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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평화
젊은 벗에게,
땅을 팔고 너희를 위해 안전한 보호구역으로 이주하라는 미 대통령의 편지에 인디언 추장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우리들 조상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데, 어찌 그것들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러나 결국 인디언들은 학살당하거나 아니면 굴종의 이주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땅과 평화는 지구상에서 영영 사라졌습니다.
“... 대추분교 운동장에 있는 전봉준 동상 파괴를 온몸으로 막던 평택 시민 신문 양용동 기자, 그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 자신이 미술을 전공했기에, 그 가치를 알기에, 절대로 훼손은 막아야 했노라고 하지만, 한낱 농투성이인 내 눈에는 그것과 들판에 뿌려진 씨앗이 조금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한 뼘 한 뼘 땅을 가꾸면서 그것을 숭고한 작품을 만들 듯, 그리고 대를 이을 자식을 키우듯 어루만지고 가꾸었습니다... (김지태 대추리 이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른바 행정대집행은 평택주민들과 평화인권활동가들에겐 분명 ‘국가폭력’이었습니다. 수구신문들은 충분한 보상을 했다느니 이념문제라느니 떠들지만, 정작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땅’과 ‘평화’일 뿐입니다. 남은 여생을 일생 동안 일군 땅과 함께 하는 것이며 이 땅의 평화가 그분들이 바라는 것입니다. 그분들을 그 땅에서 떠나게 하려면, 참여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뿐이었습니다. 마지막 주민의 동의를 얻을 때까지 대화하고 대화하고 또 대화하는 일입니다. 국민을 주인으로 여긴다면 참여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입니다. 경찰을 동원하고 군인을 동원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것이 권위주의 독재를 마감한 ‘민주화된 시대’의 진정한 의미여야 했습니다.
참여정부는 미국의 요구대로 평택 미군기지 확대를 주민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농민들을 쫓아내려고 합니다. 보상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주민들을 더럽히면서. 이른바 국익이 모든 것에 우선할 수 있다는 수구언론과 정부의 논리가 바로 그들의 이념입니다. 그런 논리에 대한 암묵적 동의는 땅과 평화를 지키려는 농민들과 인권평화활동가들을 ‘진압’하는 일까지 일어나게 했습니다.
광주의 기억을 갖고 있는 우리들에게 군인과 민간인이 대치하는 모습은 순간 넋을 잃게 했습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에 이르렀다는데, ‘작전’ ‘진압’ ‘엄중한 처벌’이라는 말로 국민을 대하고 있습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대추리 사람들, 삶의 터전에 뿌리 내리고 그 소중함을 간직하려는 사람들, 그들의 절규가 뼈아픈 울림을 줍니다. 이 땅의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우리들의 인디언들입니다.
##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편지가 하루 늦어진 점 사과 드립니다.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인 드림
편집 : 한겨레 주주독자센터
룩셈부르크에 있는 유럽연합(EU) 재판소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유럽연합 집행부 간에 계속돼 온 법률공방의 한 정점을 이루는 구두변론이 4월 24일부터 닷새 동안 진행됐다.
이 송사의 시작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12월 유럽연합은 MS의 피시(PC) 운영체제 제품 '윈도'가 서버 운영체제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는 고발이 접수됨에 따라 조사를 개시했다. 이어 2000년에 유럽연합 집행부는 MS가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끼워팔기를 함으로써 음악 및 영상 재생 프로그램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직권으로 조사하기로 했다.
5년 넘게 진행된 조사절차 끝에 2004년 3월 유럽연합 집행부는 MS가 피시 운영체제에 대한 독점적 지배력을 남용해 서버 운영체제 시장과 음악, 영상 재생 프로그램 시장의 공정 경쟁을 부당하게 저해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시정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4억9700만 유로(약 58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MS가 이에 불복함에 따라 사건이 유럽연합 재판소로 넘겨졌고, 그동안 예비절차가 진행된 뒤 이제 구두변론까지 이루어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공정위의 제재에 대항해 임전 태세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 9월 다음커뮤니케이션이 MS의 메신저 프로그램 끼워팔기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고, 이를 계기로 한국 시장에서 MS가 거래하는 양태에 대한 조사가 개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그 뒤 음악과 영상 재생 프로그램 끼워팔기에 대해서까지 직권으로 조사범위를 확대했으며, 2005년 12월 MS의 끼워팔기가 위법하다고 판단하고 시정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과징금 325억 원을 부과했다. 이에 대해 MS는 "앞으로 진행될 장기적인 법절차의 시작일 뿐"이라며 결연한 임전 태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나 유럽연합 집행부나 단호한 태도를 취해 왔다. 두 경우 모두 피해신고 당사자들은 조사절차 진행 도중 MS로부터 합의금을 받고 신고를 취하했거나 열악한 시장환경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이처럼 경쟁자를 매수해버리거나, 경쟁자가 버티지 못하도록 시장환경을 압박하는 것이야말로 불공정거래의 진면목일 수 있다. 한국과 유럽연합 정부는 피해 당사자가 신고를 모두 취하해버린 상황에서도 독점 규제와 공정거래 확보라는 공익을 위해 조사절차를 끝까지 진행하고 제재 결정을 내렸다.
영국의 한 신문은 이를 두고 거인 골리앗(MS)에 홀로 맞서 싸우는 다비드에 비유하기도 했다(<가디언> 2006년 2월 21일자 보도). MS가 동원하는 초대형 로펌의 최정상급 변호사들에 맞서 제한된 법률인력과 예산으로 복잡한 조사절차를 진행하고 본격적인 송사를 감당해야 하는 한국이나 유럽연합 당국의 분투는 마치 대포와 소총의 대결을 보는 듯하다. 유럽과 한국의 사태 전개가 미국에서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도 흥미롭다. 미국에서는 MS를 상대로 제기됐던 독점규제 소송이 거액의 돈이 오간 끝에 합의로 결말을 보았다.
문제의 근본 뿌리는 MS의 운영체제 독점
이 송사들은 모두 표면적으로는 인터넷 열람 프로그램, 음악 및 영상 재생 프로그램, 메신저 프로그램 등에 대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MS의 컴퓨터 운영체제 독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컴퓨터가 이제 인류문화를 담는 가장 중요한 매체가 된 것이 분명하다. 매체의 혁신은 그 안에 담기는 정보의 내용까지 지배하곤 한다. 컴퓨터는 현대 인류문명을 특징짓는 존재다. 그러나 지구상에 보급된 거의 모든 컴퓨터를 하나의 회사가 공급하는 운영체제에 의존하게 하는 것은 섬뜩한 일이다. 오랫동안 인류문화는 지필묵이라는 매체에 의존해 왔었다. 전 인류의 지필묵을 단 하나의 사업자가 독점하여 제작, 공급하고 그 의사에 따라 배급이 결정 또는 거절되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컴퓨터 운영체제의 독점을 둘러싼 건곤일척의 승부가 한국과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의 인터넷 환경이 안고 있는 독특한 문제점을 짚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에서는 웹페이지 제작사들이 만든 웹사이트의 대부분이 MS가 제공하는 인터넷 열람 프로그램을 사용해야만 제대로 처리되도록 돼 있다. 유심히 살펴본 사용자라면 흔히 웹페이지 한 모퉁이에 "이 사이트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라는 안내 글귀가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말이 좋아 '최적화'이지, 이것은 곧 MS의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자에게는 웹사이트 접속이 사실상 금지되거나 심각하게 제약되는 최악의 인터넷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기이한 선언에 다름아니다.
이렇게 공공연하게 MS에 대한 충성서약을 하지는 않더라도 묵묵히 MS의 독점전략에 봉사하는 웹사이트는 더욱 많다. 한국의 전자상거래 사이트 또는 은행 사이트들은 특정한 보안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설치해야만 접속을 계속할 수 있게 돼 있는데, 이 보안프램그램이 오직 윈도에서만 설치되도록 돼 있다. 따라서 리눅스 사용자는 물론 매킨토시 컴퓨터 사용자도 접속 진행이 불가능하다. 이처럼 구조적으로 왜곡된 인터넷 환경은 MS가 컴퓨터 운영체제를 확실히 독점하게 하고, 다른 운영체제가 아예 한국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데 더할 수 없이 '최적화'된 여건을 제공한다. 윈도를 사용하지 않으면 국내 주요 인터넷 사이트들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기막힌 사실을 윈도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99%의 한국인들에게 알리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대법원, 정보통신부 등 공공기관 웹사이트도 MS 독점 뒷받침
개인이나 사기업이 운영하는 웹사이트가 이처럼 MS의 독점체제에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조력하도록 제작돼있는 상황은 당장은 어찌 할 도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인터넷 쇼핑몰 회사가 리눅스 사용자에게는 쇼핑은커녕 접속 기회마저 박탈하는 웹페이지를 걸어놓고 장사를 하겠다는데 어쩌겠는가? 인터넷 뱅킹을 제공하는 은행이 오로지 윈도 사용자만을 고객으로 알아 모시는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한들 어쩌겠는가? 아마도 경영진은 자기 회사 웹사이트가 리눅스나 매킨토시 사용자의 접속을 막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완벽한 무지로 형성된 경영의 장벽은 기술력으로 간단히 뚫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를 선도해야 할 대학들마저도 MS에 최적화시켜 제작된 웹사이트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홈페이지로 걸어놓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자못 암담하다. 인터넷과 컴퓨터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인터넷 문서 제작기준은 MS가 고집하는 변칙적인 웹문서 제작수법과는 다르며, MS 기준이 아닌 세계 기준을 준수해 웹페이지를 작성하면 운영체제와 상관없이 누구나 안전하게 접속해서 문서, 그림, 음악, 동영상 등 그 페이지에 담긴 모든 내용을 다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www.w3c.or.kr 참조).
그러나 정부나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웹페이지마저 MS에 최적화돼 있다면, 그것은 무지나 무관심의 소치로만 간주하고 그냥 넘길 수가 없다. 불행하게도 대법원 홈페이지부터 시작해 국세청, 심지어 우리나라 전산환경에 책임을 지고 있는 정보통신부의 홈페이지에 이르기까지, 윈도를 사용하지 않으면 그 웹사이트가 제공하는 모든 기능을 활용할 수 없게 돼 있다.
이는 마치 국가기관이 앞장서서 리눅스나 매킨토시 사용자들을 골탕먹임으로써 MS의 운영체제 독점을 도와주는 형국이다. 인터넷으로 등기부 등본 발급신청을 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윈도즈를 사용하지 않으면 문서 발급 신청조차 할 수 없다. 이는 민원인이 MS 제품을 사용하는지를 관공서가 일일이 확인하고 MS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민원인에게는 서비스를 거부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일개 기업에 대한 정부의 충성도 이 정도면 좀 지나쳐 보인다.
한국 법원의 MS 사건 판결이 세계적 관심 대상인 이유
유럽과 남미의 일부 국가들은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서버는 반드시 소스코드가 공개된 운영체제를 사용하도록 법률로 강제하고 있다. 물론 서버 운영체제와 홈페이지 제작방법은 별개의 문제이긴 하나, 한국 정부기관의 웹사이트들처럼 MS의 고객에게만 선별적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치는 우리의 현행 법에 비추어 보더라도 용납되기 어려운 것이다. MS에 최적화된 웹페이지를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것은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공정거래법 위반의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위법부당한 행정이라고 평가될 수도 있다. 적어도 공공기관의 웹페이지는 운영체제에 상관없이 누구나 정보접근과 온라인 민원신청 등을 할 수 있게끔 당장 개편돼야 한다.
유럽연합 재판소에서 진행되는 MS의 불복 절차는 이미 구두변론까지 진행됐고,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되는 불복절차는 이제 시작단계에 있다. 그러나 어쩌면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먼저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 그 판결은 유럽연합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큰 구도에서 보면, 그 판결은 인류문명사의 향후 전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강국으로 널리 선전된 한국의 법원이 MS의 독점 여부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는 더 더욱 관심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중요한 시점에 우리는 과연 한국이 인터넷 강국인지, MS 천국인지를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기창/고려대 법대 교수
유럽에 있는 동안 저는 조국통일 인사들을 적잖이 만났습니다. 이역만리에서 분단된 조국을 바라보면서 통일 염원을 갖는 것은 민족 구성원으로선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엔 의구심을 갖게 하는 인사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조국 통일을 외치면서 몇 안 되는 사람들이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일이나, 물리적 탄압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인지 서로 경쟁하듯 과격한 목소리를 내는 모습 등은 그들이 그들만의 무대에서 활약하는 ‘통일 건달’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습니다.
그들의 존재 때문은 아닙니다만, 언제부턴가 저에겐 못된 버릇이 하나 생겼습니다. ‘말’의 진정성을 엿보기 위해 ‘말’의 주인공에게 국록(나라에서 주는 녹봉)이나 권력의 자리를 안겨주는 상상을 해보는 것입니다. 제 외할아버님은 제가 소싯적에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를 때 야단치는 대신에 “사람은 노름을 해보면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다”라는 말씀을 남겨주셨는데, 저는 사람들이 살림살이가 확 달라질만한 국록이나 권력을 쥔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그들의 ‘말’의 진정성을 가늠해 보는 것입니다. 못된 버릇인 게 분명한데, 흥미로운 것은 그런 상상의 모습이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이든, ‘민주’든, ‘좌파’든, ‘진보’든, ‘노동’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처지가 의식을 규정 한다’라는 명제를 적용해 보는 것이지요.
저의 곱지 못한 시선은 오늘 ‘민주건달’들이 득세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면서 노무현 정권이나 열린우리당, 또는 참여정부의 ‘개혁’이란 게 <‘민주건달’들의 일자리 창출>의 의미로 남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알량하나마 권력까지 덤으로 갖게 되었으니 ‘민주건달’로선 주체하기 어려울 지경일 수 있겠습니다. 닳고 달은 관료들에게 포섭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와 같았을 것입니다.
전제할 필요도 없는 말입니다만, 물론 반민주세력이 계속 득세한 것보단 수백 배 낫습니다. 역사 진보의 발자취로 보더라도 ‘민주건달’들도 한 자리 하는 과정을 거쳐야겠지요. 그런데 ‘친절한 금자씨’의 말을 빌려 “‘민주’나 잘 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는 ‘민주건달’들이 ‘좌파’까지 끌어안으려고 안간힘을 쓰기 때문입니다. 반민주세력이 종종 그들을 ‘좌파’라고 몰아세우는데 ‘민주건달’들은 이를 은근히 즐기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건달’의 미덕으로 보더라도 온당치 않은 일입니다. ‘꿩 먹고 알 막고’도 유분수입니다.
과문의 탓인가요? 저는 ‘민주건달’에게서 노사관계에서 방향키를 반대로 바꾼 것에 대해 옹색하나마 그 이유를 들은 바가 거의 없습니다. 대미관계 또한 그 방향타를 반대 방향으로 틀었는데 궁색하나마 그 이유를 들은 바가 거의 없습니다. 자신의 초심을 부정한 사람들이, 그래서 민중을 말했던 과거의 자신을 배반한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좌파’를 들먹이는 행위는, ‘왕의 남자’ 앞에게도, ‘중세의 부퐁’ 앞에게도, 왕후장상에게 예속되었던 예술인들 앞에게도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서는 과거에 반민주에 맞섰던 민주의 ‘아우라’까지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면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의 말을 빌려서 한마디 해봅니다.
“‘민주건달’님들, 살림살이 확 나아지셨습니까?”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인 드림
편집 : 한겨레 주주독자센터
선거가 이제 코 앞이네.
시작할때와 지금의 심정이 크게 다르지 않는 걸로 봐서 선거운동을 제데로 안하는 게 분명한데 회사일과 아그들 챙겨야 하는 것등 그냥 지나칠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안감할 뿐이지.
오늘은 4월혁명 그날인데.
아무런 느낌없이 회사에 출근했다 잠시 인터넷을 보고서야 오늘이 4.19인줄 알았다.
사회가 안정되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서 일까?
사회적 이슈에 사람들이 집중하지 못하고 다양한 목소리로 부서지는 것 또한 존중하여야 할 현대의 가치인지 생각하게 하는 하루다.
최루탄 가득한 거리에 서 있었던 우리가 지금은 방벽 뒤에서 관망하는 세대로 전이한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을 느낀다.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는 시를 나에게 그리고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반려자 조은주에게 전하고 싶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한미 FTA 저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원회 출범 선언문
문화, 인권, 생명을 위협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한다.
- 과도한 지적재산권 강화는 한국의 문화를 질식시키고 인권과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미칠 파괴적인 영향력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높아가고 있다. 농산물 개방으로 위협받을 농민들의 생존권과 식량 안보, 국민의 눈과 입이자 정신의 요체인 방송,영화 시장 개방에 따른 문화의 종속성 심 화와 미디어 공공성 약화,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의료시장 개방, 한국의 미래를 미국에 위탁하는 교육시장 개방 등 그 파급효과는 전 사회영역에 미칠 전망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미칠 부정적인 영향은 지적재산권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적재산권의 지나친 강화는 거대 자본의 독점권을 강화하여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민중들의 문화적 권리와 건강권 등의 인권을 침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킴으로써,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협정이 야기할 폐해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협정의 체결에 반대하는 전 국민적 운동에 함께 하고자 한다.
정부는 지적재산권과 관련하여 협상 의제나 정부의 입장과 전략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지적재산권 문제가 주요 이슈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협상의 개시를 선언한 지난 2월 2일, 미 무역대표부(USTR)는 미국 의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에 서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한 폭넓은 요구를 한 바 있다. 또한 미국 재계의 입장을 담고 있는 ‘주한미상공회의소 2005 정책보고서’에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4가지 요구사항 중 하나로 ‘디지털 지적재산권 침해를 중심으로 지적재산권 보호 및 단속 강화’를 포함하고 있다.
지적재산권은 산업상 이용가능 한 발명에 독점권을 부여하는 특허권, 문화 예술 창작물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고 있는 저작권을 비롯하여 상표권, 영업비밀 등 다양한 독점권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지적재산권 제도는 한 사회의 기술, 산업의 발전과 문화의 증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며, 정보화가 진척될수록 그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독점배타적 권리의 부여를 기본 원리로 하는 지적재산권의 특성상 지나친 권리의 강화는 오히려 지식과 문화에 대한 접근과 유통을 과도하게 제한함으로써, 문화적 권리와 같은 인권과 공공성을 침해하게 된다. 또한 특허로 인한 의약품 독점과 같이 인간의 생명과 건강권에 대한 위협이 되기도 한다. 대다수의 지적재산권이 실제 창작자가 아니라 초국적 자본의 소유와 통제 하에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지적재산권은 사실상 창작자들의 이익보다는 초국적 자본의 독점을 강화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세계무역기구(WTO)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을 비롯한 세계적인 주요 지적재산권 협정에 가입이 되어 있으며, 지적재산권 권리자에 대한 보호 수준이 국제 협정에서 요구하는 수준보다 전혀 낮은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국제 협정들은 초국적 자본의 이해가 과도하게 관철되어 그 보호 수준이 지나치게 높고 문화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2003년과 2005년에 개최되었던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WSIS)에서도 대다수의 시민사회단체들은 현행 지적재산권 체제가 과도하게 권리자의 독점적 이익의 보장에 편향되어 있어, 이용자의 권리 및 공공성의 보장과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변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 제3세계 국가들이 중심이 되어 ‘개발 의제’ 수립을 제안하며, 지적재산권이 각 국의 개발을 촉진하는데 복무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국제협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이상으로 한국의 보호 수준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미국의 요구가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할 뿐이며, 한국 민중뿐만 아니라 미국 민중의 이해와도 상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협상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미국이 체결했던 자유무역협정이나 미국 기업들의 요구들을 통해 우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논의될 의제들을 가늠해볼 수 있다. 우선 미국은 현재 저작자 사후 50년으로 되어 있는 저작권 보호기간을 70년으로 연장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미국의 ‘소니보노 저작권 연장법’은 이미 약 40여만 개의 저작물이 공공자산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아 대다수 사람들의 문화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미국 내에서도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법은 ‘미키마우스법’이라는 조롱에서 보다시피, 단지 거대 문화 자본의 이익만을 대변할 뿐이다. 미국은 또한 저작권 침해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저작권자들은 미성년자들에 대해 사법처리 하겠다고 위협하고, 이용자들의 정보인권을 침해하면서 이미 강력하게 단속을 시행하고 있는 중이다. 일시적 복제(컴퓨터나 인터넷의 이용 과정에서 메모리 등에 일시적으로 저장되는 것)를 복제로 인정하라는 요구는 모든 컴퓨터와 인터넷 이용을 통제하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와 같은 미국의 요구는 소수 문화 자본의 독점적 이익을 위해 민중들의 정보 접근권과 문화적 권리를 희생하는 것으로 절대 수용할 수 없는 것들이다. 특허와 관련해서도 미국은 특허 범위의 확대, 강제실시의 요건 강화, 특허와 의약품 승인의 연계 등 특허권자, 특히 미국의 제약 자본의 독점을 강화할 수 있는 장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의약품의 개발, 생산, 유통에 있어서 초국적 제약자본의 독점적 지위를 강화시키는 반면, 민중의 통제권은 전반적으로 약화시킴으로써 민중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미국의 요구는 초국적 자본의 독점을 보장하는 대신, 국내의 산업, 문화, 인권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지적재산권 제도가 미국의 일방적인 통상 압력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고려할 때, 또한 한국 정부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태도 역시 자본 편향적이었음을 볼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지적재산권 협상이 민중의 입장에서 공정하게 진행되지 않을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또한 미국은 자신의 요구에 맞는 지적재산권의 강화를 국제협정에서 관철하기 힘들게 되자,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전 세계적인 지적재산권의 강화와 통일화를 꾀하고 있다. 따라서 협상 체결국의 사회적 여건이나 수준을 고려한 지적재산권 협상을 기대하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우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추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엄중히 요구한다. 각계 민중들의 이러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체결을 강행한다면, 우리는 이에 맞서 끝까지 투쟁해 나갈 것을 결의한다.
2006년 4월 11일
한미 FTA 저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원회
(공공의약센터|문화연대|정보공유연대 IPLeft|진보네트워크|함께하는시민행동)
4월은 봄이 오는 길목이다.
그런데 잔인하다 한다.
우리네 현대사의 씁쓸한 기억의 편린이리라.
지난일요일 김상진기념사업회에서 열사의 묘소 참배행사가 있었다. 항상 나를 되돌아 볼수 있는 여유를 주는 행사인데 올해는 그만 빠지고 말았다. 처음처럼 초발심을 돌아보며 가다듬고 약해가는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데 여러 일정들이 겹치면서 결국엔 가지 못하고 말았다.
오늘이 김상진 열사가 가신 날이다.
대학 때 기일(4월11일)날 묘소 참배를 가면 다음날 어김없이 지도교수의 호출과 온갖 협박을 들어야 했기에 쉽게 찾아갈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지금은 학교 학장도 오고 한다니 참 세상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현장에서 제단에서 가신 열사님 추모하지는 못하지만 내 블로그에서 나마 참배드립니다.
김상진 열사와 권력에 항거하다 스러져 가신 님들 편히 쉬시라는 말로 대신합니다.
먼저간 친구와 선배,후배에게도 술한잔 올립니다. 편히 쉬십시요.
1986년 2월9일(일)
오늘이 음력 정월 초하루. 쓸쓸히 혼자 앉아 TV보며 지난 1년을 되새겨봅니다. 악몽 같은 지난 1년. 어김없이 세월은 흘러갑니다. 그동안 변한 것도 많았습니다. 혜령이가 아들을 낳고 승훈이가 딸을 낳고 우리 철훈이가 방위를 마쳤습니다. 세월은 자꾸 흐르고 인생은 늙어갑니다. 그리고 병들어 가고요. 만나면 헤어지고 이별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만은 거기에서 제외된 인간인 줄 알았습니다. 잠시 착각을 했던 것이겠지요. 작년 일년은 그럭저럭 지냈읍니다만 또 올해는 어떻게 넘겨야 할지…
9월10일(화)
오랜만에 펜을 들었습니다. 그간 무엇을 어떻게 살았는지 조차 모르겠습니다. 나 같은 이에게 물어보면 세월이 약이라고 하던데 전 한 달, 두 달 달이 겹칠수록 생각은 더해갑니다. 잊을 수가 지워버릴 수가 없습니다. 당신을 잊으려고 살아계실 때 나에게 잘 못한 것만 되살려 봅니다. 하지만 살아계실 땐 내가 다 옳았던 것 같은 것이 지금와서 곰곰이 생각 해보니 제가 잘 못한 것 같구려. 여보,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저같이 모자란 여자 만나 고생많이 하고 가셨습니다.
당신을 잊기위해 아니 나를 위해 오늘도 절에 다녀왔습니다. 백일기도 오늘로 끝마쳤습니다. 기도하고 법문듣고 점심먹고 하는 것이 저의 유일한 락이랍니다.
불가에선 자식과 나를 묶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나와 남이라고 생각하라 하였습니다. 하물며 당신과 나 사이도 남과 나라고 생각해야 될텐데 부처님 가르침에 어긋나고 있사오며 크나큰 과오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 고통도 전생의 업으로 생각하고 빚을 갚는다고 생각하라 하였거늘, 나와 당신 나와 자식들의 테두리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사오니 다음 생애까지 가지고 갈려고 이러나 봅니다.
여보, 당신을 잊게 해주옵소서. 희망을 불어놓어 주옵소서 꿈을 아주 큰 꿈을 저에게 주옵소서.
이 생명 다할 때까지 열심히 살아가게 도와주옵소서
오늘의 공부.
60년 전 을축년 여름 대홍수가 나 봉은사 앞이 물바다가 되여 그 때의 봉은사 주지 스님이 ( ) 한사람 건져오면 벼 1 섬을 준다하여 700사람을 건져와 봉은사에 피란시켰다 함. 봉은사는 신라 때부터 있었고 그 때 물난리로 인해 봉은사가 이름을 떨쳤다함. 올 해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이 큰 물은 없어 안심이 됨. 일 년 앞질러 작년에 넘어갔나 봄.
양보심. 자비심, 욕심, 탐심에 대하여 설명함.
양보심-무엇이든 다 남에게 먼저를 주는 것이 양보가 아니다. 능력이 있어도 남을 먼저 생각하는게 양보지 자신이 없어 양보하고 뒤쳐지는 것은 양보가 아니다.
자비심- 능력이 있어야 자비심도 생기고 남을 도울 수도 있다.
욕심- 욕심은 나쁜 것이 아니다. 욕심이 많아서 큰 뜻을 품고 열심히 해야한다. 남을 앞질러 나갈 줄 알아야 큰 사람이 된다.
탐심- 탐심은 나쁘다. 탐심은 허영에서 오는 것이다.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1985년 11월23일 공무원 법회 제 4회 2주 4주 무진장 스님 법회
오늘의 법문
불교란 무엇인가?
1. 모든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것
2. 2. 마음이 청정하여야 한다. 이 청정함이 부처님의 가르치심이니라.
3. 어리석음을 깨우쳐 깨닳으면 모든 번뇌를 잊으면 이것이 열반이니라
인간의 다섯가지 오욕 - 1. 물욕 2. 애욕 3. 명예욕 4. 식욕 5. 편안한 욕
남자란 어떻게 보면 천진스럽기도 하고 성난 파도같기도 하다. 그러므로 아내의 역은 쉽고도 어려운 것. 어떤 땐 엄마, 어떤 땐 누나, 어떤 땐 아내 다양한 역을 연출해가면서 산다면 어느남자도(폭군도) 순한 양처럼 된다고 하였다.
이법문을 듣고 보니 내 잘못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난 받고만 살려고 했던 것 같다. 포근한 엄마, 감싸주는 누나 역은 못했던 것 같다. 후회스럽다. 지금 계신다면 해드릴 수도 있으련만… 안계시니 다음 세대에게나 전해 줄 수 있겠구려.
8월7일(수)
여보, 인생이 이렇게 무상한 것인가를 정말 몰랐습니다. 인생이 이렇게 허무한 것인가를 미쳐 몰랐습니다. 다시 재생할 수 없는 생명 가꾸고 아끼며 조심해야 할 줄 알면서도 그렇게 바보스럽게 살아간 과거가 미치고 싶을 정도로 후회스럽습니다. 좀 더 즐기고 살지 못했던게 당신께 미안하구려. 멋을 모르는 나, 일 밖에 모르는 저, 이런 사람과 27년을 살다간 당신 이렇게 짧은 생인 줄 알았더라면 그 누가 멋없이 살았겠습니까? 당신과 저, 80년 아니 100년을 살 줄 알았습니다. 84년 1월23일 제주도의 구혼여행 27주년 기념 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될지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항상 말씀하시던 은혼식(30주년)을 어떻게 하려고 혼자만 떠나버리면 전 어떻합니까?
꿈에 선몽을 해 주십시오.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한시도 못잊는 저를 이렇게 두고 혼자만 떠나시면 함께 만나 같이 가는게 최선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그리울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보고싶을 수가 없습니다. 살 수가 없습니다. 견딜수가 없습니다. 아까운 당신이 간다는게 말이 않됩니다.
전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한없이 눈물만 흘릴 따름입니다. 이 심정 그 누가 알아주리오. 아무도 제 심정을 헤아려 주는 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당신과 나, 연젠가는 잊을 날이 오겠지요.
여보, 여보, 한 없이 불러보고 싶은 당신입니다. 부디 부디 왕생극락하시어 이 세상에서 못다 푼 한 저 세상에서 푸옵소서. 관세음보살 관세음 보살 관세음보살