인기 연예인까지 동원해 금강산댐에 맞서려면 평화의 댐을 우리 손으로 건설해야 한다며 연일 선전선동에 나섰다. 결국 코흘리개들의 돼지저금통까지 훑어내 7백여억원의 성금을 걷는 데 성공했다.

이 광기는 7년이 지난 93년 감사원 감사에서 국민 사기극으로 드러났다. 개헌정국을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는 전두환과 그 추종자들이 벌인 후안무치한 조작극이었다. 이 미완의 평화의 댐은 지금도 수려한 강원도의 경관을 욕보이듯, 거대한 입을 벌린채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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