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는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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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il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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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08
    울릉도 여행 2010 11/3~6
  2. 2010.09.09
    Ubuntu 9.10 에서 YAFFS2 Mount 하기
  3. 2010.07.21
    로켓 스토브
  4. 2010.06.07
    새로운 관계 트위터!
  5. 2010.03.31
    봄이 오는 소리...
  6. 2010.02.19
    Android(2.1) 개발 환경 설정
  7. 2010.02.16
    “공동체 내의 무소유 실험, 세상으로 넓히고 싶다”
  8. 2010.02.16
    찜질방 질식사고를 예방하려면
  9. 2010.02.13
    모토로이
  10. 2010.02.13
    [펌]드로이드/안드로이드폰 사용 팁 (Tips and Tricks)
그동안 생활에 쫒겨 맘에만 담아두었던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지를 두고 고민을 하다 울릉도를 택했다. 제주는 여러차례 가본 곳이고 언젠간 갈 일이 생길 것이고 지리산 둘레길을 생각해 봤으나 인터넷 검색 중 여행객이 많아져 이런저런문제점들이 생기고 있다 하여 울릉도로 가기로 결정했다. 좀처럼 떠올르지 않는 울릉이 왜 갑자기 떠 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트위터를 통해 읽었던 몇개의 글이 연결된 것 일게다.

이런 저런 우여 곡절 끝에 묵호항에서 1시에 출항하는 배에 올라 배멀미 걱정과 미지의 섬에 대한 기대로 꽉차 있을 무렵 문자 한통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김상진 기념사업회 회장이신 재호형의 급작스런 부음에 도동항에 도착할 때 까지 내내 돌아갈 방법만 머리속에 맴돌고 여행 계획은 온데간데 없다. 도동항에 도착하여 보니 이틀이나 풍랑으로 결항된 때문으로 뭍으로 나갈 사람들이 장사진이다 보니 배편을 구하기 어렵게 됐다. 다음날 배편도. 무거워진 마음은 어쩔수 없으나 여행 또한 어쩔수 없다. 늦어진 출항으로 도착하니 벌써 해가 산너머로 넘어 가고 있어서 도동 주변의 관광지를 둘로 보기로 하고 독도 전망대와 도동약수공원을 다녀오니 어덕해 진다. 도동이 섬 동쪽에 있다 보니 어둠이 일찍 찾아 온다.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 오니 7시. 혼자 여행이다 보니 할일도 없고 문상 가지 못한 죄스러움을 털어 버릴려고 가게에서 사온 쐬주와 맥주를 청승맞게 비우고 산책이나 하려고 항구 쪽으로 나가니 행남해안산책로가 눈에 들어 온다. 해안을 따라 가로등이 죽 늘어서 있는데 저동까지 가는 길이라 한다. 잠깐의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카메라 정리하고 문상가 있는 지인과 전화통화 하고 나니 1시가 넘어 버렸다.

아침 7시50분 까지 나오라는 가이드의 문자를 받고 울릉도 일주 관광과 간단한 트레킹 일정을 시작한다. 도동에서 출발하여 통구미,남양,태하를 거쳐 예림원까지 친절한 가이드의 안내로 기암괴석에 얽힌 사연들을 듣기는 하는데 어느 여행지나 다를바 없는 설명은 좀 지루 하다. 섬을 둘러 보며 평평한 해안도로 쯤으로 생각했던 것이 어이 없어지며 울릉의 땅에 기대어 사는 이들의 팍팍함이 진하게 묻어난다. 경사진 땅에 농사 짓고 수확하고 오르내리는 이들이 존경스럽기 까지 한다. 나리분지에서 점심 후 석포 마을에서 내수전 까지 이어지는산길을 걸어 이동한다. 옛길을 정비하여 트레킹 코스로 개발해 놓은 곳인데 걷기에 무난하다. 산허리를 잘라 만든 길이라 오른쪽은 가파른 산이고 왼쪽은 깍아지는 벼랑이다. 걷는 사이사이 보이는 바다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비로서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수전 전망대와 봉래폭포를 보는 것으로 이들째 울릉도 여행도 마무리 된다. 하루동안 둘러본 울릉은 깍아지는 절벽과 해안도로를 따라 죽 늘어서 있는 기암괴석이 있는 어느 여행지 보다 이국적인 섬이라는 것을 느낀다.


삼일째 되는 날 성인봉을 완주하기로 한다. 최근들어 등산을 몇번 해 봤지만 산은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다. 어떻게 페이스를 조절해야 하는지 아직은 초보이다 보니 자주 놓친다. 여행사에서 알려준 코스가 가장 무난하다 하여 오른 안평전 코스. 무난하긴 뭐 무난? 산행을 시작하자 마자 30여분을 그냥 급경사길이다. 정상까지 한참 남았는데 벌써 이러면 정상 부근의 깔딱은 어쩔거냐는 걱정으로 잠시 숨을 고르고 오르니 정상 부근은 오히려 완만하다. 정상을 지나 나리분지 쪽으로 하산길을 잡고 나무계단을 내려 오니 왼쪽에 성인수라는 약숱터가 보여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재호형 가시는 길 울릉도에서 술한잔 올리고 다시 나무계단을 계속 내려 가다보니 단풍이 장관이다.

나리분지 쪽에서 올라 오는 팀 몇을 제외하고는 하산하는 길에 만난 등산객은 없다. 혼자 다니는 데 익숙한 나에겐 어쩌면 행운인지도 모르겠다. 나리분지로 내려온 후 추산(송곳산)으로 내려가려 하는 데 길 찾는데 실패하고 어쩔수 없이 천부길로 들어서 한참을 구비구비 길을 내려오니 해변마을 천부에 도착했다. 흔히 시골마을에서 보던 다방 아가씨가 차배달을 마치고 내려가고 있다. 정겹다고 해야 하나 뭐라해야 하나. 아가씨가 나선 곳엔 벌건 대낮에 두 아저씨 얼큰하게 취한채 언쟁이 한참이다. 무슨 언쟁거리 인지 궁금하지만 잘못하단 어떤 불똥이 튈지 두려워 귀를 쫑긋이며 지나친다. 천부에서 현포까지 해안도로를 걸어 도착하니 3시경. 어제 트레킹하던 석포로 갈 생각이었는데 해떨어지는 시간을 계산해 보니 저동으로 가는 도중에 날이 어두워 질 것 같아 포기하고 해안도로를 걸었다. 현포에서 버스타고 도동으로 복귀하니 4시경이다. 엇그제 중간에 돌아온 행남해안 산책로를 마저 돌아 보기로 한다. 등대를 보고 저동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아찔한 회전계단을 내려 저동 촛대바위까지 왕복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울릉에서의 마지막날 오후에 죽도관광을 하기로 하고 오전에 지난번 다녀온 태하마을 옛길을 찾아 보기로 하고 버스에 올랐다. 태하에 내려 항구와 성하 신당을 잠시 살펴 보고 옛길을 찾아 마을로 들어가니 집사이에 자그마한 골목길에 옛길 표시가 있다.역시나 울릉도 답게 절벽에 한사람 겨우 다닐만한 길이 보인다. 지금은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로 오르는데 옛길로 올라 모노레일 승강장을 지나자 관광객 한분이 호기심을 보인다. 휘적휘적 돌아 다니다 자그만 오솔길을 발견하고 한참을 가니 절벽사이 해송숲이 눈앞에 펼쳐진다. 돌아갈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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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http://seulkom.tistory.com/entry/Ubuntu-904-%EC%97%90%EC%84%9C-YAFFS2-Mount-%ED%95%98%EA%B8%B0

0. 커널 컴파일을 하기 위한 기본 셋팅


커널 컴파일을 위해선 다음의 package들이 필요

build-essential
kernel-package
libncurses5-dev                                    # ncurses 를 기반으로 하는 화면-menuconfig-에서 설정하기 위한 것
libgtk2.0-dev, libglib2.0-dev, libglade2-dev   # GTK 기반 화면-gconfig-에서 설정하려면 설치해야 할 것
libqt-mt-dev                                             # QT 기반 화면-xconfig-에서 설정하려면 필요한 것

[실행]
# apt-get install build-essential
# apt-get install kernel-package 
# apt-get install libncurses5-dev libgtk2.0-dev libglib2.0-dev libglade2-dev
# apt-get install libqt-mt-dev


Ubunut에는 linux-source가 default로 포함되어 있지 않으므로 linux-source도 설치
(시냅틱 패키지 관리에 가면 간단하게 설치 가능하다)

커널 소스를 다운 받으면, /usr/src/ 디렉토리 안에 저장됨
* 압축 풀고나서 /usr/src/linux-source-[kernel_version]에 들어가 menuconfig를 통해 kernel 옵션을 수정 ('3.' 에서 실행)

[실행]
# tar -xjvf linux-source-[kernel_version]


1. 서버에서 YAFFS2 다운로드





우리는 YAFFS2를 다운 받을 예정이므로
yaffs2/ 폴더에 들어 간 후 하단에 있는 Download GNU tarball 을 통해 tar 파일을 다운 받는다
다운받은 파일을 tmp 나 home 폴더 등 원하는 경로에 압축을 푼다

[실행]




2. /usr/src/linux-[version]/fs 경로에 YAFFS2 설치

YAFFS2 source를 linux-[version]에 포함시키기 위해 필요한 파일들을 /usr/src/linux-[version]에 저장한다.
이미 압축을 푼 폴더 내에 .sh 파일이 있으므로 이를 이용한다.
실행 하고 나면 자동으로 /usr/src/linux-[version]/fs/yaffs2 가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실행]
# cd yaffs2
# ./patch-ker.sh                 // .sh 파일



3. make menuconfig 를 통해 config 파일 저장

(커널 메뉴 설정)
 make menuconfig 는 /usr/src/linux-[version]/ 디렉토리 안에서만 가능한 명령이다.

(각 디렉토리에 Makefile과 Kconfig가 존재한다. 이를 이용하여 menuconfig 에서의 메뉴형태를 변경할 수 있다)

/usr/src/linux-[version]/fs/yaffs2 에 존재하는 
Makefile과 Kconfig를 통해 원하는 방법으로 menuconfig를 수정 할 수 있다.



[실행]
# make menuconfig
File systems>Miscellaneous filesystem>YAFFS2 filesystem support

a. File systems를 선택한다

 
b. Miscellaneous filesystems 를 선택한다


 
c. YAFFS2 file system support 를 선택한다



4. 커널 설정 저장 후 커널 컴파일


exit 버튼을 누르고 save 창이 나오면 save를 한다.
설정값이 /usr/src/linux-[version]/.config 파일에 저장된다.


[실행]
# make clean                                  
# make bzImage install                     # vmlinuz 를 /boot 에 추가
# make modules modules_install       # /lib/modules 에 커널 추가



5. 새로 만든 커널 initrd를 통해 /boot/grub에 추가

vmilnuz              # 기존의 다른 linux에서 사용되는 bzImage 와 같다. bzImage를 rename
config                 # 커널 컴파일 시 사용된 config 파일
system.map      # fatal error가 발생한 경우 recover를 위해 필요한 파일
initrd.img           # root file system을 실제로 mount 하기 위한 파일

새로 만든 커널을 부팅 시 실행 하고 싶다면 grub에 initrd를 추가해야 한다.

[실행]
# cd /lib/modules
# update-initramfs -c -k [kernel_module_directory_name] 


실행하고 나면, /boot 에 initrd.img 파일이 생성된다.

Ubuntu가 9.10로 올라가면서 grubmf grub2로 업데이트 되었기 때문에
설정파일이 /boot/grub/menu.lst 에서 /boot/grub.cfg 로 변경
grub.cfg 는 readonly 파일이기 때문에 직접 수정하면 안된다.

[실행]
# update-grub
# grep "menuentry" /boot/grub/grub.cfg 


실행하면 생성된 initrd를 메뉴에 추가한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새로 만든 커널을 등록해서 부팅


6. Nandsim module 추가 및 YAFFS mount

/dev 디렉토리에 mtd와 mtdblock이 존재 하지 않으면 modprobe로 mtdblock을 추가
modprobe로 nandsim도 추가 후 yaffs 마운트

[실행]
# modprobe mtdblock
# modprobe nandsim
# insmod yaffs.ko
# mkdir [마운트 할 위치]
# mount -t yaffs2 /dev/mtdblock0 [마운트 할 위치]
# cat /proc/filesystems (확인)

* modprobe를 실행했을 경우 다음과 같은 에러가 발생하면
-----------------------------------------------------------------------------------------------------------------------------------
WARNING: all config files need .conf /etc/modprobe.d/vmware-tools it will be ignored in a future release
-----------------------------------------------------------------------------------------------------------------------------------

[실행]
# sudo mv /etc/modprobe.d/vmware-tools /etc/modprobe.d/vmware-tools.conf 






Reference : http://programmerjk.springnote.com/pages/2456582?print=1
                 http://wiki.kldp.org/wiki.php/KernelModuleProgrammingGuide
                 http://www.linux.co.kr/home2/board/bbs/board.php?bo_table=lecture&sca=1&sca2=32&sca3=&wr_id=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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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르스키 박사의 화덕 설계 지침

위나르스키 박사의 화덕 설계 지침을 소개한다. 위나르스키의 설계 지침은 연소효율과 열저도율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1 지침 : 단열처리 하라 

가능한 가벼운 내화재료를 이용해서 화덕을 단열처리 한다. 단열처리를 한 화덕은 고온 상태가 된다. 고온 상태의 화덕은 불완전 연소로 생기는 연기와 유해 가스를 줄일 수 있다. 화덕을 단열하면 장작이 탈 때 생기는 열을 화덕 몸체에 빼앗기지 않고 그대로 솥으로 전달할 수 있다. 그만큼 빨리 솥을 데울 수 있고 땔감도 아낄 수 있다.
흔히 화덕을 만들 때 진흙을 사용한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모래나 흙과 같이 무거운 중량재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흙과 모래는 축열재다. 축열재로 만든 화덕은 열을 빼앗기 때문에 연소 효율이 떨어진다. 단열재는 대부분 스치로폼처럼 가볍고 작은 공기 주머니인 공극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천연 단열재는 부석(pumice rock), 질석(vermiculite), 진주암(perlite), 나무 숯이다. 진흙과 톱밥을 반죽해서 단열 성능이 높은 내화벽돌을 집에서 만들어 사용해도 된다. 불행하게도 금속은 열에 약하다. 도기 토관은 주로 연탄 보일러에 주로 사용되는 데 금속 보다 불에 더 잘 견딘다. 토관의 문제는 단열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다.

열기가 흐르는 통로를 단열처리 한다. 단열은 화덕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화덕의 몸체가 장작불에서 열을 빼앗는 축열재라면 솥안의 물은 늦게 끓게 된다. 화덕 몸체, 특히 화구, 연소실, 연소연통 등 열기가 지나는 통로를 단열하면 장작불의 열을 화덕 외부로 빼앗기지 않고 고온을 유지할 수 있다. 진흙이나 모래와 같이 중량재료는 장작불에서 열을 빼앗는 축열재이다 

2 지침 : 단열 처리한 연통을 연소실 바로 위에 설치한다.


연소연통(연소실과 연통이 하나로 연결된 구조)은 연소실 지름의 약 세배 정도 높이가 적당하다. 연소실 바로 위애 연소연통을 달면 장작이 잘 타들어간다. 단열처리된 고온 상태의 연소연통은 불완전 연소되었던 연기가 다시 연소 되게 만든다. 고온의 연소연통은 완전연소 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든다.
연소실 지름의 세배 높이의 연소연통 높게 만들수록 깨끗이 연소 되고 연기도 적어진다. 반면 연소연통이 낮을수록 뜨거운 열기는 바로 솥에 전달된다. 지나치게 높은 연소연통은 너무 많은 차가운 공기를 빨아들이기 때문에 되려 솥에 전달되는 열을 감소시킨다.

제 3 지침 : 장작 끝 부분부터 불을 붙인다. (연소점을 집중한다.)
불 붙은 장작불이 높은 열을 낼 때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불안전 연소 상태가 아니란 증거다.  장작을 너무 조각 내지 말고 불 붙은 연소점이 장작 끝에 집중되게 해야 한다. 장작이 불이 붙어 타 들어가는 만큼씩 화덕 안으로 집어 넣는다. 연소점을 집중한다는 것은 타들어가는 장작의 양을 조절하는 하고 불 붙지 않은 장작의 나머지 부분이 미리 가열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재와 연기가 적게 나오게 하면서 완전 연소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연기는 불완전 연소의 증거다. 나무 때는 연기도 들이마시면 몸에 해롭다. 안전해 보이는 화덕도 상당한 유해가스를 내뿜는다.

제 4 지침 : 불의 높낮이는 장작의 양으로 조절한다.
요리하기에 적절한 불길이 올라올 수 있도록 적당한 양의 장작을 화덕에 넣는다. 장작이 뜨거워지면 나무 가스가 나오고 가스에 불이 붙어 열을 내게 된다.

제 5 지침 : 장작 사이로 공기를 주입하라.
불 붙은 장작 사이로 공기 주입이 잘 될 수 있도록 만든다. 적절한 공기 주입만으로도 고온을 유지할 수 있다. 고온으로 타는 화로가 깨끗하게 연소된다는 점을 잊지 말자. 장작 사이로 공기를 원활하게 주입하기 위해 별도의 공기주입구를 화구쪽에 만들기도 한다.

제 6 지침 : 화구를 좁게 만든다.
공기 주입을 너무 줄이면 불완전 연소의 결과로 연기와 재가 많아진다.  반대로 지나치게 공기가 주입되도 역시 연소구를 냉각시키기 때문에 불완전연소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화구(장작주입구)를 좁게 만들면 지나치게 공기가 주입되는 걸 막을 수 있다. 

제 7 지침 : 화구, 연소실, 연소연통의 크기를 같게하라. 
장작을 넣는 화구, 불이 붙는 연소실, 연기와 불꽃이 올라가는 연소연통은 거의 같은 크기여야 한다.  화덕 주요 부위의 크기를 같게 하면 한결 같은 불길의 흐름을 만들 수 있다. 불길의 원활한 흐름은 화덕을 고온 상태로 유지할 뿐 아니라 뜨거운 열기가 솥으로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만든다. 공기는 열을 잘 전달하지 않는다. 공기가 뜨거워졌다해도 그대로 멈춰있다면 열기가 전달되지 않는다. 뜨거운 공기가 흐르게 만들어야 뜨거운 열기가 잘 전달될 수 있다.
주입구 크기가 크면 클수록 불이 잘 붙는 화덕이 된다. 장작은 더 잘타고 더 뜨겁게 된다.  그러나 너무 크면 되려 불완전연소의 원인이 된다. 일반적으로 적당한 화구와 연소실, 연소연통은 가로 세로 12cm이다.

제 8 지침 : 땔감 받침을 만든다.
화구 안쪽에 쇠창살로 땔감 받침을 만든다. 장작이 화덕 바닥에 닿지 않고 띄어져 이께 하기 위해서다. 재를 긁어낼 때도 도움이 된다. 장작을 바닥에서 띄워놓으면 공기가 잘 들어가고 장작과 숯에 불이 잘 붙게 된다. 수평으로 장작을 넣을 수 있도록 만든 서랍형 화구(장작주입구) 역시 공기주입에 도움이 된다. 공기는 서랍형 화구 아래서 올라오고 장작은 수평으로 나란히 화구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이 연소가 잘된다. 

제 9 지침 : 화덕과 솥 사이 간격을 좁게하라.
화덕을 설계할 때 가능하면 솥과 화덕 사이의 간격을 좁게 만들어야 열을 효과적으로 솥에 전달할 수 있다. 화덕과 솥 사이의 간격은 조금씩 임시로 막은 뚜껑을 열면서 경험을 통해 파악해야 한다. 가장 불길이 좋은 순간의 간격을 알아내야 한다.  화덕과 솥 사이의 좁은 틈으로 뜨거운 열기가 솥의 표면을 훑고 지나가면서 솥은 빠르게 뜨거워지고 물을 더 빨리 끓게된다. 간격이 너무 크게 되면 되려 불길은 솥 밑바닥에서만 놀게 된다. 너무 좁으면 반대로 불길이 잦아들게 된다. 간격을 적당히 좁히되 불이 잘 붙는 상태여야 하고 열기가 솥 주변을 훑고 지나가되 느리지 않고 빠르게 지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느리게 움직이는 차가운 공기보다 뜨거운 열기가 솥에 잘 전달될 수 있다.  연소실과 바로 연결된 연소연통이 아니라 별도의 연통을 다는 경우라면 화덕과 솥 사이의 간격은 더 줄일 수 있다. 연통때문에 빠른 열기의 흐름이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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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자 프레시안에 청와대 김철균 뉴미디어홍보 비서관(@saunakim)과 관련된 기사(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603143559)가 실렸다. 그리고 오늘 뉴데일리 기자 출신 온라인 대변인(이길호)을 임명하여 청와대는 공식 트위터(@BluehouseKorea)를 개설했다. 선거과정에서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파괴력을 청와대도 충분히 느낀 것 같다. 
이번 선거는 트위터를 비롯한 SNS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트위터의 가장 큰 특징은 나를 following(싸이월드의 일촌과 비슷하다) 하는 회원에게 내 글이 보여지는 것(feeding)인데 follower수가 많으면 영향을 줄 확률이 훨씬 높아 진다. 또한 follower 수가 많지 않다고 하더라도 의미 있는 내용의 글은 재전송(retweet) 기능을 통해 순식간에 확산되기도 한다. 트위터에선 헌혈증이나 헌혈을 부탁하는 글이 가끔씩 올라 오면 트위터 이용자들은 해당 글을 리트윗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거의 모든 사용자에게 전달되는 효과를 발휘하여 급박한 상황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곤 한다. 이렇듯 순식간에 사용자 전체에게 특정 메시지를 전달되는 것 자체가 잠재력의 근간인 것이다.
현재 트위터 한국 이용자는 대략 60만명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이라고 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트위터를 운영할 생각이 트위터 본사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제한적 실명제를 이유로 유투브가 한국에서 서비스를 하지 않는 이유와 유사하다. 국내 업체가 운영하는 유사한 서비스들이 몇몇 있다. 대표적인 것이 미투데이일 것인데 선거를 앞두고 포탈검열이 강화되면서 소위 미네르바 효과를 트위터가 보고 있는 것이다.
언론에서 트위터를 주목한 건 미국 대통령 선거에 트위터가 영향을 끼쳤다는 외신 보도 직후다. 6.2 지방선거에 트위터의 영향력이 얼마나 될까 다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때에 몇몇 트위터 현상을 정확한 분석 없이 선거에 끼친 영향이 큰것 처럼 언론에서 보도했다. 그러나 60만이라는 숫자가 전체 선거판을 흔들만한 것이었는 지에 대해선 아직 결론 내리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트위터 이용자수가 예측대로 2012년 삼백만 이상을 상회할 때는 선거판 자체를 흔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트위터의 활약상은 위키트리(http://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9750)를 참고 할 만하다.
현 정부는 트위터의 파괴력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위 프레시안 기사에 “트위터는 우리 플랫폼이 아니라서 도대체 몇 명이나 쓰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그 안에서 우리 국민들이 주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우리(정부)보다 트위터 본사에서 훨씬 쉽게 알 수 있는 틀을 가져갈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하고 있다. 좋게 생각해서 우리 문화에 맞는 서비스를 만들자는 이야기로 들어야 하는데 정부가 검열하기 어렵다는 속내를 보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오독일까?
선거 이후 현 정부를 지지하는 신규 회원이 늘고 있다. 트위터라는 매체를 두고 본격적인 경쟁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 그러나 매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히려 독이될 가능성이 훨씬 많다. 트위터 문화를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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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비오는 출근 길에 안양천 주변을 보니 아무리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네요.
아직 돌아갈 때가 안된건지 눌러 살 요량인지 철새들도 간간히 보입니다. 올 겨울 유난히 많은 눈 떄문에 자출족들이 애를 많이 먹었었죠.뚜벅이도 힘들었답니다.


덤불 사이로 빼꼼히 올라오는 잡초를 보면 자연의 순환이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서부간선로 갓길에 피기 시작한 개나리와 막 꽃을 머금은 벗꽃. 벗꽃 피면 장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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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요한 프로그램 다운로드
Eclipse IDE for Java Developers
Eclipse IDE for Java EE Developers
위 둘중 필요한 것 하나를 받으면 된다
본인의 환경에 맞는 SDK를 선택하여 받는다.
Java SE Development Kit (JDK6)

- 설치
1. JDK 설치
다운 받은 JDK를 설치하면 된다. 
2. Eclips 설치
받은 압축 파일을 원하는 폴더에 풀면 된다. 
3. Android SDK
받은 압축 파일을 원하는 폴더에 푼다.

- 설정
1. Eclips 3.5.1
설정을 시작하기 전에 환경변수를 등록해 주는 것이 좋다.
emulator와 툴킷의 환경을 일치시켜 주지 않으면 emulator을 시작할때 아래와 같은 메시지가 나타날 수 있어서 가능하면 등록해 주는 것 이 좋다.
emulator: ERROR: unknown virtual device name: 'nnnn'
emulator: could not find virtual device named 'nnnn'
환경변수 설정은 제어판=>시스템에서 고급탭을 선택하면 환경변수라는 버튼이 있는데 거기서 새로만들기 버튼을 눌러 다음과 같이 입력한다.
변수 이름 : ANDROID_SDK_HOME
변수 값: D:\android-sdk-windows <= android sdk 설치된 폴더

압축을 푼 Eclips 폴더의 eclips.exe 실행
eclipse에서 실행 했을경우 Failed to create the Java Virtual Machine 이란 에러가 뜨면
eclipse.ini에서
( 2. Find & Replace the line -vmargs with -vm D:\jdk1.6.0_23\bin\javaw.exe OR just remove the line -vmargs and save it . Now the problem is solved )
-- 추가 --
-vm
C:\Program Files\Java\jdk1.5\bin\javaw.exe
-- 추가 --

Android 개발툴 plugin 설치
Menu>>Help>>Install New Software
Add button 클릭

Name: 구별할 수 있는 이름 입력(ex, android plugin)
Location: https://dl-ssl.google.com/android/eclipse/
OK 클릭
잠시 기다라면 Pending 메시지가 사라지고 아래와 같이 Developer Tools 로 바뀐다. 이를 첵크하고 Next를 누른다.


잠시 기다리면 설치 상세 정보 창이 아래와 같이 나타난다.

Finish 버튼을 클릭하면 Android plugin 설치가 진행된다.  설치가 완료되면 Eclips를 재실행 한다.

2. Android SDK 설치
압축을 푼 폴더의 "SDK Setup.exe" 또는 "SDK Manager.exe"를 실행.
실행 도중 다음과 같은 화면이 나오면 왼쪽 메뉴의 Setting를 선택하여 
Force https:// ... source to be fetched using http:// 를 첵크한후 다시 Installed Package를 실행한다.

정상적으로 데이터를 가져오면 설치할 SDK 항목들이 나열되는데 필요한 것을 선택하여 설치하면 된다. 전부 선택해도 무방하다.

3. Eclips 설정
Menu>>Windows>>Preferances
좌측 메뉴중 Android 클릭 하면 우측에 SDK Location을 입력하는 항목이 나오면 Android SDK를 설치한 펄더를 지정하면 설치된 SDK가 보인다.

Menu>>Window>>Android SDK and AVD Manager
Virtual Device 생성 - emulator에서 사용할 가상 Device를 만든다.
실제 프로그램에서 사용할 장치들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 프로그램을 할때 에러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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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내의 무소유 실험, 세상으로 넓히고 싶다”
- 18년 보금자리 ‘산안마을’ 나온 유상용(농학 82) 회원을 만나다 -
 
 
임은경(농학95,선구자취재기자)
 
인터넷에서 '산안농장' 또는 '산안마을'을 검색하면 수많은 게시물이 뜬다. 경기도 화성에 있는 산안농장은 항생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은 고급 유정란 생산지로 입소문이 퍼진 곳이다. 이곳의 닭들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좁은 우리에 갇혀서 '알 낳는 기계'로 혹사당하는 대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마음껏 모이를 먹고 건강한 계란을 낳는다. 가격은 일반 계란보다 2~3배 비싸지만, 한번 먹어본 이들은 십 년, 이십 년, 평생 고객이 될 정도로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좋다. 하지만 이 마을이 주목을 받는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마을 전체가 한 가족이 되어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독특한 생활 방식이 그것이다. 마을의 정식 명칭은 ‘야마기시즘 생활실현지’. 일본인 농부 야마기시 미요조(山岸巳代藏·1901~61)가 제창한 ‘무소유 공용 일체 사회’라는 이념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뜻이다.
산안마을의 남다른 삶의 방식은 각종 매체를 통해서 이미 여러 차례 소개된 적이 있다. ‘모든 것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쓰일 뿐’이라는 생각 하에 각자 가진 것을 풀어 내놓아 모두 함께 사용하는 마을. 때문에 ‘내 소유물’은 없지만 오히려 쓸 수 있는 물건은 더 풍성해지는 곳. 분업?협동을 통해 공동 생산한 계란을 팔아 마을을 함께 꾸려가고, 마을 내에서는 돈이 전혀 필요하지 않으며, 외부로 나갈 일이 있을 때는 공동 지갑에서 필요한 만큼 꺼내다 쓰는 곳.
그런데 많은 이들이 동경하고, 가서 살아보고 싶어 하는 이 ‘유토피아’에서 제 발로 걸어 나온 사람이 있다. 1992년부터 지난해까지 18년 동안 산안마을 주민이었던 유상용(농학 82) 회원. 그가 지난해 6월 가족과 함께 산안마을을 나온 것은 그곳의 이념을 세상에 더 널리 퍼뜨리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산안마을에서의 삶은 행복했어요. 괴로운 고비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것이 싫기보다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그곳이 내 자리였으니까요.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움은 어느 정도 따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즐거운 일들도 많았고, 전체적으로 보면 정말 좋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사람의 행복에 관한 가장 이상적인 것을 함께 했으니까요.”
 
한국에 야마기시즘이 소개된 것은 60년대 후반이고, 실제로 산안마을이 시작한 것은 1984년부터다.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50여 곳에 퍼져있는 ‘야마기시즘 생활실현지’들은 종교에 근거하지 않은 공동체 중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례로 꼽힌다.
야마기시즘은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의 대척점에 서 있다.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할수록 성공한 것이라 여기는 물질 만능주의 세상. 그러나 야마기시즘은 욕심껏 움켜쥔 그 손을 놓고 무소유의 자유를 누리라고 가르친다.
 
“야마기시즘의 근본 사상은 세상 만물이 모두 하나, '일체'라고 보는 것입니다. 너는 너, 나는 나,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냥 생각해봐도, 내가 먹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온 것이고, 배설물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잖아요. 생태순환적인 사고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사람이든 동물이든 다 한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외부에서는 산안마을 사람들이 단지 생계 수단으로 닭을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양계는 야마기시가 사회 운동의 중요한 수단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닭과 사람이 하나로 이어져서 닭에게도 행복한 양계를, 동시에 인간도 행복사회로 가는 길을 실현해보자는 것이었죠.”
 
서양의 근대사회는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보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어져있다고 유상용 회원은 말했다. 자연이건 작은 동식물이건 함부로 대하면 언젠가는 그 해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소유라는 것은 인간의 머릿속에 있는 관념일 뿐입니다. 물건도, 식량도, 지구 자체도 함께 나누어 쓰는 것일 뿐이죠. 야마기시즘에서는 무엇에건 소유가 있고, 분리되어 있고, 내 것 아니면 못 쓴다는 생각 자체가 틀린 것이라고 봅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이렇게 마음먹는 순간에 외로워지잖아요. 자본주의가 생산력이 발달했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고통을 전제로 하고 있죠. 경쟁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그것이 ‘너를 이겨야 하는’ 투쟁적인 경쟁이라서 문제인 것입니다.”
 
이 같은 생각을 세상에 가르친 야마기시는 일본이 한창 전쟁을 치르고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하던 1901년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 어느 마을 축제에 갔다가 복숭아를 먹고 무심코 씨를 던졌는데, 그 씨가 지나가던 어른에게 맞은 사건이 그에게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그 어른이 너무나 크게 화를 내는 것을 보고 어린 야마기시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사람은 왜 화가 날까 하는 의문은 그의 평생을 지배했다. 열아홉 살 때쯤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인적 없는 오두막에 들어가 홀로 지내다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진리는 하나이며, 진리를 펼쳐가는 데는 구체적인 방법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의 사랑, 석가모니의 자비……, 그동안 인류에게 주어진 가르침들은 모두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들뿐이다. 하지만 야마기시는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에 도달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산안마을과 같은 ‘야마기시즘 생활실현지’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이 때문에 야마기시즘은 종교가 아니라 사회 운동으로 방향을 잡게 되었다.
 
“종교적으로 수련을 하는 대신, 야마기시는 연찬(硏鑽)이라는 방법을 택했어요. 연찬은 야마기시회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이 생각을 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사회를 구성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토론을 하기보다 생각을 모아가는 것인데요, 연찬에서는 듣기가 가장 우선시되죠. 나랑 생각이 다른 상대방의 생각을 물끄러미 또는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누가 얘기를 하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예'하고 받아들여 보는 거죠. 그것을 ‘영위(영점에 위치한다)’라고 표현하는데요. 영어로는 제로 베이스(Zero base)가 되겠네요.”
 
내 생각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것은 제로가 아니다. 내 생각이 있더라도 일단 내려놓고, 나랑 생각이 다른 상대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 그 다음에 그 생각을 가져다놓고 정말은 무엇인가를 탐구해가는 과정이 연찬이다. 야마기시는 이것을 '자기를 풀어놓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를 위해 몇 가지 프로그램들을 개발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야마기시즘 특별 강습 연찬회’이다. 7박 8일간, 일 년에 네 차례 정도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외부인이 참여할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은 없다. 7박 8일을 꼬박 함께 생활하면서, 끊임없는 연찬을 통해 모든 것을 단정하고 고정하는 관념을 깨고 ‘정말의 것’(진짜)을 서로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예를 들면 '눈앞에 있는 컵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컵과 정말 같은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요. 내 눈이 보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눈에 비친 상이지 그것의 실체가 아니지요. 사람은 무엇을 보면 그것을 고정하려는 속성이 있어요. 내가 눈을 문지르면 사물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 눈이 흔들리는 것뿐이잖아요. 자신의 생각이 곧 사실이라고 단정하는 데서 벗어나면, 내 생각도 틀릴 수 있고 상대의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대화를 할 때 내 생각이 옳다고 단정하고 출발하지 않게 되지요. 틀릴 수 있으니까 좀 더 개선하고 나은 방향으로 갈 수도 있고요.”
 
연찬회에서는 '화', 마음의 자유, 소유, 참된 행복 등의 테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후반부로 가면 ‘진실 사회’(야마기시가 명명한 것, 진리가 실제로 현현되는 사회)를 어떻게 전개해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한다. 이밖에 보름짜리 프로그램인 ‘연찬학교’도 있다. 회원들의 입소문을 타고 신청자가 많아 인기가 좋은 프로그램들이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누가 배워가서 다른 데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산안농장에서만 하도록 했기 때문에 널리 확산되기엔 한계가 있었다.
유상용 회원의 고민이 시작된 것도 이 같은 문제와 맞물린다. 산안마을의 울타리 안에서만 실현되는 이상사회는 답답했다. 야마기시즘은 ‘무고정 전진’이라고 하는데, 어느 지점에서는 자꾸 고정되는 것이 보였다. 더구나 그즈음 새로운 청년 세대가 들어오지 않아 공동체가 노쇠하고 축소되어가는 것도 문제였다.
 
“산안농장과 연계되어서 다음 세대를 배출할 수 있는 청년 센터를 만들자고 건의를 했지요.
그런데 지금 실현지의 형태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의 반대에 부딪혔어요. 그래서 그 문제를 놓고 일 년 이상 논의(연찬)를 했는데, 결국 생각의 다름이 해소가 안 되더군요. 그분들은 새로운 시도보다는 산안마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저는 본질을 지키면서도 더 유연한 방식의 조직 구성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결국 '해서 보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단독으로 나왔습니다. 앞으로 저의 활동을 통해 성과들이 나오면 다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연찬을 통해서도 생각이 접근되지 않은 부분은 안타깝지요.”
 
내가 가던 길이 애초의 생각과 다르거나, 다소 옳지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현재의 것들을 미련 없이 버리고 새 길을 찾아나서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은 힘들고 어려운 길이고,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상용 회원이 살아온 삶은 언제나 많지 않은 사람들이 가는 그 길이었다.
 
“대학 때는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저도 학생 운동을 했지요. 몇몇 선배들과 함께 농대에 처음 탈춤반을 결성했는데 제가 1세대에요. 제적당하고, 군대에 갔다 오니까 89년이었는데 6월 항쟁을 겪은 후여서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 있더군요. 민주화 운동 전력이 있는 학생들을 복학시켜주었고, 저도 졸업을 했어요. 그때 함께 운동했던 선후배들은 운동의 다양성에 대해서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이전에는 정치 민주화가 최우선 과제였지만, 이제는 또 다른 대안이 될 사회 만들기가 과제가 된 것이죠. 다들 노동 운동, 농민 운동, 문화 운동 등으로 흩어지고, 취직을 해서 직장을 가지기도 하고…….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역할을 찾아 떠났어요.
저는 농업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같은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농업 문제에서 진로를 찾으려는 생각에서 농대 내 동아리 우리농업연구회(농연)를 찾아가 ‘바른농업연구회’라는 소모임 활동도 했지요. 투쟁보다는 사이좋게 사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고, 사이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곧 사회운동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간디가 했던 것처럼, 사회 문제에 대해 투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레 한살림, 카톨릭의 생명공동체 운동이나 도농 직거래 운동에 관심이 갔어요. 유기농, 자연농을 하는 공동체를 하면서 도시와 직거래를 통해 도시 사람들이 농장에 와서 견학도 할 수 있는 그런 모델을 구상했지요. 그즈음 나온 한살림 선언(1989.10.)의 영향도 컸어요.”
 
유상용 회원이 애초에 가졌던 구상은 한국의 전통 사상을 바탕으로 수행과 삶과 운동이 하나로 통일된 공동체였다. 당시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원불교. 원불교는 신앙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 실천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공부와 사회가 둘이 아니라는 원불교의 이념은 매력적이었다. 졸업 후에 원불교 내에서 그런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 모임을 가졌다. 그중에는 원불교 교무도 있었다. 뜻을 같이 하는 3 세대 십여 명이 지리산 문수리에 들어갔다. 구례 토지면 버스 정류장에서 두 시간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여섯.
 
“산속이라서 기계를 쓸 수가 없어요. 소로 쟁기 갈아서 쌀농사를 지었죠.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몰라.(웃음) 죽염 사업도 하고, 나물 채취하고, 고로쇠 물도 받아다 팔고 그랬어요. 장차는 한봉을 해볼까 하는 계획도 있었죠. 그렇게 열심히 몇 달을 했는데, 막상 같이 살면서 각자 바라는 점들을 꺼내놓고 이야기해보니까 너무 다른 거예요. 처음에는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내놓고 보니까 전혀 그렇지가 않더군요. 사람의 생각을 모으는 것이 제일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규모는 작고 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있는데 꿈이 너무 종합적이니까 따라가지 못한 것도 있었고요.”
 
2월에 시작한 지리산 공동체는 그해 7월에 끝이 났다. 실패의 순간 느낀 절망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원불교 사상과 공동체의 실천 방향이 일치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공동체를 시작하자 교단에서 교무들의 참가를 막아 나서기도 했다.
 
“절벽에 다다른 느낌? 그때 처음으로 길이 보이지 않더군요. 한 달 정도는 종교도 없는데 기도를 했어요.”
 
그렇다고 뜻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유상용 회원의 ‘길 찾기’가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라즈니쉬의 제자들 모임에서 시인 류시화 씨도 만나고, 해외의 공동체로 눈을 돌려보기도 했다. 그러다 찾은 것이 '성스러운 빛의 전령사'라는 이름의 에미서리(emissaries) 공동체였다. 미국 콜로라도에 본부를 두고 있는 에미서리는 유상용 회원이 그때까지 생각하고 있던 것을 이미 실현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를 결정적으로 매료시킨 것은 '진리를 이 땅에서 실현하는 것이 곳 하늘이다.'라는 한 문장이었다. 혈혈단신 혼자였지만, 망설이지 않고 떠났다.
 
“90년 8월에 갔다가 92년 2월에 돌아왔어요. 거기서의 삶도 좋았고, 앞으로 얼마든지 계속 교류할 생각도 있어요. 하지만 결국 내가 가야 할 곳은 야마기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에미서리에 있는 동안 한국에 잠깐 나온 적이 있는데, 그때 조카를 데리고 어린이 캠프에 참석하러 산안마을에 갔다가 받은 깊은 인상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에미서리 공동체와는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처음에 그에게 에미서리를 소개했던 한국인 캐나다 교포가 몇 년 전 제주도에서 에미서리 공동체를 시작해, 가끔 서로 연락이 오간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마침내 찾은 산안마을에서 유상용 회원이 바라던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것은 앞서 얘기한 대로다. 하지만 공동체도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의 흐름에 맞춰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일본 야마기시 실현지에서도 지난 2000년에 저랑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독립한 사람들이 있어요. 50명 정도가 나와서 혼슈 미에현의 스즈카라는 작은 도시에 정착을 했지요. 조직에 집착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저와 같아요. 그분들도 나와서 처음에는 공동체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고 해요. 그러다가 2008년에 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KNI(켄산(‘연찬’의 일본식 발음) 네트워크 인터내셔널)'가 정식으로 출범했지요.”
 
스즈카는 새 길을 찾아 나선 유상용 회원의 중요한 교류 대상이다. 다음 달에도 벌써 방문 계획이 잡혀 있고, 강화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던 세대의 자녀들이 곧 스즈카로 가서 교류 활동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사업은 스스로 길을 찾아나갈 수밖에 없다. 그것을 위해 유상용 회원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단은 역시 ‘연찬’이다. 그는 이것이 보수와 진보, 다양한 사회 세력들이 대립하고 다투는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소통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산안마을이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했던 무소유 실험을 저는 좀 더 세상으로 넓히고 싶어요. 한 달에 한번 정도 지역 사람들이나 지인들, 관심 있는 분들과 연찬회를 열 생각이에요. 주제는 여러 가지를 다룰 수 있겠죠. 이곳 강화 지역에 농대 선배도 있고, 제가 동아리 탈반 활동할 때 만났던 친구도 있고, 기존에 시민운동을 했던 분들도 있어요. 요청이 있으면 다른 단체에 가서 연찬 진행을 할 수도 있겠죠. 연찬의 사고방식을 사람들에게 전하기도 하고요.”
 
그의 구상은 이미 하나씩 실천으로 옮겨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강화에서 ‘마리학교’라는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밝은마을’ 관계자들과의 연찬회가 있었다. 스즈카 사람들도 와서 함께 한 자리였다. 이번 1월에는 ‘한살림’ 전주?익산 시민운동가들과 강화지역 활동가들이 모여 ‘시민운동 간의 소통 및 소통 가능한 사회 만들기’를 주제로 4박5일간 연찬회를 열었다.
 
이번 연찬회는 “무엇이든 주제가 있으면 다 같이 제로 베이스에서 함께 생각해보는 연찬적 사고방식을 연습해본 것”이라고 유상용 회원은 말했다. 우리 사회는 진보든 보수든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얕다. 상대를 적으로만 생각하고, 쉽게 선을 그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사실 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눈에 적으로 보일 뿐이다. 상대는 이렇다고 단정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좀 더 상대의 말을 들어보고 탐구해보고, 질적으로 서로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들이 연찬회에서 나왔다. 연찬은 이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거리도 가능할 수 있도록 좁혀준다. 연찬회에서는 이밖에도 다양한 얘기가 나왔다. 보수의 기득권 문제만이 아니라 진보의 기득권 문제는 없는가? 또 내 안에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경향은 없는가? 많은 것을 돌아본 시간이었다.
 
“이번 연찬회에는 충북에 계시는 한살림 조희부 선생님하고 전에 산안마을에 같이 살았던 전북 장수의 이남곡 선생님도 참석하셨어요. 이남곡 선생님은 남민전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하셨던 분이죠. 그 연세에 그 정도 유연성을 가진 분들은 한국 사회에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이 선생님은 이전부터 진보? 보수를 넘어 다 같이 함께 연찬해가자는 뜻이 있으셨어요. 연찬을 야마기시즘의 독점물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누구든지 할 수 있도록 보편화하자는 것이죠.”
 
유상용 회원은 삼 년 전만 해도 강화도에 아무 연고가 없었다. 야마기시즘을 세상으로 넓히기 위해 적당한 곳에 청년 센터 같은 것을 설립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부터, 그는 자연과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공간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삼 년 전에 강화를 주목하게 됐다고 한다. 강화도는 삼국시대만 해도 두 개의 작은 섬으로 갈라져 있었다. 이후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바다를 메워 간척을 해서 지금의 섬이 된 것이다. 생각해볼수록 강화는 특별한 곳이었다. 외침이 있으면 왕실은 이곳으로 피난을 했다. 고려시대에는 몽고에 맞서 항전하면서 39년간이나 수도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바다로 나가는 관문인 동시에 외침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전략적 요지. 단군이 마니산에서 천제를 올린 것은 그만큼 이곳이 평범한 땅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니산에서는 신라시대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지금도 매해 천제가 올려지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화만한 곳이 없더군요. 인천공항도 멀지 않고요. 그때는 아시아 지역 청년들이 와서 교류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국제적인 청년 센터를 구상했었으니까요. 산안마을 다른 분들과 제 생각이 달라서 결국 무산됐지만.”
 
그는 지난해 6월부터 강화도의 한 펜션을 구입해 운영하고 있다. 18년간 ‘무소유’의 삶을 살다가 이제 ‘소유’의 세상에 나와 펜션 사장님이 된 것이다. 산안마을에서 지원해준 돈으로는 부족해 빚도 내고 어렵사리 시작하게 됐다. 일반인들에게 대여도 하지만, 사안이 있을 때마다 필요한 활동의 베이스캠프로 쓸 생각이다. 작년 12월에는 해외 각지에 자원봉사자를 파견하는 '국제 워크캠프 기구'의 자원봉사자 캠프가 1박2일 동안 이곳에서 열렸다.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100일간 열린 평화 순례 ‘워크 나인’도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해서 출발했다. 일본의 평화운동가 마사키 다카시씨가 주도하고 한국의 도법스님 등이 참가해 100일 동안 한국 땅 구석구석을 누빈 ‘워크 나인’은 많은 언론과 시민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워크 나인이라는 이름은 ‘걷다’라는 뜻의 ‘walk’와 일본 평화헌법 9조의 ‘9’를 합성해 만든 것이다.
 
“참가자들이 저희 집에서 길게는 4박5일간 준비모임을 가졌어요. 첫날 마니산 등반이 첫 일정이었지요. 부천, 서울, 동해안, 부산을 거쳐서 남해안을 돌아 올라와서 임진각에서 마쳤어요. 도중에 한국의 아픔이 있는 곳곳을 들렀어요. 나눔의 집 일본 위안부 할머니들을 방문한다거나, 광주 민주화 묘소를 참배하는 활동을 했지요. 한?일간 고대사에 대해 공부도 하고. 지금의 현대 문명은 서양이 일으켰지만 편리함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죠. 그 해결책은 서양 문명이 아니라 동양의 사상적 전통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마사키씨의 생각이에요. 제 생각도 같습니다. 우선 일본, 한국, 중국이 동아시아 문명을 회복하고, 그것을 통해서 세계에 메시지를 보내자는 것이죠. 모든 것을 분리된 것으로 보는 서양 문명에 반해, 사물을 일체라고 보고, 하나로 이어진 것으로 보는 눈이 동아시아 전통에 있어요. 서양만 바라보지 말고 여기서부터 다툼 없는 평화, 아시아발 평화의 메시지를 세계에 던지자는 운동이에요.”
 
스즈카 지역과도 더 활발한 교류를 할 생각이다. 머지않아 강화도 출신의 대학생 4명이 보름 일정으로 스즈카로 떠난다. 강화도에서 '콩 세알'이라는 두부 공장을 운영하는 서울대 법대 출신의 동문, 목사님 등 강화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했던 세대의 자녀들이다. 대안학교를 나왔는데도 대안사회가 없어 기존 사회로 편입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던 청년들이 스스로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찾아나서 보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은 부모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자리에서 우연히 나왔다. 유상용 회원 자신도 다음 달부터 스즈카에서 하는 새로운 방식의 연찬 프로그램에 참여하러 간다. 그가 꿈꾸는 것은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보다 나은 삶,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즐겁게 길을 찾아가자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싶어요. 관심 있는 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주시면 좋겠어요. 함께 대화도 하고, 기회도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야마기시는 자신이 깨달음을 얻은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에 계속 의문을 던지고 죽을 때까지 끝없는 실험을 거듭했다고 한다. 부부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일부러 아내를 화나게 만드는 등 실험을 계속했는데, 나중에는 부인이 화가 치밀어 그의 머리에 뜨거운 물을 끼얹은 적이 있었을 정도라고. 살아생전에 '나를 위인으로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농장 한쪽에 비석도 없는 작은 무덤으로만 남았다는 야마기시.
가슴 속 질문에 답하기 위해 끝없이 새로운 도전을 피하지 않는 유상용 회원의 모습이 어쩐지 그를 닮았다.
 
 
펜션 우리꽃자리 : 인천시 강화군 양도면 삼흥리 666-6
www.cochari.com
Tel. 032-937-3912
대중교통 : 지하철 신촌역 7번 출구로 나가 직진 200m 지점에 강화로 가는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다. 10-15분 간격 운행. 강화 터미널에서 펜션 근처까지 시내버스가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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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방 질식사고를 예방하려면
강태선 (산업안전감독관)
 
엊그제(2009. 12. 4) 충주의 한 찜질방에서 사람이 죽는 일이 또 발생했다. 변을 당한 분들이 부부라니 그 안타까움이 더하다.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공간에서의 사고라 충격도 크다. 찜질방을 찾는 발걸음이 당분간 뜸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늘 그렇듯 이번 사건도 처음이 아니다. 언론은 사건만을 담담히 보도하거나 관련 안전기준이 없음을 지적했다. 지자체 관계자도 기준이 없어서 그런 것까지는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이번 사건 또한 얼마의 시간만 지나면 잊혀질 것이고 또 비슷한 사건이 재발할 것이다.
 
보도를 보니 전과 다르게 구체적으로 일산화탄소(CO) 중독이라고 나온다. 혈액 중 CO-hemoglobin을 측정한 모양이다. CO-hemoglobin이란 산소를 운반하는 혈액 중 헤모글로빈에 산소대신 일산화탄소란 놈이 달라 붙어 있는 것을 말한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사람의 혈액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헤모글로빈이 나오며 이것으로 일산화탄소 중독을 진단한다. '일산화탄소=연탄가스' 등식이 성립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연탄가스외에도 일산화탄소는 우리 주변에 여전히 흔하다. 모든 유기물은 탈 때 일산화탄소를 낸다. 특히 불완전하게 연소되는 경우 연소가스 중 일산화탄소의 비율이 높아진다. 숯을 만드는 과정이 대표적인 불완전연소이다. 사고가 발생한 충주의 찜질방은 요즘 성업중인 참숯가마 찜질방이라고 한다.
 
지자체 관계자나 언론에서 말한 대로 찜질방에서의 일산화탄소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관련법이 과연 없을까? 없지 않다. '숯가마찜질방'은 '땀을 낼 수 있는 시설 및 설비 등의 서비스'로 분류할 수 있고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관리법' 적용을 검토할 만하다.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관리법'에서는 연면적 1,000 제곱미터 이상의 찜질방(법에는 '땀을 낼 수 있는 시설 및 설비 등의 서비스'로 기재)에서는 실내공기중 일산화탄소 농도를 10ppm 이하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신축하는 다중이용시설은 표에 있는 필요환기량을 충족해야 한다.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 별표 1의4>
 
 
다른 법도 있다. 건축법의 한 시행규칙인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서는 신축하는 연면적 1,000 제곱미터 이상의 찜질방은 '기계환기설비를 설치하여야 하는 다중이용시설'로 분류하였고 그 필요환기량을 25㎥/인·h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즉 신축하는 동 면적이상의 찜질방에는 기계환기설비를 해야하고 그 환기수준은 매 시간 당 최소 (찜질방 손님 수×25)㎥ 만큼의 새로운 공기가 찜질방으로 유입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 '숯가마 찜질방'은 황토와 돌 등으로 만든 대형 가마 속에서 참나무를 고온으로 태워 숯을 만들고 그 부산물로 목초액을 생산하는 제조시설을 찜질방 겸용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경기도의 최근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업체가 전국적으로 2009. 9월 현재 393개(환경부 자료)에 이른다고 한다.
 
지난 9월 초 경기도에서는 특별사법경찰관을 동원하여 이러한 숯가마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진행한 바 있다. 단속은 숯가마가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른 '탄화시설'로 분류될 수 있는데 배출시설 신고와 배출물질 정화 등에 관한 사항을 준수하고 있는 지에 관한 사항이었다. 경기도는 총 57개소를 단속하여 배출시설 미신고 등 위법 사실이 드러난 22개 업체에 대하여 검찰 송치 또는 과태료 처분했다. 경기도의 관련 보도자료에 따르면 도는 대기오염은 물론 이용객들의 가스중독 또는 화상 등 재해를 예방할 목적으로 기획단속에 나섰다고 한다. 경기도의 선도적인 행정이 돋보인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취지는 좋았으되 이번 단속으로 이용객들의 가스중독재해가 예방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관련 단속은 '탄화시설'의 배출시설에 관한 것이었을 뿐 이용객의 일산화탄소 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를 찾아보기 힘들다. 관련 법인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관리법'의 적용 및 준수 여부를 조사한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단속의 취지대로라면 점검을 하면서 숯가마찜질방의 실내의 일산화탄소라도 측정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대기환경보전법만을 적용한 결과로 숯가마찜질방이 배출시설 중 공기정화장치를 강화한다면 배출물은 안전해질른지 몰라도 실내오염은 오히려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대기오염방지라는 한 쪽 만으로의 규제가 오히려 다른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속은 저탄소정책의 일환으로 보이는데 사실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굴뚝 배출물의 저탄소보다는 실내공기질의 저탄소화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환경부 등은 숯가마찜질방에 대한 위 언급한 기존 관련 법 적용에 문제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정비를 해야할 것이다. 지자체도 관련 법을 광범위하게 검토하여 소비자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단속을 해야 한다. 사실 법이나 단속 보다는 숯가마찜질방을 운영하는 업자들의 경각심이 먼저 필요하다. 모든 가스에 의한 질식사고는 '밀폐'에서 비롯된다. '열 보존'에만 집중하지 말고 '밀폐'하면 사람이 죽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건축법에 정한 필요환기량을 감안한 주기적인 환기가 필수다. 불안하다면 직접 가스농도를 측정하는 것도 좋다. 측정기기는 100만원 미만의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고 누구나 쉽게 측정할 수 있다. 요즘 같이 밀폐가 심한 겨울철이나 이용객이 많은 때를 택해 찜질방 곳곳의 일산화탄소의 농도를 측정하는 것이 좋다. 2005년 홍천에서 같은 형태의 찜질방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고 2007년 법원은 숯가마찜질방 주인에게 2억 6천만원의 손해배상 지급을 판결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숯가마는 사장님의 마음마저 숯으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한 번 해보면 어떨까. 이용객들의 안전을 위한 환기나 일산화탄소 측정을 하면서 동시에 이것을 홍보하는 것. '우리업소는 실내공기질 기준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또는 '일산화탄소 항시 모니터링 중' 등으로 말이다. 찜질방도 이젠 '안전'이 품질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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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Fi가 말썽이다.
다른 장치들은 아무런 이상없이 연결이 잘되고 인터넷 접속도 잘되는데 모토로이만 안된다.
모토로이로부터 WiFi 접속이 완결되고 IP도 잘 받아오는데 AP로 ping이 안되는데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ping도 받아 보고 terminal 도 받아 실행해 봤지만 권한 문제로 해볼수 있는 것도 없다.
그래서 알아 본 것이 루팅인데 별로 어렵지는 않은 것 같다. 커널로 접근하는 것 까진 해 봤는데 WiFi 때문에 루팅해야 하나 몇일 고민좀 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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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http://www.i-on-i.com/201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모토로라의 드로이드를 두달 넘게 사용하면서 유용하게 사용하는 여러가지 기능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앞으로 안드로이드용 스마트폰들이 국내에 출시될 예정이니 대부분의 기능들/팁들은 다 비슷할듯 싶네요.
특히 모토로라의 모토로이는 같은 회사 제품에 같은 안드로이드 2.0 버전을 사용하기 때문에 드로이드 대부분의 기능들이 똑같거나 비슷하리라 생각됩니다. 아시는 분들은 이미 알고 있는 기능들이나 팁이겠지만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하는 초보자님들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되지 않을까 하네요. ^^

1. 문자에 상대방의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가 있을 경우에는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를 누르고 있으면 "Add to Contacts"이라는 메뉴가 나와 쉽게 주소록에 등록하실 수 있습니다.

2. 좌측 그림 하단의 버튼들 중 집 아이콘인 홈버튼을 길게 누르고 있으면 최근에 사용했던 6개의 프로그램들이 나타납니다. 노트북에서 멀티 작업을 하면서 화면 전환을 할때 Alt + Tap을 누르는 기능과 같은거죠. 앱과 앱 전환을 빠르게 하실 수 있습니다.

3. 드로이드를 컴퓨터와 USB로 연결시 반드시 Notification 메뉴를 누르셔서 "Mount"를 선택하셔야만 컴퓨터가 MicroSD 카드를 외부 저장 장치로 인식합니다. 무조건 USB 케이블 연결만 하시고 인식될때 까지 기다리시면 아무일도 안일어 납니다. ^^

4. 안드로이드폰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MP3 음악들을 바로 링톤으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듣는 음악을 선택해서 누르고 있으면 링톤으로 설정할거냐는 메뉴가 뜨죠. 그리고 링톤으로 설정한다고 누르시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링톤으로 바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링톤을 설정할 경우 원하는 부분을 선택해서 설정할 수 없기 때문에 노래 처음 부분 30초(?)가 기본적으로 선택되어 집니다. 원하는 부분을 선택해서 링톤으로 설정하시길 원하시면 무료앱인 Ringdroid를 사용하시면 원하시는 부분을 쉽게 설정하셔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5. 드로이드에는 자동차용 거치대에 설치시 Car Mode로 자동 전환이 됩니다. 이렇게 바로 인식하는 이유가 자동차용 마운트에 설치된 자석때문인데요. 드로이드용 케이스를 구입할 시 똑딱이 자석이 들어간 녀석을 구입할 경우 Car Mode로 자동 인식을 해서 주머니 안에서 계속해서 켜져 있을 경우가 있습니다. 케이스 구입시에 똑딱이 자석이 없는걸 구입하시는게 좋겠네요. ^^

6. 드로이드는 각종 알람 소리들이 들어 있습니다. 메일이 새롭게 도착했다거나 음성 사서함 메세지가 도착했다거나 새로운 문자가 왔을경우등 여러가지 알람 소리들을 들려 주어 사용자에게 알려 주는데요. 드로이드에 저장된 음원들 외에 자신이 원하는 음원을 통해 알람 소리를 바꾸고 싶다면 컴퓨터와 연결해서 SD 카드 안에 "notifications"라는 폴더를 만들어 그 안에 자신이 원하는 음원 파일을 넣으시면 됩니다.

7. 드로이드에는 슬라이드 쿼티 키보드가 있는데요. 컴퓨터처럼 Shift+Alt+Del 키를 같이 누르면 리셋이 가능합니다. 물론 아이폰처럼 상단 전원 버튼을 오래 누르고 있으면 Power Down이라는 메뉴가 뜨죠. 그리고 그걸 누루신 후 드로이드를 끄고 난뒤에 다시 전원 버튼을 눌러 켜시면 됩니다. 때로는 전원 버튼도 먹통일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이럴때는 배터리 커버를 열어 배터리를 뺐다가 다시 꽂은뒤 전원을 켜시면 됩니다.

8. 미국에서 드로이드를 사용하다 보면 데이터가 커버되지 않는 지역을 갈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때는 Data Roaming 옵션을 On 하셔야 하는데 이 옵션을 On할 경우 과도한 요금이 부과 될 수 있는다는 메세지가 뜨죠. 하지만 미국내에서는 Data Roaming 옵션을 On해도 요금이 부과 되지 않습니다. 드로이드를 네비게이터처럼 사용해서 운전하고 갈 경우 Data Roaming 지역으로 들어가면 Data를 받지 못해 지도가 하얗게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럴 경우에는 Data Roaming을 On 하신 후에 네비게이션 기능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북미 지역 안에서는 Data Roaming 요금 부과는 없습니다. ^^

9.  YouTube를 3G 네크워크로 시청시에 아이폰과 마찬가지로 저화질로 보게 됩니다. 화질이 너무 좋지 않아 보기도 힘들죠. 하지만 드로이드는 아이폰과 다르게 고화질 옵션이 있습니다. 유투브 동영상을 3G로 시청시 메뉴 버튼을 누르시고 More를 누르시면 "Watch in high Quality"라는 옵션이 있습니다. 이 옵션을 선택하면 깨끗한 화질로 유투브를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미국내는 데이터가 무제한이니 상관 없겠지만 국내에는 데이터 용량 제한이 있기 때문에 사용하면 데이터 용량을 많이 쓴다는것 염두해 두셔야 겠네요. ^^)

10. 가상 키보드를 사용할 경우 대문자를 계속해서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죠? 이럴 경우에는 왼쪽 Shift 키를 두번 누르시면 Shift 키에 초록색 불이 켜질 겁니다. 대문자로 lock이 되었다는 뜻이죠. 이럴 경우에는 Shift 키를 누르고 있지 않아도 계속해서 대문자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아이폰에는 없는 기능인듯 싶은데요. 유용합니다. ^^

11. 돋보기 모양의 검색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바로 음성 검색으로 넘어갑니다. ^^

12. 요즘 스마트폰들은 스마트폰의 위치에 따라 자동적으로 가로 세로로 화면을 전환 시켜주는데요. 때로는 자동적으로 화면 전환 되는것이 불편할때가 있습니다. 아이폰에서는 탈옥을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기능이지만 안드로이드에는 기본적인 기능으로 탑재 되어 있습니다. Settings --> Sound and Display에 가셔서 Orientation 옵션을 끄거냐 켜시면 됩니다. 세팅에 들어가기 귀찮을 경우에는 AutoRotate OnOff라는 앱을 다운로드 받아서 설치하시면 OnOff 스위치 위젯을 통하여 간단하게 세로 위치로만 고정 시킬 수 있습니다. (가로 위치 고정이 안되는 단점이 있네요. ^^)

13. WiFi이나 Bluetooth등을 쉽게 끄고 켜기 위해 3rd party 위젯등을 인스톨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드로이드 자체에 그러한 기능을 가지 위젯이 있습니다. 홈 스크린을 길게 누르고 있으면 Add Widget이라는 메뉴가 뜨시면 Widget Power Control이라는 위젯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14. 드로이드는 비밀번호보다 패턴을 이용하여 휴대폰을 잠그는 방법이 있죠. 얼마전에 글로 소개 한적이 있는데요. Menu --> Settings --> Location & Security 에 들어가시면 Change unlock pattern이란 메뉴가 있습니다. 이리로 들어 가셔서 자신만의 패턴을 만들어서 조금더 안전하게 드로이드를 가지고 다니세요. ^^

15. 드로이드에는 사진을 찍는 금색 버튼이 따로 있습니다. 이 버튼을 조금 오래 누르고 있으면 자동적으로 사진 기능으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이 버튼을 이용해 사진을 찍으면 되는거죠. ^^

16. 슬라이드 쿼티 키보드를 이용하여 단축키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검색 아이콘을 누르신 후에 단축키를 누르면 프로그램이 바로 실행이 되는거죠. ^^
search + e: email
search + y: youtube
search + b: browser
search + c: contacts
search + g: gmail
search + l: calendar
search + p: music
search + s: messaging
세팅에 가셔서 검색키를 바꾸실 수 있습니다. (Settings --> Application Settings --> Quick Launch)

17. 음성 검색을 이용하여 자신이 전화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말한뒤에 검색결과가 맞을 경우 "다이얼"이라고 외치면 자동적으로 전화를 걸어 줍니다. ^^

18. 인터넷을 할경우 웹브라우징 중에 back 버튼을 눌러 전 페이지로 가능 일이 많죠. 웹브라우저을 연 후에 초기 계속해서 서핑하다가 초기 페이지로 가려면 back 버튼을 수도 없이 눌러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을 겁니다. 이럴때는 Back 버튼을 오래 누르고 있으면 웹브라우징이 처음 시작된 페이지로 바로 갑니다. ^^

19. 쿼티 키보드를 이용하여 번호를 쓸 경우에는 Alt키를 누르고 있어야 하는데요. 계속해서 번호를 넣어야 할 경우 꽤 불편합니다. 한손으로는 Alt 키를 누르고 있고 나머지 한손으로 왼쪽 1부터 오른쪽 0까지 왔다 갔다 해야 하니까요. 이렇게 계속해서 번호를 써야 할 경우에는 Alt키를 두번 누르시면 Alt 키가 고정이 되기 때문에 두손으로 번호를 넣을 수 있습니다. 고정을 해제 시키시려면 Alt 키를 다시 두번 누르시면 됩니다.

20. 안드로이드 2.0일 경우 바탕 화면을 3개 까지 밖에 사용 못하고, 2.1인 넥세서원과 같은 안드로이드 폰도 5개까지 밖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앱들이 많아질수록 관리하기가 어렵죠. 이럴때 Apps Organizer라는 무료앱을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카테고리를 만들고 그 안에 찾기 쉽게 정렬하실 수 있습니다. 게임앱들은 게임 카테고리에 넣고 음악앱들은 Music 카테고리에 넣고 말이죠.

21. 내 전화기가 슬립 모드로 될 경우 WiFi 접속도 저절로 꺼지게 됩니다. 다시 드로이드를 켜면 그때 다시 WiFi를 잡으려는 모습을 볼 수 있죠. 이렇게 슬립 모드를 전환될때 마다 WiFi를 끄지 않으시려면 Settings --> Wireless & Networks --> WiFi Settings에 가셔서 Menu 버튼을 선택하시고 Advanced를 선택하시면 3가지 옵션이 나옵니다.
a. When screen turns off(기본설정입니다.)
b.Never when plugged in
c. Never
이 설정중 Never를 설정하시면 슬립 모드에서 다시 드로이드를 켜도 WiFi는 그대로 있습니다. ^^

그밖에 더 많은 기능들이 숨어 있을겁니다. 사용하다보면,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더 찾을 수 있겠죠. 혹시나 안드로이드 폰 유저분들이 윗 글을 보시고 자신이 찾은 숨은 기능들을 소개 시켜주면 더 좋겠네요. ^^
앞으로 안드로이드 폰들이 줄줄히 출시되면 더 유용한 정보들을 공유할 수 있게 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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